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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지 않는 옷이라면

날개옷도 싫어

by 시은

대학교 때 연극영화과에 연기 수업을 들으려 했다가 반려당한 적이 있다. 내가 어떤 연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연기를 하게 하는 대본’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식으로 연기 연습하는지 궁금했다. 그 수업을 듣다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재로 쓸 만한 에피소드가 생길 수도 있고.


첫 수업 날 자기소개 겸 인사를 마친 후, 교수는 아니지만 직책이 있는 듯한 누군가가 다가와, 죄송하지만 이 수업을 취소해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말을 했다.


나는 왜요,라고 물었다.


내가 이 수업에서 연기과 학생들과 승부를 걸고 연기를 해서 학점을 잘 받겠다는 것도 아니고, 연기할 수 있게 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연기란 무엇이고 연습은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하지만 그/그녀(성별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수업’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연기 수업은 무대에 올릴 연극의 배역을 모두 다 맡아서 진행되고 그것으로 또 평가가 되는 수업이고, 수업 외 연습도 많고 무엇보다 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연기를 업으로 가지려고 하는 학생들인데 나 같은 사람이 호기심에 들어와서 배역을 맡았다가(무슨 배역이든, 배역을 아예 안 맡을 수는 없다고 했던 것 같다) 학기 말 무대 올릴 때쯤 개인적 사정이 있네 어쩌네 하면서 단체 연습 빠지고 결국엔 공연에서 빠지게 되면 연습 분위기나 다른 사람들의 참여 의욕 같은 것을 망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설명이었다. 이 수업을 가볍게 보시지 말아 달라고도 덧붙인 것 같다(아니면 그 사람의 태도가 나에게 그렇게 보였거나).


내가 시작을 잘 안 해서 그렇지, 어떤 걸 시작하면 열심히 꾸준히 우직하게 잘하는 사람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 정말 학기말에 안 빠지고 공연 참여할게요! 수업 듣게 해 주세요!’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참여하지 못해서 아쉽긴 하지만 그 사람의 거절이 나는 합리적이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친절하지도 배려심 있어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 사람의 태도가 적절하고 경우에 어울리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분야에 있어서 성실한 인간인 걸, 나는 안다. 하지만 학기말 다 되서 실제로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그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를 그 수업에서 내쫓은 그/그녀도 모르지만 사실 나도 모른다.


막상 그 수업을 들었다가 함께 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부지런하게 수업을 듣고 연습을 하다가, 공연 준비에 한창 바쁜, 정말 중요한 어떤 시기에 내가 원하는 공모전 소식이 갑자기 뜨면 그거 준비하느라 ‘죄송한데 빠질게요.’ 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호기심에 수업 들으러 온 어중이떠중이 같은 학생 취급을 받아서 아쉽긴 하지만 거절해야 할 때는 해야 하고, 나는 그 날 그 사람의 거절이 꽤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뭐라고.



그게 벌써 14년 전 일이었는데 얼마 전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연기 교실’이라는 것을 알게 돼서 신청해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겨우 취미 활동 3개월 함께 한 거 가지고, 누군가를 평가하면 안 되겠지만 수업을 같이 듣던 분 중 한 분이 타인의 장점을 잘 칭찬해주시는 분이었다.


나에게도 그분이 어떤 내 행동에 대해 친절하고 배려심 있다고 칭찬을 했는데 나는 그 칭찬이 불.편.했.다.

그 의도가 순수하고 좋은 의도라는 것을 분명히 느끼면서도 불편했다. 나는 그녀의 칭찬을 부정하며 말했다.


-어.. 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잘못 보신 거예요. 저 그런 친절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에? 아닌데. 시은 씨 그때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했잖아요. 그 정도면 친절하고 배려심 있는 성격 같은데.


이타적으로 보이는 거 싫은데. 그렇게 보이는 거 원치 않는데. 이타적으로 보이기 싫은 내 마음을 뭐라고 설명하며 되받아쳐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날이 마지막 수업이니 다시 볼 일이 없을 텐데 설명하기 복잡한 이런 내 기분을 정확히 설명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었다. 무엇보다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이 꼭 알아야 할 만큼 중요한 정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 생각은 똑같다. 그 사람이 칭찬한 것 같은,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나는 친절하고 괜찮은 배려심 있는 사람이고 싶지도 않고 무례한 사람이고 싶지도 않다. 내가 친절한 것도 싫고 남이 나에게 친절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친절을 원하거나 그걸 칭찬하는 것도 싫다. 친절도 싫고 무례도 싫고 선 넘는 것은 아주 아주 싫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주 친절한 사람’이 100점, ‘적당히 친절한 사람이 70-80점, ‘거의 안 친절한 사람’이 30-50점 이면 나는 애써 노력해서 계속해서 30점 정도의 인간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더 높은 점수를 얻고 싶지 않다.


친절함. 그 모습이 비록 사람들이 높게 쳐주는 장점이라 해도, 내가 원하지 않는 ‘그 모습’을 갖고 싶지도, 칭찬받고 싶지도 않다.


그 칭찬은 ‘입으면 아름다워 보이는 날개옷’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 옷을 입기 싫다면 거두어줬으면 좋겠다. 걸치기도 싫다. 어울릴 것 같다며 대 보지도 말았으면 좋겠다.


아름다울지 몰라도 생각만 해도 불편하다.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아름답거나 괜찮은 인간이고 싶지 않다.


아무리 아름다운 날개옷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꾸역꾸역 입고 싶지 않다. 비난만 싫은 게 아니다. 칭찬도 얼마든지 싫을 수 있다.


칭찬이라 해도 당사자가 거절하면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아, 네. 그렇군요,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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