보편적인 상황은 아니겠지만

위도 띠뱃놀이에서

by 시은

얼마 전, 비올라인지, 첼로인지 부피가 큰 악기를 들고 이동하는 여자 두 명을 보았다.


아주 어린 나이는 아닌 것 같았지만, 많아야 20대 후반 같아 보였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묻는 아저씨를 보았다.


-저, 그거 해서 얼마나 벌어요?


음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버는지 잘 모른다. 특히 순수 음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버는지, 도대체 어떤 경로로 밥벌이를 하는지, 그리고 그 수입이 얼마인지 모른다. 누군가는 그게 궁금할 수도 있겠지만, 밤늦은 시간, 지나가다 처음 보는 젊은 여자에게 묻는, 최소 30세는 더 많아보이는 아저씨의 의도가 순수한 호기심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그 당사자인 여자도 그랬을 것이다.

-벌만큼 벌어요.


나같으면 말도 안 섞었을 거 같은데 그래도 그 여자분은 어쨌든 그렇게 대답하고 친구와 함께 가던 길을 가려고 하는데,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그거 해서 얼마 벌어요?


속으로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분 역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의 수입액을 왜 처음 보는 낯선 이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알려줘야 한단 말인가.


-무슨 상관이신데요.

-아니, 진짜 순수하게 궁금해서 그래요. 좀 말해줘요. 얼마나 벌어요.


아니. 나는 그 아저씨의 호기심이 전혀 순수한 종류일 것 같지 않다. 내 경험상 저 정도로 집요한 호기심은 불쾌한 의도의 호기심일 거라고 거의 확신한다.


한창 글을 미친듯이 쓸 때 국내의 굿 같은 걸 보러 다녔던 적이 있다. 전라북도 부안 위도에 띠뱃굿이라는 풍어제가 있는데 사진상 그 느낌이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강철군도의 장례 방식과 이미지가 비슷했다.


배에다가 짚으로 만든 인형을 띄워 보내며 바다에 사는 용왕님께 그해 풍어를 기리는 제사인데 좋은 이미지도 좀 딸 수 있을 거 같았고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에피소드라도 생기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니면 아예 뭔가 색다른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거 같기도 했고, 꼭 그렇지 않더라도 중요무형문화제 82호라고 잡지에 간혹 소개되던 그 축제를 한번 보러 가고 싶었다.


결론만 말하면, 축제는 좋았고 볼만 했다. 뒤풀이에는 축제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지역에서 음식과 술을 제공했다. 내 또래인 듯 보이는 여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었고 아무래도 젊은 여자가 혼자 오는 곳은 아니니 눈에 띄었나 보다. 나는 그때 생일 안 지난 것까지 쳐서 만 나이 말하고 다닐 때였는데 29살이었다.


어디서 왔냐, 몇 살이냐, 뭐하는 사람이냐, 여기 어떻게 알았냐, 아는 사람 있어서 왔냐 하는 질문들을 꽤 받았다.


부산에 쭉 살던 사람인데 글 쓰려고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다. 글을 쓰다가 책이나 잡지에서 위도 띠뱃놀이라는 걸 봤는데 그림도 좋고, 또 오면 좋은 소재가 있을 것 같아 보러 왔다. 이런 얘기들을 했다.


내가 글을 쓴다고 하자, 한 아저씨가 상당히 대견하다는 혹은 대단하다는 말을 하며, 자기가 영화로 쓰기 아주 좋은 소재가 있다고 했다. 사람의 기운이라는 게 있는데,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딱히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을 거 같지 않았다.


아, 네, 하고 더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과 다른 얘기를 하려는데 계속 한번 들어보라고 했다.

진짜 하나도 안 궁금했다. 그래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아직 만족스럽게 완성하지 못한 상태여서 남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도 이야기 소재 많이 갖고 있다, 돈이 없으니, 벌어야 해서 그걸 완성도 있게 쓸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못 쓰고 있는 것 뿐이다. 라는 얘기를 했다.


계속해서, 진짜 좋은 소재인데 다만 자신이 글 쓰는 재주는 없어 그렇다고, 영화를 쓴다고 하니 자신이 가진 이야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은 글 쓰는 재주가 없어서 완성은 못 하니 써서 젊은 사람이 잘 되면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 있으면 말해주겠다고 했다.


