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 신랑감은 없다

일종의 환상일 뿐

by 시은

친구 중에 키가 166cm에 몸무게가 49kg인 친구가 있다.


원래부터 살이 찐 편이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만나고 보니 예전보다 더 빠져서 나타났다. 친구는 결혼하고 살 빠져서 좋다고 했지만, 보통 결혼하면 살찐다던데 이 친구는 오히려 말라서 신기하기도 했지만 뭔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런데 친구와 밥을 먹는데 한 2-3분에 한 번씩 전화가 왔던 것 같다. 친구 남편에게서. 솔직히 처음엔 짜증 났던 것 같다. 뭐지? 의처증인가? 영상 통화해서 여자 사람과 밥 먹는 걸 보여줘야 하나? 밥 먹는 동안 5번 넘게 전화가 오는 것 같았다. 별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분위기 잡고 제대로 먹을 만하면 전화가 오는 통에 먹을 맛이 안 났다. 그래도 나는 내가 시킨 음식 70% 이상 먹었지만 친구는 절반 정도도 못 먹은 듯했고 어쨌든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겼다.


맥주를 한잔 하러 자릴 옮긴 후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사람이 미운털이 박히니까 그것도 이상한 사람 같아 보였다. 아니, 아까보다 더 늦은 시간인데 왜 지금은 전화를 안 해주지? 이런 식으로 마음고생해서 살이 빠졌나?


맥주를 마시다가 무심결에 결혼하고 힘들어서 살 빠진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아니라고, 독하게 마음먹고 뺀 거라고 했다. 결혼하면 살찐다던데 진짜 그렇더라고. 아까 밥 먹을 때도 자기가 많이 못 먹게 남편한테 ‘미리 연락을 자주 달라’고 했었다고 한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먹는다는 게 ‘원래 흐름 타는 거라서’ 맛있다고 안 끊고 먹다 보면 계속 먹게 되니까 ‘흐름 끊으려고’ 그런 거라고 했다. 그리고 맥주는 배가 불러서 어차피 많이 못 마시니까 이제 연락 안 해도 된다고 남편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남편은 이 친구 밥 먹는 흐름 끊어주는 연락을 하기 위해 5분 간격으로 알람 맞추고 연락을 준 것이라고 했다. 쓸데없는 집착이 원인이었던 연락이 아니라, 친구가 요청한 다이어트용 연락이었던 것이다.


예전부터 다이어트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친구이긴 했지만 이렇게 독하게 빼고 있는 줄은 몰랐다. 맥주가 조금 들어가자 친구가 남편 칭찬을 좀 하기 시작했다. 다이어트 때문에 집에서 입 심심하다고 간식 먹으려고 하면 잔소리를 하는 것부터, 고기 먹으면 그게 몇 칼로리 어쩌고저쩌고, 백미는 칼로리가 얼마고, 빵을 먹으려고 하면 그거 먹으면 그 칼로리 소모하기 위해서 해야 할 운동은 뭐고... 밀가루가 살이 가는 부위는 어디고... 계속되는 잔소리 때문에 잘 안 먹게 됐고, 결국 20대 때도 못 가져본 몸무게를 드디어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편이 맛있는 거 제대로 못 먹게 해 줘서 너무 좋다고.


분명 웃으면서, 행복해하면서 남편 자랑을 하는 것 같은데 하나도 부럽지 않고 나는 전혀 그런 남자가 좋을 것 같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내가 뭘 부러워하는 성향이 없는 이유도 있긴 하다. 이 친구뿐만이 아니라 한창 TV에서 스윗하다고 이상순 씨를 치켜세워 줄 때 이효리 씨 역시 부럽지 않았다. 냉정하게 처해진 상황과 벌이만 따지자면 음악적 재능은 있으나 일정한 수입도 없는 허울 좋은 예술가 남자 아닌가.


누가 나에게 이 사람 진짜 괜찮다며, 음악으로 돈은 못 벌었지만 음반 꾸준히 내고 자기 좋아하는 음악만 하면서 자기 세계에 빠져 사는, 일정한 소득은 없지만 낭만적인 데다 차분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남자를 소개해 준다면 그 친구는 그날로 손절이다.


이효리씩이나 되니까 그렇게 소득 없어도 함께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내 남자 친구는,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자가 보기엔 안 좋아 보일 수 있는 남자지만 비혼 주의자인 내 눈에는 아주 훌륭한 남자다.


고양이도 잘 돌보고, 나도 잘 돌보고 취미 생활도 거의 없다. 친구도 안 만나고 술도 거의 안 마시고 퇴근하면 집에서 청소나 빨래하고 누워서 주로 TV나 유튜브를 본다. 나는 야망 있고 자기 계발 열심히 하는 남자 딱 질색인데 이 친구가 바로 그런 성향이 전혀 없는, 아주 심심하고 바람직한 성향이다.


나는 그게 너무 좋다. 어디 가서 ‘제 남자 친구는 야망이 전혀 없고 결혼하면 독박 살림이 꿈인 남자예요. 여러분, 저 심 봤어요!’라고 자랑이라도 싶은데 아무도 안 부러워할 것 같긴 하다. 그런데 나는 이 친구의 이런 성향이 진짜 진짜 좋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이 볼 때면 별로 안 훌륭할 수도 있다. 사회적으로도 안 쳐줄 것이고.


야망 있는 남자와 비슷하게 내가 싫어하는 남자의 예로는 의사, 변호사, 기타 전문적 기술로 많이 벌고 바쁘게 사는 남자도 싫다. 정확히는 그런 사람을 보살피는 게 싫다. 그렇게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심지어 돈 잘 버는 남자면 집에 오면 어쩔 수 없이 피곤해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할 것이고 아무래도 적게 버는 사람 쪽이 집안 살림이나 뒷바라지를 해줘야 할 상황으로 포지셔닝될 텐데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


심지어 그런 남자는 집안일 안 해도 될 명분도 강하다. 나라도 내가 의사, 변호사면 집에 와서 피곤해서 널브러질 것 같다. 집안일 안 하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를 위해, 그런 남자는 안 만나는 게 훨씬 행복할 것 같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돈 잘 버는 사회적 지위 좋은 남자가 최고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 친구 남편처럼 부탁했다고 해서 그걸 진짜로 꼬장꼬장하고 독하게 다이어트 시켜주는 성격이나, 이상순 씨 같이 긍정적이고 차분하고 낭만적이면서 고정 소득 없는 음악인이 나에게 맞지 않듯, 평범한 회사원에 큰 야망 없고 먹을 것에 잔소리 안 하는 내 남자 친구 성격 또한 내 친구나 이효리 씨에게 적합하거나 원하는 남자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각각의 여자가 원하는 남자 성향이 다 다른데 어떤 특정한 직업군의 남자에게 붙여주는 ‘일등 신랑감’ 명찰이 웃기다는 말이다. 물론 ‘일등 신붓감’이라는 명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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