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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ul 14. 2019

퍼스트 클래스

모든 일에는 그 시작이 있다

모든 일에는 그 시작이 있기 마련이다. 성폭행 앞에서 내가 노련해질 정도로 침착해진 이유는 그때가 처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게 해준 사건은 스물네 살 때였다. 앞 사건에서 노련할 수 있었던 것은 스물 네 살때의 유사한 경험 때문에 위기대처능력이 성장한 게 컸을 것이다. 그리고 스물 네살 때 당황하지 않았던 것은 15살의 내가 85개의 대안을 미리 준비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때 쓴 걸 기억하고 사용해서 빠져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때 한 준비가 실제 위험상황에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원래 실전은 대부분 준비한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전혀 다르게 진행되더라도 미리 대비를 한다는 건 전쟁이나 이런 문제나 동일하게 중요하다.    


그 날 이후로 남자와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그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가 되었던 간에 벌어질지도 모를 상황들을 머릿속에 나열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중엔 평범한 전개와 최악의 전개 모두 들어있어서 누가 어떤 행동을 하건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떠올려도 고통스럽지 않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거의 대부분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다고 하던데 나는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불쾌한 정도이다. 나조차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냈다.

      

하지만 내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나 스스로 해결한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첫번째 사건 이후의 Z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상태에서 부산녹색연합이라는 환경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때 한참 4대강 사업 때문에 전국이 시끄러울 때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순진하게 시민들이 힘을 모으면 막을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을 하고 이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내가 소속된 단체는 아니고 연대해서 활동을 같이 하는, 좀 더 큰 환경단체인 부산환경연합의 활동가 중 한 명이 회의 끝나고 말을 걸었다. 뭐 이것저것 물었는데 다 기억은 안 나고, 몇 살이냐고, 나보고 포토샵을 잘 하냐고 했다. 스물네살이고, 못 한다고 했다. 그걸 못 해서 어쩌냐고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던 것 같다. 학교를 물어보길래 나도 학교를 물어봤다.   

   

나보다 학벌 좋은 서울 유수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고 10살이 많았다. 나에게 그것도 못 해서 어떻게 사회생활 할 거냐는 식으로 계속 말을 걸었다. 소속된 단체에서 나는 말단이었기 때문에 거의 잡무만 했고, 잡무만 하는데도 버거웠고, 이 일을 평생 할 건 아니었고 4대강 사업을 막을 수 있을 정도 기간인 2년, 길어야 5년 정도만 하고 다시 글을 쓰려고 했었다. 


앞으로 말할 이 일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환경단체 근무를 10개월만에 그만두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 그 일 이후 나는 죽을 때까지 환경단체에 후원을 하지 않을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과 행동은 변함이 없다. 


어쨌든 이 일을 2년 안에 그만둘 생각이었던 내가 포토샵까지 해서 뭘 만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아, 내가 환경단체에서 일할 직무 능력이 좀 떨어지나 보다, 하고 가려는데 혹시 가르쳐줄테니 오늘이나 내일 배우러 오겠느냐고 했다.

      

사실, 그때 촉이 쎄했다. 예전부터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이 나한테 왜? 하는 생각을 했다. 


-저한테 왜요?      


어리니까 사회생활 제대로 하려면 이것저것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길래 그건 그렇긴 하죠, 라고 대답했다. 사실 그때도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면 이것저것 해야 하긴 할 테니 배워두면 좋을 것 같긴 했다. 배울 생각있냐고 하길래,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게 배우겠다고 했고, 그날인가 그다음날 몇시까지 오라고 했다.   

  

그 사무실로 찾아갔는데 다 퇴근하고 그 사람만 있어서 좀 무섭긴 했다. 아니, 찝찝하다는 느낌이 더 맞을 것이다. 내가 아직 사회생활을 많이 하지 않아 세상 남자들을 겁먹고 안 좋게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가 인사를 했다. 


언제가 되었든 사회생활을 할 때 반드시 여자가 내 사수가 되리라는 법도 없고, 당연히 여러 사람이 떼로 붙어 나를 가르쳐줄 일은 없으니 남자가 됐든 여자가 됐든 한 사람이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건데 괜히 겁먹고 쭈그러들기 싫었다.      


여차하면 사타구니를 차버리고 뛰쳐나올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의심을 하면서도 간 건, 무서움보다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 하나라도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또 어린 사람에게 댓가를 바라지 않고 뭔가 가르쳐 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는 훈훈한 세상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시민단체니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순진했다.  


