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난다.
이런 것까지 설명을 해야 하고, 이런 경우까지 참아야 하고, 그래서 이렇게 그 상황을 기나긴 글로 써야 한다는 게.
얼마 전 지역 도서전에 참가해 책방 사장님, 작가 2인, 나까지 총 4명의 여자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 동안 판매 부스를 지켰던 적이 있었다. 3일 중에서 각자의 일정이 허락하는 날, 허락하는 시간에 나와서 탄력적으로 자리를 함께 하고, 자기 책 판매를 하면 그렇게 판매한 책 수익의 대부분이 작가에게 가는 판매 시스템이었다.
우리 4인 모두 그 도서전이 열리는 지역과 꽤 멀리 거주지가 있어 그 도시로 가려면 집에서 몇 시에 출발할지 계획을 짜야 했고, 그 이전부터 각자의 sns를 통해 이 도서전의 참여를 알리고, 책과 홍보물 준비를 해야 했다. 잠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내 책의 독자로 만들기 위해, 그래서 그들의 시선을 잠시라도 끌기 위해, 책과 관련된 체험행사 준비를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시간이 되면 와달라는 인사를 돌리는 등 갖가지 일들을 해야 했다.
각종 홍보물, 책을 세워놓을 고정 도구, 테이블에 씌울 천 등도 준비해야 했고, 더불어 주차장에서 도서전이 열리는 지정 공간까지 책 수십 권을 옮겨야 했다(폴딩박스로 옮기긴 했지만). 그 더운 날에, 티와 속옷이 땀에 절도록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이 모든 일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들의 목록이었지만, 정확히 어떤 식으로 돈이 될지, 혹은 돈이 안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돈이 될지 안 될지 모른다고 해서 안 해도 되는 일은 아니었다. 창작 활동을 실제적으로 수익으로 바꾸어 내는 일은, 내 노력과 디테일한 과정 하나하나가 어느 과정에서 어떻게 연쇄 작용을 일으킬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돈으로 연결이 되지는 않더라도, 모든 과정이 중요했다.
나를 화나게 한, 지금 글을 쓰게 한 문제의 남자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해서 참가한 도서전 첫째 날부터 기이한 모습으로, 혹은 문제적인 모습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기이한 행동까지 할 것도 없었다. 그는 얼핏 봐도 오랫동안 씻지 않은 모습에, ‘웃옷을 안 입은 채’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 그리고 맨발 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공원이라는 공공장소에서, 그리고 100여 팀 가까운 출판사와 책방이 참가한 도서전이라는 공식적인 행사 자리에서.
도서전 행사의 치안을 위해 돌아다니는 경찰들이 익숙하게 간단한 주의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이 공원에서 주로 숙식을 해결하는, 오래된 노숙인인 듯했다. 불쾌하거나 무례한 행동을 아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았기에, 공공장소에서 저런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 자체도 시각적으로 불편하긴 했지만 불쌍한 그 남자를 따로 제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기분 좀 나쁘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행사의 마지막 날인 셋째 날, 책방 사장님이 전면에서 서서 고객 응대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셔츠를 걸치긴 했으나 단추를 하나도 잠그지 않아 가슴팍이 다 드러난 채로, 우리 부스 앞에 서서, 진열된 책을 쓰윽 보더니 말했다.
“여기는 뭐, 페미니즘 책만 파는 그런 덴가 봐요?”
나는 20대 때 데이트 폭력과 NGO단체에서 일하면서 관계자로부터 성폭행당할 뻔한 일 등, 페미니즘에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가 없는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책방 사장님은 책을 많이 팔고, 그래서 돈을 잘 버는 데 관심 있지, 무슨무슨 즘(ex. 페미니즘, 마르크시즘)으로 일컬어지는 사상 문제에 관심이 크게 없는 분이다.
