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서 내가 된다면_1
최고은 씨가 죽었던 2011년, 나는 26살이었다.
대학을 졸업한지 반년 정도 된 시기였고, 사실, 좀더 백수인 채로 글을 쓰는 삶에 도전해보고 싶었던 시기였다. 그리고 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생각이 진짜 많아졌다. 내 삶도, 저렇게 끝나버릴지 모른다는 우리 사회 메시지 같기도 했고, 혹은 최고은 씨의 유언 같기도 했다.
메시지, 라는 게 사실 안 받아들이면 끝인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시나리오 작가 의 삶이 사각지대라는 것은 분명했다. 메시지, 라기보다는 나는 그 뉴스가 보고서 같아 보였다.
그리고 평범하게 취업해 2년 정도 일을 했다. 글 쓰는 삶을 되도록 꿈꾸지 않으려 애쓰며 말이다. 2년의 경제활동으로 돈이 모였으리라 생각하지는 말길 바란다. 진짜 많이 안 모였으니까. 과소비를 하지는 않았다. 학자금대출을 갚느라 그 돈은 다 사라졌다.
그런데도, 그 동안에도 작가로 살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새어나왔다. 조금만 더 도전해보고 싶었다.
조금만 더. 아니, 사실은 최선을 다해서. 후회 없이.
잘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도 나를 계속 부추겼다. 아마도 그게 20대의 패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1살만 더 먹으면 서른이라는 조급함도 도전을 부추긴 이유였을 것이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에게도 다시 글을 써보고 싶다고 말을 하곤 했었다.
술을 많이 먹었던 어느 날, 남자친구의 속마음을 들었다.
넌, 재능이 없어. 그러니까 맨날 다시 도전해 보겠다는 헛소리 좀 그만해. 너보다 뛰어난 애들도 다 도전했다가 다시 부산 내려왔으니까. 괜히 도전해서 상처받지 말고 나랑 결혼해서 애 낳고 살면 내가 행복하게 해 줄게.
그는 내 글을 단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단언컨대, 나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평가해주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난 지금 아무것도 이루지 못 한 게 맞으니, 이 친구의 예언이 정확하다고 해야겠다. 아마 궁예 같은 안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그 남자친구가 저런 말을 해서 더욱 도전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친구의 말이 진짜더라도, 이 친구와 인생을 함께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제일 컸다. 사실은 그다음부터 함께 있는 1분 1초가 불행했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자신과 결혼하면 행복하게 해주겠다는데, 몇 마디 말로 아주 쉽게 불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무슨 행동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런 말을 계속 했다. 꿈을 포기하는 게 행복이라고 믿으라는 말까지 들었다.
헤어졌다.
헤어지고 몇 주 정도 뒤에 휴대폰을 보고 있다가, 자려고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꿈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다는 가정을 하고 인생을 마무리할 때쯤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려보았다.
요즘 세상에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것 자체가 환상이긴 하지만, 가정이니까 최대한 편의를 봐준 가정을 상상해보았다.
다정한 남자와 결혼하여, 둘이 열심히 벌어, 크게 돈 걱정 없는 생활, 착하고 모나지 않게 자기 앞가림 할 수 있게 커준 아이들, 그리고 내조를 잘하는 아내로 살며 큰 걱정 없이 69세쯤 된 나. 연금도 꼬박꼬박 나오고, 하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노후의 모습을 그려봤다.
사실, 저것도 다 거짓말 같은 일이다. 요즘 세상에 돈 걱정 없는 생활 하는 집이 어디 있으며 아이들이 착하고 모나지 않게 크기가 어디 쉬운가. 내가 내조를 잘 할지도 솔직히 미지수고. 결혼하기 전에야 잘 했겠지만 죽을 때까지 다정한 남편이 뭐 얼마나 있겠는가.
하지만.
그냥 저런 모든 조건이 주어졌다고 치고, 69세의 내가 과연 29살의 내가 도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후회할 것 같았다.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았다.
할머니가 된 내가, 지금 69살이니 한 십년만 젊었으면, 아니다, 10년이래봤자 1년뒤면 환갑인데, 20년만 일찍 도전해볼걸. 이라는 생각을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치면 49살인데, 애들이 한창 사회와 자아에 대한 고민이 많을 때일 텐데 자녀들을 케어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내 그릇은 그렇게 크고 넓지 않으니 그럼 난 내 꿈이 가로막힌 것 같아 죄 없는 아이들을 원망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