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와 영화가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여자라고 다 그런 행복을 원하지는 않는단다

by 시은


20년 된 광고인데 심은하가 욕조에서 와인을 마시며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여자라서, 행복해요.’ 따위의 대사를 하는 광고가 있다(디오스, 망해라).


그녀의 아름다움과 적절한 배경음악과 기가 막힌 조명 등으로 완성된 그 광고는 당연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고 강렬하게 각인되었을 것이다.


오래전,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서 안정된 결혼 생활이나 아이는 갖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그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는 이 광고의 대사를 인용해서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여자의 행복은 그런 거야. 결혼해서 남편이 가져다주는 월급으로 피곤한 사회생활 안 하고 집에서 편안히 돈 쓰면서 사는 거. 그게 ‘진짜 여자의 행복’이라고.


아무리 심은하가 달콤하게 속삭인다고 해도 그렇지, 눈 앞에 있는 여자 친구가 그건 광고일 뿐 절대 모든 여자가 그렇지는 않다고, 나는 그게 행복할 것 같지 않다고 목이 갈라지게 반복해서 말해도 그는 그럴 리가 없다며 헤어지는 순간까지 내 말을 부정했다. 그는 그 외의 여자의 행복이 있을 리 없다며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결혼 이야기해볼 필요도 없이 여자 저차 해서 헤어졌으니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할 만한데 여하튼 ‘여자의 행복은 집에서 남자를 기다리는 것과 그 남자 월급에 달려있다.’는 말은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이 친구만 미디어의 강렬한 메시지와 달콤한 이미지에 속은 건 아니었다.


나도 미디어에 속아 멍청한 짓을 한 적이 있었다.




내가 쓴 글이니 당연히 매번 나의 입장에서 쓰이는 게 당연하겠지만,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남에게 매번 괜찮은 인간은 아니었다.


고2 때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보고 나서, 여자가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에게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야, 혹은 이름을 부르는 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정말 소름 끼치게 멋있고 치명적으로 매력적으로 보였다.


...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보았다. 모든 남자들에게 그런 건 아니고, 대학 신입생 때 들어간 동아리에서 24살이지만 편입해서 1학년인 오빠가 있었는데 장난치느라 선배들하고 짜고 신입생들에게만 자신도 스무 살이라고 속인 일이 있었다. 다들 속아서 이름을 부르다가 한 2주 뒤에 24살이란 것이 밝혀지고 나서는 오빠 혹은 형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스무 살의 패기로 꿋꿋이 OO야,라고 불렀다. 패기라고만 볼 수도 없는 게, 사실 그 오빠가 나한테 이성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런 부분이 분명 있었다. 사귈 생각은 없었으면서 영악하게도.


다행히 그 오빠가 착한 편이었고 선배들도 그냥 귀엽게 봐줘서 넘어가긴 했지만 사실 그게 좋은 태도는 아니었다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 왜냐면 나한테 호감을 보인 다른, 몇 살 많은 남자에게 몇 개월 뒤에 또 그런 식으로 대했다가 가정교육 운운하는 얘기 및 쌍욕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이번 오빠는 호감은 호감이고, 그렇다고 못돼 처먹은 버르장머리를 오냐오냐 봐줄 생각은 없었던 거다.


그 오빠가 욕을 한 나의 가정에서는 나를 그렇게 가르친 적이 없었다. 나를 ‘가르친 적도 없는 미디어’한테 이상한 걸 배워가지고 겉멋이 들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전지현이 너무 멋있어서 그랬다. 그런데 그건 전지현이라서 괜찮았던 거였다. 내가 내 분수를 몰랐다.


더 제대로 말하자면, 나이 많은 차태현한테 전지현이 꼬박꼬박 반말하는 게 괜찮았던 건 영화라는 미디어 내에서 그것도 딱 2시간, 그것도 스크린 안이라서 괜찮았던 거다.


여하튼, 광고와 영화가 이렇게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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