아니, ‘크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아예 없다. 같은 이유로, 종교에도 관심이 없고, 책방 운영에 대한 지원과 정책에 대해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는 있지만 어떤 정치색을 가지신 분도 아니다. 왜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걸 언급하느냐면, 이 도서전은 특정 정당의 예산 운영(그리고 예산 분배)에 불편함을 느낀 몇몇 대형 출판사들이 보이콧을 한 도서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도서전을 걸렀다면 이 도서전도 나올 곳이 아니었지만 사장님은 독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마켓이면 그런 것 따윈 괘념치 않고 나가는 분이었다. 사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이 도서전에 참여하지 않은 대형 출판사들의 경우, 이런 지역 도서전이 아니더라도 매출이 잘 나오는 책들이 있어서 아쉽지 않을 테지만 작은 동네서점이나, 독립출판 작가들은 직접 독자들을 만나고, 또 새로운 독자를 만들 수 있는 이런 자리 하나하나가 다 소중해서 이런 이유 때문에 거르고, 저런 이유 때문에 거르고, 그럴 여유가 없다.
시비를 걸기 위해 한 것이 분명한 질문이었지만, 사장님이 그의 대꾸에 대답을 해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데요?”
“아니, 그렇잖아요. 여기 있는 책을 보면 거의 다 여자가 쓴 거잖아. ‘엄마’, ‘여자’, ‘장녀’, 다~ 여자에 관련된 단어가 들어간 책들뿐이니까, 당신들이 지금 페미니즘 하는 거죠.”
나는 판매에 큰 재능이 없어서, 판매대 저 뒤편 구석에 있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부글부글했다.
하지만 타인의 뜨거운 관심이, 그가 원하는 목적인 것 같아서 내가 끼어들면, 오히려 그 남자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주는 꼴이 될 것 같았다. 책방 사장님이 차분하게 질문했다. 그가 말한 단어를 되돌려주면서.
“그쪽이 생각하시는 ‘페미니즘’이 어떤 것인데요?”
“여자들이 피해 입은 게 많고, 그래서 자본, 경제, 사회적으로 이런 걸 여자들도 똑같이 나누자, 그러기 위해서 싸우자, 투쟁하자, 뭐 이런 거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페미니즘이라면, 이 책들은 전혀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아니, 그게 내가 설명을 잘 못해서 그래. 여자들이 가진 게 적고, 그래서 남자들이 더 많이 가졌다, 그래서 사회가 불공평하다, 사회가 잘못되었다, 그런 얘기하려는 거잖아요, 이 책들에서.”
“아닙니다.”
“아니긴, 그런데 왜 다 여자들이 쓴 책 밖에 없어. 남자들도 많이 가진 거 아니야, 여자들만 못 가진 게 아니라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지금 말씀하신 그런 이야기,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 아니긴, 내가 보기엔 그런데. 그래서 기분이 좀 그래, 그리고 내가 보기엔……”
그 남자 때문에, 우리 부스로 오려던 사람들이 오다가, 결국 가까이 오지 않고 지나갔다. 명백한 영업 방해였다.
그 거지남자는 자신이 페미니즘이 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지, 그래서 자신의 기분이 왜 이상한지 말해주겠다면서, 우리 부스 앞에서 계속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분 타령을 밸런스 게임으로 바꾸면 이런 거다.
1. 우리의 노력과, 우리의 부스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너의 기분'
vs
2. 이 여러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기획을 하고, 최소 몇 달에서 1년 넘는 시간 동안 글을 쓰고 이후 교정, 교열을 거쳐 출판하고,
이 도서전의 정보를 알아내 참가신청을 하고 도서전에 참가팀으로 선정되어 이 자리에 나온 ‘우리의 존재.’
그 불쌍한 걸인의 기분을 좋게 해 주기 위해서, 혹은 이해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존재방식’이 달라져야 했나?
아니. 그날 우리가 어떻게든 우리 부스에 남자를 끼워서 운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럴 필요나 그럴 가치가 있는 일도 아니었다. 또, 왜 여자 4명 이서만 부스를 운영하는지 그 남자에게 친절히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 사람은 우리에게, 우리의 노력에 대해, 어떤 소득을 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사실 이런 도서전에서 꼭 소득이 제일 중요한 것만은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와 책을 살펴봐주고, 그날 당장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이런 내용을 책으로 낼 수 있구나 하며 섬세한 안목으로 발견해 주고 다음에 살게요!(혹은 인터넷으로 살게요!) 하며 격려해 주는 것만으로도 작가들에겐 힘이 되는 일이다. 그런 좋은 기운을 받기 위해 도서전에 나가는 부분도 꽤 크다.
