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이야기, 그 이후의 진짜 이야기
친구들이랑 가끔씩 이런 농담을 했다. 밥 해 먹기 너무 귀찮은데 세상 어딘가에 진짜 우렁서방 같은 게 있어서 우리가 어지른 공간을 싹 치워주고 집에 돌아가면 밥도 해놓고 할 일 끝나면 장독대 같은 데 쏙 숨어있고 했으면 좋겠다고.
우리가 아는 우렁각시에 대한 주요 플롯은 딱 여기까지다.
‘우렁이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주인이 집을 나가면 몰래 청소와 밥을 해주는 미스터리한 존재.’
여기서 판타지 포인트는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내가 하기 싫어하고 귀찮아 하는 것을 완벽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이 우렁이 설화는 가난 때문에 장가 못 든 어느 나뭇꾼이 냇가에서 말하는 우렁이를 주워서 들이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밭에서 나뭇꾼이 ‘이 농사를 지어서 누구랑 먹고 살꼬.’ 하고 한탄을 하자 어디선가 ‘나랑 먹고 살지.’ 하는 소리가 들려서 보니 거기 우렁이 한 마리가 있어 기이하게 생각한 나뭇꾼은 우렁이를 집에 가져와 장독대에 넣어둔다. 그 뒤로 나뭇꾼이 들에 일하고 돌아오면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는 내용.
그리고 자신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이 누군지 알기 위해 나뭇꾼이 들에 일하러 가는 척 숨어있다가 우렁이 속에서 나온 각시가 다시 우렁이 껍질 속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못 들어가게 막고 혼인하자고 조르고 우렁이 속에서 나온 여자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으나, 나뭇꾼은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제발 자신과 혼인해달라고 매달려서 결국 부부의 연을 맺어서 함께 살게 되었다, 는 이야기.
하지만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이 나뭇꾼과 우렁이가 혼인해서 죽을 때까지 잘 살았다는 게 이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07/0000006894
이 기사를 읽고 제대로 알았다. 우렁이 각시 이야기는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행복의 주체는 우렁이지, 나무꾼이 아니다.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학중앙연구원, 1910년대부터 최근 채록한 전국 민간 설화모음집. gubi.aks.ac.kr에서 검색 가능)와 『한국구전설화』(임석재, 평민사, 1987년~1993년, 전 12권) 에 따르면 우렁이는 위의 이야기 이후, 자신의 가치를 알아본 고을의 원님과 백년해로 하고, 그 모습에 부아가 치민 나무꾼은 피를 토하고 죽는 게 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우렁각시는 우렁이껍질에서 나오게 된 일 이후, 나무꾼의 점심 심부름을 하러 가다가 원님의 눈에 띄게 되고,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본 원님의 끈질긴 구애에 마음을 열고 가마에 오른다.
그런데 이 '점심 심부름'은 원래는 우렁각시의 일이 아니었다. 각시의 특별함을 알고 있던 나무꾼은 각시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띄길 바랐다. 그리고 식구도 늘었겠다, 평소보다 많이 일하려고 집에 들르지 않고 계속 들에서 일을 하려고 각시를 시키지 말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점심밥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한국구전설화 10권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밖에 나가게 된 배경은 이렇다.
-총각은 고동이서 나온 각시하고 살민서 각시로 밖이 내보지앙코 집안에만 있게 했다. 하리(하루)는 밧 쫏는 일(밭 캐는 일)로 마니 하겠다 카고 점심밥을 날라다 돌라꼬 어무이보이 일르고 갔다. 점심때가 점심을 해서 시어무이보고 갖다주라 카이 시어무이는 솥에 누른 누름밥이 욕심이 났는디 지가 엄는 새에 미니리가 누른 밥을 다 긁어 묵을가바서 안갈라꼬 니가 갖다 주라 캤다. -1973년 하동 고광술 할머니
돈 없는 가난한 나뭇꾼에게, 세상천지 귀한 자기 딸 시집보내려는 부모는 없어서 그 옛날에도 나뭇꾼은 오랫동안 장가를 못 갔을 것이다. 그런 아들에게 간신히 생긴 각시에게, 그 와중에 밥이 잘 되어 누른밥이 생기자 그 누른밥을 이 각시가 다 먹을까봐, 그게 아까워서 나뭇꾼의 어머니는 며느리인 우렁 각시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이다. 누른 밥을 양보하기 싫어서, 그걸 자기가 먹어야겠어서. 나뭇꾼의 어머니에게 있어 그 각시는 누른 밥을 먹을 가치조차 없던, 누른 밥보다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누른 밥 때문에 밖을 나서게 된 각시는 원님을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그녀를 보게 된 원님의 구애의 서사는 꽤 길고 로맨틱하게 묘사된다.
한국구전설화 7 권에 실린 내용이다.
“여봐라 저어기 저 논두렁 밑이 서기가 뻗치고 있으니 멋이 있는가 가보아라!” 항게 사령이 얼른 달려가서 봉게 이뿐 각시가 웅크리고 있었다. 사령이 가자 헝께 각시는 금가락지를 빼서 사령헌티 줌서 이것밲에 없더라고 허라고 힜다. 사령은 금가락지를 받어각고 원님헌티 가서 “이것밲이 없십니다” 헝께, 원님은 아니다. 또 “서기가 또 뻗치고 있다. 가봐라.”
-1933년 전주 백남승 등의 할머니 이야기
나뭇꾼보다 월등히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의 남자가 한 여자를 향해 '상서로운 기운'이 있다고 표현하고, '상서로운 기운'의 그녀는 나무꾼에게 했던 것과 똑같이 몸을 숨긴다. 이제 우렁이껍질은 없지만, 몸이 안 보이게 논두렁 밑에 납작 숨는다.