그 활동가는 아직 마무리할 게 있다면서 다른 책상에서 할 거 하고 있으라고 했고, 난 그냥 거기 있는 책을 들춰보고 그랬던 거 같다. 할 거 다 한 활동가가 회의실로 가자고 해서 나는 회의실에 포토샵 프로그램이 깔린 노트북을 따로 준비해둔 줄 알았다. 내가 먼저 들어가고, 그 활동가가 나중에 들어왔는데, 들어오면서 불을 껐다. 문을 잠궜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밖엔 아무도 없었고 나중에 도망칠 때 보니까 그 건물 자체에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 책상엔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소주와 새우깡이 있었다. 아마 하고 나서 심신미약을 주장하려고 그랬을 거라는 게 내 생각이다. 아니면 말고.  

    

어쨌거나 불이 꺼지는 순간 아, 젠장, 내 촉이 맞았구나. ㅈ 됐네. 어떡하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든 생각은 이런 거였다. 


예전에 본 글 중에 신은 인간에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고통만 준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신은 나를 오해한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아니면 과대평가했던지. 나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성추행을 당한 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나였다. 그 후 5년 동안 총 5번의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고 용기가 많지 않아 시도는 2번이 끝이었다. 5년이 지난 그 다음부터 다행히 자살 생각은 안 들었다. 

          

어쨌든 신이 왜 과대평가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의 상황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왔을 때 실제로는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고, 일이 일어난 후에도 역시 아무도 날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어린 날의 쓰디쓴 경험이 내가 알아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스스로 상황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신념 같은 걸 그때부터 갖고 있던 것도 있고 이번 일을 겪으면 진짜 죽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티는 안 냈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 어깨를 감싸려고 하는 그를 조심스럽게 밀어내며 그 와중에 포토샵 가르쳐주신다면서요, 라고 물었다. 그가 그게 지금 중요해? 라고 말했다. 


불 끈 순간, 당연히 계획적인 것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더 확실하게 그가 나를 부른 이유를 깨달았다.

그가 갑자기 이 짓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나에게 포토샵 가르쳐준다고 한 게, 처음부터 그의 덫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간사님, 결혼도 하셨고, 아기도 있으시잖아요. 

라고 처지를 환기시켜주면 달라질 줄 알았다. 딸이 있었고 4살 남짓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되돌아온 답변도 가관이었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라고 그가 말했다. 


그때, 내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니 진짜 어이가 없어서 생각할 때마다 피식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어깨를 감싸던 손이 내 티셔츠 등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는데 내가 반항하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이러지 말라고 할 경우 그가 나를 폭행해서 무력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나한테 해버릴 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앞서 말한 것처럼, 발기된 성기를 본 후, 성기에 대한 공포심도 아직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닌 것도 있고, 무서운 것도 있지만, 비록 내가 결혼 후에 첫경험을 할 생각은 없었고, 반드시 첫경험을 한 상대와 결혼할 생각도 없었으며, 첫 경험에 대한 환상이 엄청난 것도 아니었지만, 이렇게 생긴 놈과 이런 상황이 내 첫경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이제 겨우 우울함을 극복해낸 정도일 때였고 아직 성기가 무서웠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이런 새끼랑 이런 분위기에서 첫 경험을 한다면 그 트라우마를 내가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번 일을 겪으면 진짜 죽고 싶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허리에서 손이 올라오는 게 느껴지는데 순간적으로 등 반대편에 있는 건 배고, 배가 아프다, 화장실 가야겠다고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 화장실 좀 갔다와야겠어요. 갑자기 이러셔서 놀라서 신호 온 것 같아요. 

-조금만 참아. 한번만 하고 가.      


한번만 하고 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말이다. 하지만 난 그때 다행히 완벽한 페이스를 찾은 것 같다.     


-이거 오줌 마려운 거 아니고 똥마려운 거거든요?      


나는 너무 급작스러워 보이지는 않게 몸을 뗐다. 그가 멀어진 만큼 다시 더 안으려고 했다.     


-참을 수 있어, 참아봐.     


페이스를 찾았으니 속도를 좀 냈다.     


-저기요, 똥 쌀 때 한꺼번에 깔끔하게 쌀 수도 있지만, 설사처럼 나올 수도 있는 거 모르세요? 지금 이 분위기에서 다 벗고 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거 하다가 제가 똥 싸면 간사님이 제 몸에 묻은 똥이랑 제 옷에 묻은 똥 다 빠실 거에요? 아니면 짐승처럼 똥 다 묻히면서 하자 그 말이세요? 그리고 빨아주신다고 해도 저 대학생인데 쪽팔리게 젖은 옷 입고 집에 가란 말이에요 뭐에요, 장난해요 저랑? 지금 이게 중요해요?     