그는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려는 사람이 당연히 아니었고, 그냥 시비를 걸려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보였든(혹은 기분 나쁘게 보였든) 우리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그에게 무슨 위해가 되는 일을 한 게 아닌 이상, 그는 기분 나쁘든 말든, 혼자 속으로 ‘아이, 기분 나빠.’ 하고 말아야 했던 문제였다. 윗옷을 걸치지 않은 그의 불쾌한 차림새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기분이 어쩌고...’ 하는 소리까지 듣고 조용히 운영본부 쪽으로 갔다.
이 도서전의 행정관리부서에서는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전문 안전요원들을 배치했고, 틈틈이(1시간에 한두 번 간격으로) 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나는 운영본부 텐트 쪽으로 가면서 계속 우리 부스를 뒤돌아봤다. 그는 계속해서 시비를 걸려는 것이 분명한, 자신만의 목적으로 사장님에게 이런저런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운영본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덧붙여 남자의 옷차림도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담당자가 굳은 표정으로 우리 부스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거리가 꽤 있는 운영본부 부스에 다녀오고, 그래서 안전요원들이 왔을 때쯤, 떠들 만큼 떠든 그 거지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왜 여자들이 쓴 책밖에 없느냐며, 당신들 페미니즘 하는 사람이냐고 따진 그 남자에게 정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진 않았다.
첫 번째 이유는, 그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지껄인 말이었기 때문이었고, 우리가 그걸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단숨에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그날 부스에 여자들, 그리고 여자들의 책밖에 없던 이유는, 책방 사장님이 시간을 들여 ‘판매 부스에 직접 나와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작가들의 책을 많이 팔아서’ 그 작가들에게 좀 더 이윤을 챙겨주려고 하고자 했기 때문이고, 그날 거기 참여한 작가 모두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어떤 남자 작가가 함께 나왔다면, 그 작가의 책을 진열했을 것이다.
당연히 독립출판 작가들 중에는 남자도 있고 그들이 쓴 책도 많다. 이 사장님의 책방에도 그런 남자 작가들이 쓴 책이 많다.
하지만 그 남자 작가들 중에는 자기 출판사 명을 걸고 따로 부스를 낸 사람도 많고(사실 이 경우가 가장 많다), 그리고 책을 냈지만 본캐는 직장인이라 이런 도서전까지 올 상황이나 여유가 안 되고, 여기서 책을 판매하는 수입이, 직장인으로서의 월급을 일급으로 나누어봤을 때 작은 소득이고, 무엇보다 불확실한 소득이기 때문에 굳이 참가를 하지 않은 작가들도 많다.
사실, 여남을 불문하고서 이 경우가 가장 많다. 내가 많이 노력한다고 해서, 그만큼 꼭 많이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 장사랑 똑같다.
도서전에서 독립출판 책들의 판매량은 매번 천차만별이다. 새로운 독자들에게 뜻밖의 관심을 얻어 20권, 30권 넘게 팔고 몇십만 원을 벌기도 하지만, 1-2권도 못 파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들은 마켓에 참여해서 직접 느껴보기 전에는, 절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냥 참가에 의의를 두고 나간 마켓에서 의외로 책을 전량 팔고, 팔 책이 없어서 가족의 도움을 받아 책을 다시 가져와야 했던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각종 홍보를 많이 하는 마켓이라 꽤 팔 거라고 예상하고 나간 마켓에서 책을 거의 팔지 못하고 시간과 에너지만 날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
이 확률은 매번 불확실하기에, 어쨌든 독립출판으로 조금이라도 인지도를 알리고 싶고, 그래서 언젠가 글을 쓰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싶은 독립출판 ‘작가’이자, 제2의 이슬아를 꿈꾸는 ‘전업작가지망생’들은 꾸준히 마켓에 나갈 수밖에 없다.
