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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성이라는 생존전략

참는 사람들은 티가 난다

by 시은

작은 아씨들 1화 초반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s#. 화장실 - 낮

마리 : 넌 분하지도 않냐? 불공평한 대접 받는 거?

언제까지 사건 사고 일일이 쫓아다닐 거야. 이제 전문성을 찾아야지.

인경 : (또박또박) 전 적절한 대우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현장성이 제 전문성입니다.

마리 : (가소롭고 의아한 듯)가난하게 컸어?

인경 : (당황해서 말을 하지 못하는데)

마리 : (딱하다는 듯이) 하도 잘 참아서(하고는 화장실을 나가는).




참는 사람들은 티가 난다. 하지만 참는 사람들은 ‘참는 것’이 디폴트가 되어 자신이 참는다는 것조차 모른다.


지금 말한 장면 조금 앞에 세 자매의 엄마가 250만원(인혜의 수학여행을 위해 인주,인경이 모은 돈)을 들고 해외로 토낀 일이 있다. 첫째인 인주가 그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말한다.

-인경아! 김치 갖다버려!


인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눈물이 터지는, 분한 자신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그 자리에서 말한다.

-야, 나 이거 슬퍼서 우는 거 아니다? (크흡)너무 빡쳐서 그런 거야.


인주가 자신의 분노를, 엄마가 담근 김치를 향해서라도 분출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인경은 김치를 버리지않고 김치 뚜껑을 닫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잊어버리자. 난 벌써 잊어버렸어.


이게 바로, 참은 거다. 그것도 꾹꾹 눌러, 참은 거다. 엄마를 향해 당연히 화가 날 법한 일인데도 화내지도 않고,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지도 말하지 않는다. 어떤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문제 해결을 위한 말만 한다. 동생 인혜에게, 너 수학여행 갈 거라고, 언니들이 돈 주말까지 만들거라는 말만 한다. 인경이 역시 빡치고 어이없을 텐데도.


화를 내도 공감받을 수 있고 아무도 자신을 비난하지 않을 상황에서조차, 화를 내지도 감정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이 마음의 바닥에는 의식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나까지 그러면 안 돼. 나라도 참아야지.’의 자세가 있기 때문이다. 둘 다 화내도 되는데. 셋 다 화내도 되는데.




어른인데도 별 것도 아닌 일에 안 참고, 못 참는 인간들이 있다.


부모나 양육자가 그 사람에게 무조건 ‘아이구 이쁘다.’ 하며 키운 것이 어른이 되서까지 구축이 되어 집안에서 하던 행동을 사회에서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다. 집안은, 그 자체로 작은 사회이니까.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은 주변에서 미리 보호막을 엄청나게 형성해주던 관계 속에서 성장한 탓에 타인의 감정에, 문제해결에 무관심하다. 타인의 감정은 배려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고, 문제해결은 남이 해주는 것으로 학습된 채 성장해버리기 때문에.


집요하게 반복되는 성격은 기질일 수도 있지만 주로 성장하면서 구축된 생존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무심함, 무책임함도 누군가에겐 생존전략일 수 있다. 누군가가 내 일을 다 처리해주는 것보다 더 편한 생존방식이 어디 있겠는가. 에너지도 훨씬 덜 든다.


반대로 집요할 정도로 참는 사람들은 아마 어린 시절,참는 것이 생존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뜨거운 감정이 올라와도 참았을 것이다. 참으면 우선 이 상황은 넘어가지니까. 해결이 되는 건 아니지만 머리 좋은 사람들이 참으면, 그 와중에 또 냉정하게 상황을 인지하는 힘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생존전략이기도 했던 참을성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만든 깊고 빠져나오기 힘든 늪에 스스로 계속 들어가는 것이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그러다 보면 그 사람에게 참는 것은 이미 기본자세가 되어 남들 보기엔 ‘왜 저렇게까지 참지..’ 하는 상황이 그 사람에겐 참는 게 아니라 일상이 된다. 참을성이라는 늪의 일상.


상황의 온도를 낮추고 싶을 것이다. 아마도 ‘주변에서 화낸다고 나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아마 하고 있겠지.


그만 생각해. 우리의 감정은 필요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그 감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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