이렇게 되쏘았다. 

     

그제야 그가 팔을 풀며 알겠어, 그럼 얼른 갔다 와. 라고 했다. 안도감이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성관계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정말 똥 마려운 걸 저지 당한 것 때문에 짜증이 난 사람처럼 말했다.     


-제가 알아서 갔다 올게요. 천천히 기다리세요.     


하고 너무 다급해보이지 않게 회의실 문을 열고 내 가방이 있는 곳을 떠올리며 가방과 핸드폰을 집고 그 순간부터는 돌아보지 않고 아주 빠르게 그대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그가 회의실을 나와 쫓아오는 게 느껴졌지만 사무실 밖까지는 나오지 않고 놓친 먹잇감인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강간을 피했다. 그 와중에 택시도 아니고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집 근처 정류장에 내리자 긴장이 탁 풀렸다. 강간을 시도한 활동가보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처음부터 의심했으면서 갔던 것과,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면서 호의를 바란 내 자신과, 혹시 내가 끼를 부렸다고 할만한 행동이나 말을 한 건 없었나 내 행동을 곱씹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울었던 거 같다. 질질 짰는지 펑펑 울었는지는 모르겠다. 버스 안에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이렇게까지 침착하게 행동한 나 자신을 칭찬해줬는데, 아무 일도 아닌 거는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별일은 없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 모든 끔찍한 경험을, 나는 없는 일처럼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울컥해졌다.      


그때, Z에게서 연락이 왔다. 잠깐 사귀었던 친구였다. 서로의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고, 취업으로 둘다 바빴다. 


그리고 얼마 안 되서 내가 그냥 친구로만 지내자고 했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문자를 했는데 내가 전화 좀 해달라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막 했는데 당연히 저 일에 대한 얘기는 할 수 없어서 오늘 뭐 했어, 재미있었던 일 없었어, 같은 시답지 않은 걸 물었던 것 같다. 그런데 갑자기 그 친구가 물었다. 너 무슨 일 있어?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아니, 왜? 라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다. 


시은아. 너 지금 무슨 일 있어. 괜찮으니까 나한테 말해. 라고 말하는데 거기서 눈물이 터진 것 같다. 사실 방금 막 강간당할 뻔 했다고. 다행히 빠져나오긴 했는데 너무 무섭고 이대로 집에 못 들어갈 거 같아서 집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고.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내가 잘못한 것 같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이야기했다. 내가 혹시 나도 모르게 그 활동가에게 오해할만한 말이나 행동을 했을까,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직장생활에 좀 더 도움이 될 숙련된 직무와 도움이 될만한 포토샵을 배우고 싶었던 게 잘못이었을까, 이런 자책을 쏟아냈다. 


심지어 가끔 반바지 입고 다녔지만 다 무릎 정도는 내려왔다고, 전혀 내 옷차림은 야하지 않았다고 헛소리까지 하고 있었다. 비록 물리적 폭력이 행사되지는 않았지만 옴짝달싹 할 수 없는 달아날 방법이 차단된 상태에서 몰아붙여지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전화기를 붙잡고 한동안 울었다. 내 울음이 잦아들자 그 친구가 말했다. 내가 나도 모르게 괜찮다고 했나 보다. 그래도 안 당했으니 괜찮다고. 


그러자 Z가 말했다. 시은아, 너 지금 안 괜찮아. 그러자 난 또 울었다. 어떻게 안 울고 있을 수 있었을까 싶게 한참을 울었다. 


-시은아, 잘 들어. 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어. 


그리고 또 울었다. 내 울음을 또 한참 듣던 친구가 더 울어도 되니까, 울고 싶은 만큼 울어. 하다가 내 울음이 멎질 않자 시은아, 그냥 그 사무실 주소를 줄래?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고 그가 대답했다.


-내가 내 친구들 몇 명 데려가서 반 죽도록 패줄게.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주소만 줘. 

-그럴 수는 없어...

-나한테 빨간 줄 생길까봐 그러는 거면, 걱정하지마.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그러니까 주소 줘, 시은아.


나는 결국 그 사무실 주소를 주지 않았다. 내가 후회하는 일 중에 하나다.      