이와 다르게, 쓴 책이 돈이 안 되는 것 같고, 그래서 직장인으로 사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이런 마켓에 안 나오게 되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해서 남자 작가들이 안 나오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다.
아예 반대로, 글을 쓰는 일로, 전업 작가로서 생계를 꾸리고 싶은 남자 작가들은 아예 따로 부스를 내서 집중적으로 자기 책만 판다. 자기가 쓴 책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고, 그걸 뚜렷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 남자 작가들에게, 당신의 출판사 부스를 만들지 말고 우리 부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할 수도 없고, 회사에 출근하는 남자 작가들에게, 출근하지 말고 도서전에 나오라고 할 수도 없다. 이런 이유들로,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때문에 수입은 낮지만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되는 여자 작가들만 있는 부스가 된 것이다.
책방 사장님은 자신이 쓴 책들, 그리고 힘들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이 도서전에 나온 우리 3인의 책을 조금이라도 팔아주고 싶은 게 당연하고, 그렇게 합리적이고 당연한 자본 논리로 사장님이 직접 쓰거나 기획자로 참여한 책 6-7권과, 우리 3인의 여자가 쓴 책 6권이 책 매대에 있게 된 것이다.
그걸 보고, 여자들이 쓴 책만 있으니 페미니즘 하는 사람들 아니냐고 시비를 건 것이다. 여자들이 쓴 책만 있으니 자기 기분이 좀 그렇다고. 그렇게 속이 배배 꼬인 사람 눈에까지 우리가 어떻게 보일지 계산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고 사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상황과 배경은 이렇듯 결코 납작하지 않다. 우리가 남자 작가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라 남자 작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움직였기 때문에 나온 결과 값이, 우리 부스의 모습이었다.
이걸 젠더 운운해하며 불쾌하거나 의문을 가지는 남자 작가들도 없다. 그런 식으로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여자 작가든, 남자 작가든, 사실 으쌰으쌰 하며 각자 자기 책 많이 팔 생각밖에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거지남자만, 여자 넷이서 어떤 공간을 개성 있고 안정감 있게 꾸리고, 거기서 돈을 버는 게 불쾌했던 것이다. 남자 작가 없이, 잘 돌아가는 우리 부스가 자기 심기에 거슬렸던 것이다. 남자 작가들이 자기 책의 색깔에 맞춰 아예 따로 자기 부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마치 우리가 남자 작가를 소외시킨 것 마냥.
그 자리에서 단번에 이런 복잡하고 다양한 배경을 설명할 수 없기도 했지만, 그에게 이런 친절한 설명과 다정함이 필요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성별 상관없이, 각자의 이득을 위해 움직여서 만들어진 이런 다양한 층위의 상황을 한 번에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거지남자가 이런 상황을 알았다면 그는 우리에게 절대 시비를 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말은 반대로, 그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그리고 당당하게 시비를 걸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이걸 알고도 시비를 건 사람이라면, 그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혹은 범죄를 저지를지 모를 공격성을 내포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그가 위험한 사람일지도 몰라서, 뒤늦게 여기에다가, 그 상황을 이렇게 길고 상세하게, 여자들 4명이서 한 부스에 있게 된 상황에 대해 배경설명을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슬프고 화가 난다.
무능해서였는지, 아니면 가정형편상, 혹은 출생배경상, 집이 망했든, 뭐가 됐든 어쩌다 보니 자본주의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고, 그리하여 남자들의 경쟁사회에 편입할 수 없어서, 길거리나 공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인이 되어 헤매면서도, 그 와중에 여자들이 바지런을 떨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그렇게 돈을 버는 게, 그 남자이자 거지인 사람의 눈에는 어지간히 꼴 보기 싫었던 것이다. 우리가 쓴 책들이, 진짜 페미니즘과 1이라도 연관이 있는 책인지 뭔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서.
뭐가 됐든 자기 기분은 자신이 알아서 혼자 좀 처리하면 안 되는 걸까. 기분이 나빠서, 혹은 기분이 이상하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누군가를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기분을 풀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