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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Sep 04. 2023

홍대에서 분노조절장애인간을 만났다

꼭 그 장소에서 그래야 했을까

오늘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면접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홍대에서 신도림 방향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을 탔다.  사람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앉을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문 앞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얼마 후,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어떤 남자가 목이 찢어지게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뭐가 잘 안 풀려서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얼핏 느끼기에도 그의 분노의 크기나 양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위치에 서있었는데도 그 남자의 목소리 때문에 공포감을 느꼈을 정도이니, 아마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나보다 배로 그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남자는 쉬지 않고 악을 썼고, 그 내용이 점차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 왜!!!!!! 왜 자꾸 돈 보내달라고 하는데, 왜!!!!!!! 나도 아껴 써야 간신히 살 수 있는데 왜!!!!!! 으아아!!!!!!!! 진짜!!!!!! 낳아놓고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왜 낳았냐고!!!!!!!! 엄마는 왜!!!!! 맨날 이러는데!!!!!!! 나도 돈 없다고!!!!!!!!!!!!!!! 나도 돈 없다고!!!!!!!! 나도 돈 없다고!!!!!!!!!! 아껴 써야 겨우 살 수 있다고!!!!! 진짜!!!!!!!!!!"


이런 내용의 통화를, 지하철 4-5 정거장 정도 지날 때까지 분노에 차서 악을 쓰며, 그러면서도 끊지 않고 계속했다.




처음엔 한 정거장쯤 지났을 무렵에 전화를 끊을 줄 알았다.


다른 말은 없고, 계속 '돈 없다!!! 왜 계속 돈 달라고 하냐!!! 나도 아껴 써야 이번달 겨우 살 수 있다!!!‘ 이 내용 밖에 없었으니까.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정거장을 지나도록 남자가 분노의 통화를 이어가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몇 사람들이 주춤주춤 지하철이 정차하는 순간을 기다려 역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통화가 시작될 당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 다른 자리로 피해 있었지만, 새로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모르고 그 사람 근처에 서 있다가 통화하는 고함 소리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자리를 피했다.  


그때쯤 1577-1234(서울교통공사 민원신고센터. 동영상, 문자 전송 가능)로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신고를 한다 해도, 경찰 왔을 땐 조용히 있거나 숨으면 그것대로 무서울 일이었다. 위의 문자를 보낸 뒤, 얼마 후에 공포감을 조성하지 마라,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오긴 했지만 그 사람이 그걸 들었을 리 만무했다.


 



그 남자는 내가 문자를 보내는 동안 내린 건지, 아니면 숨은 것인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넉넉지 않는 월급을 받는 자식에게,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이렇게 한 사람이 미쳐버릴 정도로 집요하게 돈을 달라고 하는 부모님이 문제가 있는 것이겠으나, 그 분노 배경을 안다고 해서 그의 분노조절장애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화가 난다고 해서, 그렇게 공공장소에서 크게, 주변이 겁에 질릴 정도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통화를 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기분 나쁨‘을 그 자리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 태도가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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