그녀 근처로 온 사령에게, 그녀는 금가락지를 빼서 '상서로운 기운'이 이 금덩이였을 거라고 설득하라고 들려 보내지만, 원님은 겨우 금덩이 따위가 '상서로운 기운'이라고 믿지 않는다. 결국 원님은 그녀를 찾아내고 자신과 함께 하자 말한다.
거기서 포인트는 자신의 존재를 들킨 우렁각시가 '저는 남편이 있어요' 따위의 말을 하며 멍청하게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원님의 가마에 오른다.
고작 누른밥에 밀려서 심부름이나 가야하는 나무꾼 아내의 삶보다는, 원님 옆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는 걸 사회생활 안 해본 우렁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그 옛날, 시야를 방해하는 건물 따위는 없었을 테니 멀리서도 아주 잘 보였을 두 사람의 모습. 넓은 들판에서 자신의 각시에게 구애를 하고 있는 원님과 그를 따라 가마에 오르는 각시를 본 나무꾼은 집에 돌아와서 왜 어머니 대신 그녀가 밖에 나왔는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말렸음에도 어머니가 각시를 내보냈다는 것을. 그리고 다시는 그런 아내를 갖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에 마지막이었을 참한 색시.
별것도 아닌 그까짓 누른밥, 어머니의 그 누른 밥 욕심이 부른 참사였다. 당연하게도 그 일을 되돌릴 힘은, 나무꾼에게 없다.
총각은 각시를 원님헌티 뺏겨서 그만 슬퍼서 땅을 치고 울었다. 얼매를 울었던지 울고 울고 히서 그만 목구멍에서 피가 나와서 피를 많이 토하고 죽었다. 그런디 총각의 목구멍에서 파랑새가 나와서 어디론가 날라갔다고 헌다. - -1933년 전주 백남승의 이야기
그 사람은 죽어불고, 그 나랫님허고 부자로 살었대요. 각시허고.
-한국구비문학대계: 1985년 전북 이금녀의 이야기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각색된 동화책들에는 많은 경우 이 설화의 진짜 이야기가 빠져 있다.
동화책 기획을 하면서조차 기성세대의 남성 판타지가 들어간 걸까, 아니면 착하게 살면 참한 색시를 얻는다는 교훈을 주려고 그런 걸까.
그런데 이 이야기를 아무리 헤집어 봐도, 나무꾼이 ‘착하다’는 상황을 암시하는 내용이 없다. 그저 가난하고 열심히 산다는 것뿐이고 선함을 상징하는 어떠한 에피소드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사지 멀쩡한, 남자이기만 하면 충분해서 ‘착해야 할 이유’조차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설화에서 동화로 각색되면서, 이 이야기가 그저 평범한 남자 누구라도 열심히 살면 묘령의 선한 여인을 얻게 해주고 싶은, 기성세대의 판타지가 들어간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남자 어린이야 이 동화를 읽고 무의식적으로 가난해도 '평범하게만 살면 되겠군' 할지 모르겠지만, 여자 어린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그래서 우리 보고 어쩌라고?' 이런 생각을 할까?
모르겠다. 똑 부러진 어린이라면 여자건 남자건 '뭐야, 이 미친 동화책은.'이라고 책을 던졌으면 좋겠다. 갖다 버려도 좋고.
우렁 각시의 진짜 이야기를 읽고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시대 도공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본군들은 전쟁 이후 물자와 예술품들도 약탈해갔지만, 무엇보다 사람 약탈을 많이 했다. 말하자면, 재능 있는 사람들을 많이 끌고 갔다.
화가, 서예가, 도공, 다른 여러 분야 예술가들도.
비록 납치되어 일본에 가게 되었지만 예술가들의 재능을 알아본 영주 중에는 뛰어난 도공에게 성을 주고, 채굴권, 도공 감독권, 백자를 만드는 데 필요한 백자토광 관리권한 등 막강한 권리를 주고 예우해 준 경우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사가 번 번주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조선 도공 '이삼평'을 예우해준 일이다. 나베시마는 삼평에게 가네가에라는 성을 주고 정착하게 했다. 지금으로 치면 고급 아파트를 한 동 쯤 준 셈이다).
재능 있는 누군가에게 평온한 삶과 많은 권리를 갖게 해주자, 그 이후 원시적이던 일본 도자기는 안정된 삶을 갖게 된 도공들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조금 샛길인 이야기이고 다른 나라에도 물론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특히 자기가 좋아서, 한번 꽂히면 진짜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일이 너무 좋아서, 아주 미쳐서 잠도 안 자고, 영혼이고 몸이고 다 갈아서 하는 그런 식으로 일하는 거 말이다. 도공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천민 대접을 받을 때도 고퀄의 창작품을 내던 사람들이, 귀한 대접을 받으면서 창작활동을 했다면 그 퀄리티와 수량은 당연히 우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로, 일본 도자기 품질이 올라가고 도자기 산업이 성장했을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 도공들은 조선으로 돌아갈 기회가 생겼지만, 많은 수의 도공들은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재능이 뛰어나건, 뛰어나지 않건 조선에서 도공은 천민의 직업이었다. 돌아가면, 일본의 성에서 살던 조선의 도공은 다시 천민 대접을 받으며 조선의 움집에서 도자기를 만들어야 했다. 부모, 혹은 자식이나 아내가 고국에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비록 전쟁 덕분이라 해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그들 중 많은 수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렁각시가 나무꾼을 떠나 원님의 손을 잡은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자신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는 것. 자신에게 예의를 갖추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
우렁 각시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였을 거다. 평범한 남자 누구라도 열심히 살면, 어디선가(근데 어디선가가 도대체 어딘데) 살림해줄 각시를 얻는다는 고리타분한 기성세대 판타지가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