그때 말리지 말걸.      


Z 인생에 빨간 줄이 생기든 말든 뒷일 생각하지 말고 다 엎어버리게 알려줄걸. 하는 후회를 아주 가끔씩 한다. 


그때 주소를 알려주지 않은 건 그 친구의 인생을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다 엎어버리고 나면, 그 엎은 이유를 경찰, 혹은 단체로부터 질문이 들어온다면, 내가 무슨 일을 당할 뻔 했는지 그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그게 내가 여지를 준 게 없으며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하고 그걸 못 믿을 경우, 원치도 않는 설득을 해야 하는 과정이 이어질 수 있고, 거기서 내가 겪어야 할 고통, 스트레스를 뒷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니 병신 같지만, 그 당시엔 결혼한지 몇 년 안된 그의 가족이 이 사건을 알게 되서 상처받는 것도 내 책임 같이 느껴질 것 같았다. 


후회한다고 말하지만, 그렇게까지 뒷감당을 계산하는 습관이 있어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그 친구에게 엎으라고 사무실 주소를 알려주진 못할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김칫국 마시는 습관이 좀 있어서, 그 친구 인생에 빨간 줄이 그어지면, 내가 그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다시 사귀게 되고 그러다 결국 생각지도 못하게 결혼까지 하고, 그러다 중년이 되었을 때 이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사실 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그때는 그 문제까지 생각을 해서 그것 때문에라도 저 친구 인생에 빨간 줄이 생기게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걱정할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 한참 후에 내가 Z에게 다시 만나보자고 했다가 두 번 차였다. 좀 매달리기도 했는데 한참 지나서의 이야기이고 궁금해 할 사람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유병재님이 점심에 짜장면 먹었으니까 이따 오후 2시쯤에 성희롱 해야겠다, 라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라고 말했는데 틀렸다. 


짜장면 먹고는 아니지만, 엑셀 정리 한시간쯤 다 하고, 포토샵 가르쳐주겠다고 어린애 꼬드겨서 지 할 거 하느라 1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고는 할 거 다 하고 강간 한번 하고 집에 가려고 하는 인간도 있다. 시민단체에 일하면서. 강간범의 마인드맵에서는 이게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고 물흐르듯이 이루어진다. 업무에 필요한 걸 가르쳐준다고 해서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렸는데, 지 할 거 다 하고 기다리게 해놓고 강간을 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평범한 사고방식일 수밖에 없는 우린 이런 걸 모를 수 밖에. 강간범의 마인드맵안에서는 이 흐름이 어색하지 않지만 나도 겪기 전에 몰랐던 것처럼 유병재 씨도 이런 인간이 있는 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우리와 그 사람들은 뇌구조가 아예 다르기 때문에 성추행범이나 성폭행범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으라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마음도, 생각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게 강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스트레스 받는데 일 할 거 하고, 어리고 뒤탈 없어보일 여자애한테 ‘스트레스 한번 풀고’ 집에 가면 기분이 나아질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가져도 별탈 없어서 고른 것일 것이다. 똑똑해 보이는 타입은 아니었을 테니까.               

          

그때는 차마 그런 생각조차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아찔했던 게, 그 강간시도범이 하고 나서 벌어졌을 일을 최근에야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하고 싶진 않았지만, 어쨌든 그 후에 그가 어떻게 했을지, 나는 뭘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똥을 생각해내지 못해서 그 상황을 피하지 못하고 당했다면, 그 순간, 나는 당황해서 어찌 할 바를 몰랐을 것이다.      


내 몸에 나온 피에 1차 당황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끼가 위로를 했을지 내버려두고 집에 갔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뒷처리는 내가 해야 했을 것이다. 그 뒷처리라고 하는 것은, 만약 내 피를 그 놈이 치웠을지 안 치웠을지 모르지만, 안 치우고 갔다면 내가 치웠을 거라는 것이고, 내 몸과 옷에 묻은 피를 내가 알아서 어떻게든 닦아내고 집에 가야 했을 것이란 뜻이다. 거기서 내가 천년만년 널부러져 있거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 새끼도 그걸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끼는 했든 안 했든 아무 죄책감 없이 집에 가서 귀여운 딸아이의 뽀뽀를 받고 아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듣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잠을 잤을 거 같았다.                 


똥 때문에 위기를 피해서인지, 그 이후로 나는 똥이라는 단어를 쓰는 데 주저함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똥이란 단어를 잘 말하지 못하거나 부끄러워 할 때마다 항상, 왜요! 똥이란 단어가 뭐가 어때서요! 라면서 여러번 반복하기도 한다. 신도 구하지 못했을 나를 구해준 단어니까.  


