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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Oct 13. 2020

칭찬 대신 뜨겁게 욕을 먹을래요.

그 일로 내가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면

OCN 드라마 <보이스 3>를 보면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하는 한국 재벌이 인맥을 통해 알고 지낸 일본 정치인에게 이 일을 덮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러자 일본 정치인은 이렇게 묻는다.

-그 일로 내가 얻게 되는 건 무엇인가?


이 정치인은 그 일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지 않는다. 대신 나에게 무엇을 해줄 거냐고 묻는다. 이 정치인은 알고 있다. 내가 이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다른 정치인에게 부탁을 해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어떻게든 덮을 인간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 거래 이후, 내가 가지게 될 몫을 저울질하겠다는 것이다.


‘어떠한 몫의 부’가 있고 어디로든 이동할 부라면, 자신의

능력으로 그 부의 도착점이 자신에게 올 수 있게 하겠다는 말이다.




나는, 나와 동시대를 사는 여자들이 이 정치인처럼 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법적인 일의 대가로서의 이익을 챙기라는 게 아니고, 부탁을 받으면 선선히 들어주지 말고 계산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이다.


어차피 우리 대부분, 각자 가지게 될 힘은 세상을 좌지우지할 정도로는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 엄청난 명예나 부를 거머쥔 분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있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니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될 큰 죄를 덮어달라고 부탁하러 올 사람은 없지만 어쨌든 소소한 부탁쯤은 여기저기서 들어올 수 있다. 직장 동료가 ‘별 거 아닌데 이 보고서 좀 써줄래요?’ 라거나, 엄마가 ‘딸, 미안한데 100만 원만 빌려줄래?’ 하는 자잘한 부탁 말이다.


위 상황 같은 이런저런 부탁을 하면 그냥 선선히 들어주기보다, 그럼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건지 생각하고, 말로도 그걸 당당히 요구했으면 좋겠다. 그 대가로 이러이러한 걸 언제까지 원한다고 구체적으로 요구하면 더 좋고.


굳이 선의를 발휘해 들어주고 싶다면 그걸 가지고 ‘그러지 마세요!!’하고 말리지는 않겠지만 ‘아, 이걸 내가 왜 해줘야 하지.’라는 마음과 ‘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시간(혹은 에너지) 아까운데.’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면 철저하게 손익을 따졌으면 좋겠다. 상대방이 뭐 그런 거 하나 해주는 것에까지 대가를 요구하냐고 하면 ‘네, 저는 그런 속물입니다.’ 하고 그 부탁 안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스스로 속물이라고 지레 죄책감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노동력에 대한 대가’를 내가 챙기는 건 몹시 자연스럽고 당연한 흐름이다. 내 능력을 내가 쓰고 싶은 곳에 쓰겠다는데 그걸 질책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야 그렇게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에게 작은 죄책감이라는 그물을 씌워서 자기 손 안 쓰고 우리를 코 푸는 휴지로 쓰려는 것이다. 설마 그런 사람이겠어, 싶다면 확인해 보면 된다.


방법은 쉽다. 반사.


나에게 했던 부탁을 비슷하게 해 보면 된다. 가까운 시일 내에 비슷한 시간이 들거나 비슷한 돈이 드는 부탁을 쥐어짜서라도 해보자. 아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안 들어줄 것이다. 그렇게 그쪽도 속물이시네요, 하면서 그 사람의 부탁을 안 들어주면 된다. 자기는 하기 싫은 일을, 혹은 자기에게 없는 능력 밖의 일을 누군가에게 요구하면서 속물 운운하다니. 자기가 부탁한 일과 비슷한 힘이 드는 일을 해 주지 못할 현대인이라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인으로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할 텐데 아마 모르겠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는 결코 자원봉사단체가 아니며 우리의 노동력을 사회 혹은 그 사람이 알아서 차곡차곡 마일리지 적립해주지 않는다. 어떤 상황마다 그때그때, 스스로 챙겨야 한다.




앞의 내용을 보면 나란 인간이 아주 속물적으로, 칼같이 이기적이게 지 할 일만 하고 누굴 잘 안 돕는 인간 같겠지만 의외로 나는 회사에서는 동료의 일이나 후임의 일을 도와주는 편이다. 물론 대단하게 힘든 일은 아니다. 그리고 동료들 역시 내가 힘에 부쳐 도움의 손길을 내밀면 기꺼이 도와준다. 게다가 그런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면 그게 또 그렇게 기분이 좋다. 나 역시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하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일적인 영역에서 잘 돕는 인간이다.


하지만 가끔 부산 본가에 내려가서 엄마가 사소한 심부름을 시키면 절대로 도와드리지 않는다. 나는 평생 할 몫의 심부름을 다 한 것 같다. 아니, 더 한 것 같다. 어렸을 적부터 엄마는 남동생에게 결코 심부름이나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비단 이게 나뿐만 아니라 ‘80년대 생 K-장녀’들에게 비일비재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만 심부름을 했다.


