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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에서 분노조절장애인간을 만났다

꼭 그 장소에서 그래야 했을까

by 시은

오늘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면접을 보고 집에 가는 길에 홍대에서 신도림 방향으로 가는 2호선 지하철을 탔다. 사람이 아주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앉을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문 앞쪽에 자리를 잡고 섰다.


얼마 후,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어떤 남자가 목이 찢어지게 악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뭐가 잘 안 풀려서 누구한테 화를 내는 건가?'


생각하고 있는데, 얼핏 느끼기에도 그의 분노의 크기나 양이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위치에 서있었는데도 그 남자의 목소리 때문에 공포감을 느꼈을 정도이니, 아마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나보다 배로 그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남자는 쉬지 않고 악을 썼고, 그 내용이 점차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마 왜!!!!!! 왜 자꾸 돈 보내달라고 하는데, 왜!!!!!!! 나도 아껴 써야 간신히 살 수 있는데 왜!!!!!! 으아아!!!!!!!! 진짜!!!!!! 낳아놓고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왜 낳았냐고!!!!!!!! 엄마는 왜!!!!! 맨날 이러는데!!!!!!! 나도 돈 없다고!!!!!!!!!!!!!!! 나도 돈 없다고!!!!!!!! 나도 돈 없다고!!!!!!!!!! 아껴 써야 겨우 살 수 있다고!!!!! 진짜!!!!!!!!!!"


이런 내용의 통화를, 지하철 4-5 정거장 정도 지날 때까지 분노에 차서 악을 쓰며, 그러면서도 끊지 않고 계속했다.




처음엔 한 정거장쯤 지났을 무렵에 전화를 끊을 줄 알았다.


다른 말은 없고, 계속 '돈 없다!!! 왜 계속 돈 달라고 하냐!!! 나도 아껴 써야 이번달 겨우 살 수 있다!!!‘ 이 내용 밖에 없었으니까.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정거장을 지나도록 남자가 분노의 통화를 이어가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몇 사람들이 주춤주춤 지하철이 정차하는 순간을 기다려 역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통화가 시작될 당시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다 다른 자리로 피해 있었지만, 새로 지하철을 탄 사람들은 모르고 그 사람 근처에 서 있다가 통화하는 고함 소리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자리를 피했다.


그때쯤 1577-1234(서울교통공사 민원신고센터. 동영상, 문자 전송 가능)로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신고를 한다 해도, 경찰 왔을 땐 조용히 있거나 숨으면 그것대로 무서울 일이었다. 위의 문자를 보낸 뒤, 얼마 후에 공포감을 조성하지 마라,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지 말라는 방송이 나오긴 했지만 그 사람이 그걸 들었을 리 만무했다.




그 남자는 내가 문자를 보내는 동안 내린 건지, 아니면 숨은 것인지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넉넉지 않는 월급을 받는 자식에게,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로 이렇게 한 사람이 미쳐버릴 정도로 집요하게 돈을 달라고 하는 부모님이 문제가 있는 것이겠으나, 그 분노 배경을 안다고 해서 그의 분노조절장애가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화가 난다고 해서, 그렇게 공공장소에서 크게, 주변이 겁에 질릴 정도로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통화를 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기분 나쁨‘을 그 자리에서, 그 많은 사람들에게 전시하려고 그랬을 것이다. 나는 그 태도가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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