환경단체 일을 그만둔 이후, 어느날 밤늦게 심심해서 친구한테 연락을 하려고 카톡을 보고 있다가, 그 놈이 찍었을 아내와 딸의 웃고 있는 사진이 카톡 프로필에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일 때문에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나 보다. 연락이 오거나 하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일을 그만둔 것과 관계없이 그날의 공포가 매일매일 생각났지만, 안전하게 빠져나온 게 어디냐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그렇게 그날 일은 물론 그 놈의 존재조차 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딱히 역겹다거나 무섭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참을 수 없을 만큼 구토가 올라와서 화장실로 뛰어들어가 뱃속에 있는 것들을 게워내고 말았다. 


그리고 번호를 삭제하고 잊고 지냈다. 


반전을 주려던 건 아니지만, 성실기 처음 글에 첫 문장으로 이런 걸 써도 되려나, 하고 망설인 것은 시나리오 쓰는 걸 그만두려는 걸 고백하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사실 지금 쓰는 이 글 때문이었다. 올해 1월과 4월에 이직을 2번이나 준비하게 되었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시나리오작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시나리오보다 취업에 필요한 자기소개서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집중해서 자기소개서에 뭘 어떤 걸 써야 하나 생각하다 보니, 나의 장점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이 두 사건이 떠올랐다.   


위기대처능력, 내 안전보다 일에 대한 욕심, 순발력, 상황을 파악하고 제어하는 능력,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능력, 원하는 것을 위해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방법, 같은 목적을 갖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능력, 서로의 불편한 감정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방법을 제시하는 능력 등등. 


다 쓰고 보니  저 사건 자체가 자기소개서에 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사실 몇 줄 안 쓰고 깨달았지만, 그냥 다 썼다. 그냥 쓰고 싶어서 최대한 생각나는 거 모두 다 써버렸다. 트라우마 극복이 다 되서 화도 안 난다.  

          

언젠가 나는 지금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내야 할 일이 올지 모른다. 그리고 자기소개서의 특성상 자신의 장점을 강조해야 하기 때문에 그때마다 이 일이 떠오를 것이다. 화가 안 나는 거랑 별개로 이력서를 쓸 때마다 이 일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다. 


기억에서 털어버리려면 이런 과정이 반드시 필요해서 쓸 뿐 처벌이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도 안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알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쓴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인 줄 알고 사는 인간들이 나 역시 싫다. 


10년째 입 닥치고 있는 나에게, 내가 이런 글을 써서 신상을 널리 알리기 전에 그들이 먼저 사과를 했어야 옳다고 본다. 나에게 아무런 사과의 말이 없는 걸 보면 호의가 계속 되고 있으니 당연한 권리인 줄 알까 봐, 이 글을 쓴다.      


중앙대 신문방송 관련학과 졸업하시고 2008,9년 당시 부산환경연합에 근무하셨던 1975년생 이승준씨. 



나이 들었을 때 나보다 딱 10살 많구나 생각을 했어서 기억이 나는데 학번은 93학번이었는지 94학번이었는지 체크를 못 해드렸네요. 송구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사전 경고 같은 걸 하던데 난 뭐 주인공도 아니고 현실은 영화가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물흐르듯이 정보를 공개하면 될 것 같다. 처벌이야 사법권 있는 분들이 하는 거고, 알려지기라도 해야 될 것 같다. 이런 새끼가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놔두기가 싫다. 


원래 인생 실전이니까, 그때 그 일이 그렇게까지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지금 와서 소속과 성명이 밝혀지는 걸 불쾌해하지는 않길 바란다. 불쾌해도 어쩔 수 없고. 


그리고 Z는 그날 이후로도 나에게 경찰에 신고하자고, 누가 너를 흠잡는 말을 하면 니가 그런 애가 아니라는 걸 자신이 끝까지 증명하겠다고, 해결될 때까지 경찰서건 어디건 같이 다녀주겠다고 나를 꾸준히 설득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신체적, 물리적 폭력이나 피해가 입증되지 않는 사건에 있어서 별다른 처벌이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여서, 신고해봤자 경찰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 차갑게 내 일에 신경 꺼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내가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다른 것에 신경을 하나도 쓸 수가 없었다. 차인 건 차인 거고 Z는 언젠가 만날 수 있으면 술 한번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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