이 바닥에서는 남의 이야기 내가 가져다 쓰면 소재에 대한 댓가라도 지불하는 게 상도이기도 한데 그렇게까지 소재가 없지 않다. 내가 준비한 이야기도 아직 완성 못한, 쓸 거 많으니 남의 소재 가져다 쓸 생각 없다고 계속 괜찮다고 했다.


나중엔 정 쓰고 싶고 괜찮은 이야기시면 직접 쓰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런 분위기에서 말고 좀 차분한 분위기에서 나중에 일단 들어나 보라고, 그걸로 잘 되어도 내가 준 소재라고 돈 달라고 안 할 테니 그냥 그 이야기 누가 알아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들어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느냐고 하며 연락처를 주려고 했다.


정말이지 기대가 되지 않았고 연락처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나와 얘기를 하던 가족 단위 분들이 내가 계속 껄끄러워하자 한번 들어봐요, 나이 많은 사람이 또 좋은 이야깃거리 갖고 있을지 누가 알아, 이야깃거리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하는 얘기가 오갔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였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데 이렇게까지 계속 거절하자니 무안 주는 것 같아서 연락처는 받았다. 내 연락처는 주기 싫었는데 받았으니 안 줄 수가 없어서 줬지만 받은 번호 저장도 안 했다.


하지만 결국 서울에 올라오자 사실 시간 아까워서 만나기 싫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문자나 전화로 얘기해줬으면 했지만 만나서 들어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소재인가 해서 결국 한 두달 뒤에 한번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들었다. 내 예상대로, 그냥 아무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였다. 자기 살아온 이야기였다.


자신이 부모님의 독촉에 못 이겨 어린 나이 25살에 멋모르고 결혼을 했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인생이 허무한 것 같다. 20년 넘게 같이 살고 있지만 사랑은 아닌 것 같은 결혼생활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서 사업체를 하나 운영하고 있고, 경기도에 오피스텔을 장만해서 월세 들어오는 것도 생기면서 먹고 살만 하기는 한데 이게 과연 사람이 사는 것 같지는 않다. 딸이 둘 있는데 20살 갓 넘은 것들이 누구 덕에 그만큼 큰 줄 모르고 자기 말은 잘 들어주지 않아 키우고는 있지만 나중에 재산 주기 싫다.


들으면서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임팩트도 없고, 클라이막스도 없고, 그냥 다 그렇게 사는 얘기 아닌가.


40대 후반에 어디 아픈 데 없고,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고, 자식이 사고치는 것 없는데, 건물 하나 마련했고 월세 따로 들어오는 삶이면, 그정도면 아주 괜찮은 삶 아닌가.


왜 그 삶을 나한테 징징댄단 말인가. 내가 스무살이나 적은 나이고, 돈도 훨씬 없고. 니 딸이랑 9살인가 차이밖에 안 나는데.


이게 무슨 상업영화 소재가 될 거라고 나를 한두 달 넘게 쪼아댄 것인지 분이 찰 지경이었다.


그래서, 지금 그 얘기를 하려고 나한테 좋은 소재가 있다고 한 거냐고 이게 끝이냐고 몇 번을 물었다. 당사자인 아저씨놈은 괜찮은 소재 아니냐고 했다. 좀 더 들어보면 아마 감동받을 거고, 어딘가에서 필이 올 거라고 했다.

몇 개 더 지껄이기는 했는데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 하나는 기억난다.


간통죄 무서워서 그러는 거냐고. 그거 얼마 전에 폐지됐다고 괜찮다고 하는 헛소리.


법이고 뭐고 내가 안 괜찮다.


결론은 내가 월세 살며 근근이 글 쓰며 살고 있다는 것을 띠뱃굿 뒤풀이에서 들은 것을 언급하며 자신이 갖고 있는 오피스텔에 월세 내지 말고 편하게 글 쓰면서 자신과 종종 만나자는 것이었다. 자신이 해줄 얘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그게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던 거다.


비올라인지 첼로인지 악기를 지고 가던 여자에게 수입액 질문 던지는 아저씨를 보니 그때 생각이 났다.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말하지만 불쾌할 정도로 집요한 거면 나중에 불쾌한 본론 말하려고 하는 게 뻔히 보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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