내가 심부름 뒤에 요구한 건 엄마의 달콤한 칭찬 한 마디가 다였다. 착하다, 잘했다, 수고했다, 고마워, 같은. 고맙다고 해주시면 안 돼요?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는데도 그 한마디를 한 번도 안 해주셨다. 주로 동생은 게임하고 주로 나는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도 독립 전까지 심부름을 해야 하는 건 항상 나였다. 사실 그 덕분에 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딱히 대단하거나 나을 건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나보다 공부도 못했고) 이 정도도 못 써먹는 게 ‘남자’라면 뭐 그리 대단한 존재인가 싶었는데 내 동생은 이런 내 생각을 평생 증명해주려고 그러는지 우린 각자 다녔던 회사 연봉도 엇비슷했는데 동생은 나보다 회사를 오래 다닌 적이 없고, 지금은 아예 백수다.




얼마 전 아빠 생신 때문에 부산에 간 적이 있다. 엄마는 또, 나에게만 심부름을 시켰다. 남동생이 집에 있고 동생은 백수인데도. 취업을 위해 중요한 시험 준비 중이라고 하긴 했지만, 내가 보기엔 시험공부를 막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끔 용돈 드리는 나보단 부모님한테 용돈 받는 걔가 심부름을 하는 게 형평성에 맞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칭찬에 아직 목이 말랐던 관계로, 엄마가 칭찬 한 마디만 해주신다고 하면 그 심부름을 기꺼이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심부름을 가기 전에 물었다. 엄마, 이거 해드리면 나한테 고맙다고 칭찬해주실 거예요? 엄마가 지겹다는 듯이 말했다. 제발, 뭐 시키면 토 좀 달지 말고 하면 안 돼? 너는 별것도 아닌 거 하면서, 꼭 그렇게 생색을 내려고 하더라. 아, 그래요? 그럼 안 할게요. 별 것도 아닌 거 엄마가 하시거나 쟤(동생) 시키시거나 알아서 하세요. 전 그동안 많이 했으니까. 엄마가 말했다. 니가 뭘 그렇게 많이 했니? 내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요. 그때도 저한테 고맙다는 칭찬 한 번도 해주신 적이 없는데 지금 이 와중에 해드리자니 에너지 낭비 같아요. 제 체력도 예전 같지 않고 엄마 심부름은 해주고 기분도 별로라서요. 엄마가 다시 말했다. 내가 낳아주고 키워줬는데 그 정도도 못 시키니? 쟤도 엄마가 낳고 키워주셨으니까 쟤 시키세요. 내가 알아서, 내가 시키고 싶은 사람한테 시킬 거야. 내가 말했다. 저, 요즘 저한테 월급 주는 사람 말만 들어요.




아이유가 greedyy라는 노래를 문별과 함께 작사했다. 그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옳지 잘했어 참 착해 늘 그래야 해

착한 아이에게만 해주는 달콤한 말들

칭찬 대신 어떤 걸 얻게 될지 궁금해지지 않니

(…)

뜨겁게 미움받는 기분 um so nice

가볍게 가르쳐줄게 no more question

(…)


제아 <greedyy>


나는 이제 뜨겁게 욕을 먹기로 마음먹었다. 착한 아이였던 내 인생에 달콤한 말은 없었다.


엄마는 말했다. 올 때마다 아무것도 안 해서 참 편하겠다고. 싫으시면 이제 안 올게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간다. 마음은 더할 나위 불편하다.


남동생에게 물어봤다. 너도 엄마의 심부름을 거절하냐고. 거절하면서 불편함을 느끼냐고. 동생은, 엄마가 심부름을 시킨 적이 별로 없단다. 하긴 내 기억에도 엄마가 그에게 심부름을 시킨 적 자체가 별로 없다. 그리고 거절할 때 왜 불편하냐고 나에게 되려 물었다. 설명하자니 피곤해서 안 해줬다. 우리에겐 비일비재하고 그들에겐 상상도 못 하는 일인 것이다. 상상도 못 할 일을 상상할 만한 것으로 구체화시키는 일은 노력이 많이 든다. 말로든, 글로든.


대가를 얻는 것도 없는데 그런 노력을 하기는 싫다. 동생이라 해도 별도의 품이 드는 노력, 귀찮다. 사실 설명해 달라고 한 적도 없고. 대신 가끔 돈 빌려달라고 연락 오면 그건 해준다. 그리고 동생은 이미 여자들의 노력과 배려를 많이 누렸다. 너무 ‘당연’해서 몰랐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렸을 적부터 칭찬받아본 적이 없으니 잃을 것도 없다. 내 노동력과 내 시간(가끔은 돈)은 이제 철저하게 지킨다. 엄마라고 해도 건드리지 못하게. 욕을 먹더라도. 아니, 아주 뜨겁게 욕을 먹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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