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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ing Bad

막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너무나 잘쓴 이야기

by 시은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러니까 글이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을 제대로 오랜 시간 해본 사람이라면 문득 깨달아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통찰력 있는 대사나 행동을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집어넣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생각이 떠오른 것이든, 어떤 경험에서 터득하게 된 것이든 어쨌든 잠언집에도 실려도 괜찮을 것 같은 뛰어난 통찰이 일상에서 선물처럼 생길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좋은 생각을, 쓰고 있는 이야기 속에 넣으려고 하면 그 부분만 튄다. 이 ‘통찰력 있는 생각’을 내가 쓴 글에 넣고 싶은데 넣으면… 튄다. ‘이 캐릭터가 이런 얘길 지금 왜…?’ 이런 느낌이 들고 마는 것이다.


쓰는 사람이 봐도 튀면, 읽는 사람도 당연히 이질감을 느낀다. 너무 좋은 생각이지만 딱 그 부분만 매끄럽지 않다. 그러면 몰입이 깨진다. 이야기에서 몰입을 깨뜨리는 통찰력은, 절대 좋은 통찰이 아니다. 얼마나 뛰어난 생각이든, 원래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찰떡같이 한몸이어야 좋은 이야기다.


요새 빠져 있는 미드 <브레이킹 배드>를 볼 때 창작자로서 문득 소름이 돋는 부분은 기가 막힌 반전이나 대단히 정교한 플롯 같은 게 아니다(그에 비하면 오히려 이런 건 쉽다, 라는 단순한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어쨌든 이런 테크니컬한 부분은 오랜시간 반복해서 쓰다 보면 쓰는 근육이 생겨서 어느 순간, 제법 쓸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잘 썼다고 생각이 드는 장면들은 오히려 이런 거다.


별 비중 없는 캐릭터의 통찰력 있는 대사. 심지어 그런 대사가 나오는 상황이 뭐 대단한 특별한 상황도 아닐 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은, 지구상 어디에서나 하루에 12번은 있을 법한 흔하디 흔한 상황에서 그런 대사가 매끄럽게 나온다는 것이다.


농구 플레이를 예로 들면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 딱히 슛을 못할 것 같은데, 기가 막힌 슛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그걸 또 ‘나 잘했지?’ 같은 제스처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 같은 선수를 보는 그런 느낌과 비슷하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햐, 기가 막힌다, 이런 느낌.




브레이킹 배드 시즌2의 10화에서 월터의 부인인 스카일라는 폐암인 남편의 병세가 호전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크게 기쁘지가 않다. 원래 몇 개월 밖에 안 남았다고 했을 때는 그가 ‘오래 살기만’을 자신이 바랐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은, 뭔가 설명할 수 없지만 서운하고 이상한 복잡한 기분인 것이다.


어쨌거나 스카일라는 출근을 했다. 그리고 직장에서 맡은 업무를 하고 있는, 그런 이상한 기분의 스카일라에게 상사인 테드가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퇴근하려는데 스카일라가 위에 설명한 그 이상한 상태이다. 상사가 인사를 건넸으니 그녀도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퇴근하고 가려던 테드는 그녀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사무실로 들어와 묻는다.


테드 : 무슨 문제인데요?

스카일라 : 그냥… 달라진 느낌이 없어요.

테드 : (책상 맞은편에 앉고)그 좋은 소식 말인가요?

스카일라 : (끄덕인다)사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냥 기한이 연기됐을 뿐이죠. 터널을 통과하면 빛이 보여야 하는데… (말잇못) 최근에는 그저…

테드 : 다른 터널이 또 있는 느낌이죠.

스카일라 : (울먹이다)미안해요. 난 정말 감사할 줄 모르는 것 같아요. (작게 운다)

테드 : 모르겠어요. 내 경우엔 독감이었죠.

스카일라 : 네?

테드 : 우리 아버지도 막판에 좋아지셨어요. 월트만큼 좋은 소식은 아니었고 상황도 달랐지만 모두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죠.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병이 났어요. 독감이었죠. 며칠을 앓아누웠어요. 침대에서 나오지도 못하고 꼼짝 못했죠. 타이밍 참 좋죠?

스카일라 : 그러게요.

테드 : 난 두 상황을 연결짓지도 못하고 이 생각만 했죠. “왜 하필 지금 이러지?” 가족을 지탱하는 자리가 그래요.

그렇게… 가족에게 든든한 존재가 되는 일은 온몸의 힘을 빼앗는 거죠.

스카일라 : 그래요.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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