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이 그러라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몰라
사랑의 힘으로 남자를 구하라는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특히 엄청난 희생을 하면서까지 사랑을 하라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지겹다.
이 책은 발레 공연 속에 녹아있는 여성 캐릭터들에 대한 무용칼럼니스트 윤단우 작가의 비평집이지만 발레나 무용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읽어도 무리 없이 재미있게 읽을 수가 있다.
1장의 제목부터 안 읽을 수가 없다.
구원자 뮤즈로서의 여정.
첫 장부터 나보고 빨리 읽으라는 듯한 제목이다.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문화/예술 계통에 있던 남자들은 꼭 헤어지지고 하면 ‘니가 날 구해줘야지. 이렇게 나를 버리면 어떡하냐.’는 뉘앙스의 애걸, 또는 비난 섞인 말을 했다.
처음에는 움찔했다. 심지어 죄책감도 가졌다. ‘내가 너무 냉정한가..?’ 특히 남자 친구라는 사람이 울면서 저런 얘기를 하면 ‘그래, 노력하겠지.’ 이런 나이브한, 그리고 근거라고는 없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런 말을 들었을 당시, 어려서 뭘 모르기도 했고, 아직 덜 당했을 때라 그런지 모성애라는 게 내 속에 있을 때여서 딱히 믿음직한 느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나고 말았다(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내 속을 가지각색 다양한 방식으로 어지간히 썩였고 결국 헤어졌다. 자세한 얘기를 하자면 너무 기니까 pass….
하지만 이런 경험이 두세 번 반복되자 나이도 나보다 많은 남자가, ‘자신을 버릴 거냐 그런 거냐’ 하는 얘기를 듣으면 차마 티는 못 냈지만 속으로 기가 찼다.
책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1장부터 너무 분노가 차오르는 부분이 많다.
지가 배신해놓고도 ‘진정한 사랑’이라면 끝까지 자신을 사랑하라고 하는 놈들은 과거에도 있었다(슬프게도 미래에도 있겠지).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아오 젠장).
아름답고 현명한 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이 거의 목에 올가미라도 걸린 것처럼, (연인이라고는 하나) 인성이 빻은 남자의 사랑을 못 얻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식의 태도가 아무리 운명 타령을 해도 감정이입이 안 되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다 이유가 있었다.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 누구의 첩이라는 포지션 속에서만 살 수 있었던 오래된 역사가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그 대가도 훨씬 적은 일만 할 수 있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 보통은 남자의 그늘 아래에서만 생존이 가능했고, 그 구조 때문에 사랑을 얻지 못하면 죽으려고 하는 여자 캐릭터를 불러내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가장 친숙하게 아는 발레 공연 중에는 <호두까기 인형>이 성별 고정관념이 특히 강한 스토리다.
p.159
<호두까기 인형>에서 소년은 소녀를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한 소녀는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무기력하게 우는 것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현실의 반영인 동시에 현실에서 남아는 원래 그렇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그래도 되는’ 존재이고 여아는 짓궂은 장난의 대상이자 그 장난에 스스로 반격하지 못하는 ‘그럴 힘이 없는 존재’로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호두까기 인형> 속 여주인공 클라라 역시 ‘호두까기 인형’을 돕고 구해서 그를 왕으로 만들고, 그의 왕국에 초청되어 왕비가 되는 결말로 끝이 난다.
호두까기 인형이 해피엔딩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고 끝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왜 꼭 여주인공을 뮤즈 화하고 그 뮤즈는 남주를 구해야 하는가.
이 책에 실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는 어렸을 때 인어공주가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버리고, 물거품이 되는 것도 못마땅했다. 거기서 설정된 인어공주의 나이는 불과 15세였다.
‘에리얼, 다른 남자 만나.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단다. 바닷속은 어떨지 몰라도 지상에는 여자 대비 남자 수가 훨씬 많아. 이 남자가 별로야? 그럼 다음 남자. 또 별로야? 자, 그럼 또 다음. 별로면 또 다음.’
나는 조금은 다른, 아니 사실은 아예 다른 선택지를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