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썼던 최초의 단편영화
예전에 내가 썼던 최초의 단편 영화 시나리오를 봤다.
12-3년 전, 학술제에 내기 위해 만들 영상의 뼈대가 될 만한 이별 이야기를 써야 했는데 빨리 써서 완성해서 촬영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잘 썼는지, 재미있는지 여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작–중간-결말 구조만 제대로 갖추게 쓰고, 쓰자마자 거의 곧바로 촬영을 하고 편집까지 4-5일 만에 완성을 했던 아주 짧은 단편영화의 시나리오였다.
그때 그 시나리오가 아직 있는 줄 몰랐다가 발견하고 읽었는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데 혼자 이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그 시나리오로 5분 정도의 이야기가 있는 영화를 완성했다. 연애를 전혀 해보지 않았을 때에 쓴 연애, 그리고 이별 이야기였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읽으니 온몸이 오글거렸다.
그리고 같이 공부한 친구들이 모두 참 착한 존재였구나, 하는 것을 생각했다. 학생이 쓴 것이니 별로 대단할 수 없긴 하지만, 이런 조악한 내용의 글에 출연해주고, 촬영과 영상과 음악을 다 도와주다니. 지금 생각해보니 밥과 간식만 좀 사고 그들의 시간과 도움을 얻은 셈이다.
이야기만 쓸 줄 알았지, 촬영을 할 줄 몰랐던 나는 촬영을 후배에게 부탁했다.
연기를 할 사람으로는 연인 역할을 할 두 사람이 필요했는데 우리 학부에서 각각 비주얼 탑이었던 여자후배와 남자선배가 연기를 해본 적도 없는데 출연을 결심해 나와 주었다.
편집은 또 다른 선배가, 연기자로 나왔던 선배가 영화에 흐를 배경음악들까지 담당했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은 또 다른 후배가 도와주었고. 그나마 촬영 장소 섭외와 허가를 구하는 일 정도만 내가 해결했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하고, 할 줄 알지만 시간과 체력이 안 되서 못 할 거 같은 일은 도움을 청하고. 아예 못하는 일은, 거의 다 애걸했던 것 같다. 선배들한텐 좀 도와주세요, 후배들이나 동기들한텐 좀 도와줄 수 있어? 제발 도와주면 안 돼? 이러면서.
다 완성하고 나서 출연진 및 역할에 따른 자막을 넣으면서 사실은 사람들 눈에 제일 잘 안 보이는 일과 사람들의 피부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일이 사실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이구나 하고 느꼈다.
자막 넣는 방법도 몰라서, 자막도 누군가의 도움으로 넣었는데 그가 도움을 주는 동안 나는 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진짜 고맙다고 수없이 말하며.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만큼, 제일 귀찮게 한 사람은 편집을 담당해주던 선배였다. 테입을 본 선배가 여기에서 여기까지에서 자르면 되냐고 의견을 물으면 죄송한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편집장면 보여주면, 다시 한번만 보여주시면 안 되요? 이 부분 다시 보여주시면 안 되요?하는 말을 5분 남짓 되는 영화를 위해 몇 시간은 귀찮게 굴었던 것 같다.
그 선배 자기 편집할 것도 많아서 편집실에 사는 사람이었다던데.
죄송하게도 심지어 그 전까지 친하지도 않았던 사이였는데 별로 큰 도움 부탁하는 것 같지도 않고 같은 과라는 친분만으로 무작정 애걸하니까 불쌍해서 들어줬을 텐데 아마 선배가 후회했을 것 같다.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 일은, 내가 같이 할 사람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장소 섭외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 일이 별 거 아닐 거라 생각한 후배가 재미있을 거 같아 보여 나한테 먼저 말을 걸었다.
-언니, 힘드시면 제가 옷이랑 헤어랑 메이크업 같은 건 좀 도와드릴까요?
-진짜? 그래주면 고맙지.
하고 담당하게 되었다. 일이 진행될수록 내가 이것저것 신경 쓰느라 다 할 수 없던 일들, 이동할 때 카메라가 무거우니까 카메라 담당의 짐도 같이 나눠 들어주고, 실내에서 조명이 밝으면 그걸 조절하기 위해 빛을 막을 천을 창문에 대고, 연기자 얼굴이 오랜 촬영에 번들거리면 화장을 수정해주고. 옷의 핏이 안 예쁘게 나오면 다시 찍을 때 주름을 좀 다르게 잡아주고. 그 외에도 정말 소소한 일들도 그녀가 대부분 했다. 그것도 대부분의 순간 말없이. 아마 그 정도로 막노동인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도 몰랐고.
자막에도 그녀의 이름이 가장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 외에도 이것저것 이름 붙일 수 없는 많을 일을 해주었다.
그때 그 학술제에 나온 그 단편영화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겠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로 유일하게 완성된 영화라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그렇게 많은 도움을 받아서 다행히 완성도 했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촬영하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그래도 고생도 됐을 텐데 힘들다 투정한 사람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놀란 게 표현에 대해 의견 차이로 싸우는 일도 없었다. 연애무식자가 그린 이별 이야기이니 이야기 흐름상 내가 생각지 못한 나의 무딘 내용이 있었을 텐데.
갑자기 날이 더우니, 드라마든 영화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더욱 힘들 것이다.
사실 더우면 아무것도 안 해도 힘든데 뭘 하면 더 힘들고, 신경써서 해야 하면 더욱더 힘들다.
우리는 날씨 좋고 선선할 때 촬영해서 날씨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촬영 현장 어딘가에서 고생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자 그때 그 친구들이 생각난다.
그때도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했지만, 이정도로 고마운 일인지 모르고 고맙다고 한 것 같다. 미안하게도.
#봄이를 찍고 있다. 핸드폰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버리거나 아예 쳐다보지 않거나 사람을 신경쓰지 않을 때가 많아서 찍기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