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누가 맡나요, 애가 혼자 크나요.
“내가 애를 어떻게 봐!”
엄마가 밥을 짓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내가 울자 아버지는 나를 집어던졌다고 한다(1,2살 때의 일이라 내 기억에는 없다.)그때 마침 들어온 엄마가 그걸 보고 한소리 하자, 아빠가 부루퉁해하며 했던 대답이 저 말이었다.
내가 애를 어떻게 봐.
아버지는 그때 직업이 없어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 밥도 할 줄 몰랐지만 아이도 볼 줄 모른다고 했다. 당연히 청소, 빨래도 엄마가 했다. 돈은 어디서 났냐고? 이웃에서 빌려서 살았다고 한다. 외가에 손을 벌리거나.
당시 아버지는 그냥 사지 멀쩡했을 뿐, 할 줄 아는 것이나 하는 것은 없었다. 밥 차려주면 먹고, 취업 준비한다고 나가서 친구랑 술 마시고 오고, 씻고 자거나 가끔 안 씻고 자고. 할머니가 엄마 시집살이 시켜서 잠시 하소연하면 니가 참으라고 하고.
요즘 틱톡이나 인스타그램에 아버지가 한 육아를 소재로 만든 짧은 숏폼들이 많이 있다.
아버지에게 맡긴 아이의 행색이, 엄마가 돌볼 때보다 엉망진창인 걸 비교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겠다고 올린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엄마는 그 자리에 없고 아빠만 있는데, 아빠가 육아를 한답시고 앞에 있으면서도 아이가 울거나 떼를 써도 어른답지 않은 모습으로 놀면서 낄낄거리는 영상.
제목은, <아빠에게 육아 맡기면 안 되는 이유ㅋㅋㅋ>.
그럼 이 아이의 돌보는 일은 결국 누구에게 돌아갈까. 높은 확률로 엄마가 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빠에게 맡겨진 동안 적절한 정서적 피드백을 받지 못해 생긴 감정의 서운함은 그 다음 대상에서 더 격렬한 돌봄과 애정을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더 칭얼거리고, 더 울고, 더 떼쓰게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아버지가 나를 집어던진 이유는, 집어던지면 울던 내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기억에도 없고 육아 전문가도 아니니 그때의 내가 왜 집어던져지고 안 울었는지 모르지만, 아마 놀라서 울음을 멈췄던 게 아닐까 짐작해본다.
영상을 찍고 난 이후, 아마도 2배 더 피곤해진 육아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쯤 생각하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저런 제목의 영상을 만들어서 웃기는 게 그리 중요한 일인가 싶다. 육아는 유머나 웃음으로 잠시 뭉갠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니까. 실시간으로 피곤하고 디테일한 노력을 기울여야 '그나마 잠시 해결'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다.
미디어와 사회적 목소리는 오랫동안 ‘어머니의 사랑은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 어머니의 사랑이 너무 위대해서 매길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치를 매겨주기 싫은 것이다. 가치를 매기면 지불해야 하니까.
<재벌집 막내아들> 8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https://youtu.be/BOpAMhOQ2NE
오세현 : 세상 모든 일엔 가격표가 붙어있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숭고한 가치 뭐 그런 건 없습니다. 사랑을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숨) 그냥 공짜를 좋아하는 도둑놈 심봅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그건(당연하다는 듯)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죠.
사회적으로 합의한 가격표가 버젓이 매겨져 있는데 지불하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된다. 도덕적으로 불편한 감정이 들게 된다.
나는 세상이 말하는 ‘어머니의 사랑에 가격표를 매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격표를 매기면 지불해야 하니까, 앞으로도 지불하지 않고 이용하고 싶은 심보인 것이다. 반 발짝 더 나가서 얘기하자면, 이 지점이 최근 2030 여자들이 어머니가 되지 않으려는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사랑을 올리치기 하는 척 하지만’ 사실은 금액은 호되게 후려쳐서 결국은 ‘공짜로 이용하려는 걸’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고 비켜가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