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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만세] 후기

아,맞다. 지옥이지만 같이 삽질할 친구가 있지.

by 시은

팟캐스트 에서 추천하는 내용을 듣고 지옥만세를 보러 갔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힘이 난다.’ 였다.


학교에서 #여왕벌 놀이를 하며 나미,선우를 괴롭히던 채린 때문에 나미와 선우는 자살을 하려고 한다. 그런데 둘의 불행은 아랑곳 없이 얼마 후 유학을 간다는 채린의 소식을 듣고 앞길에 똥을 뿌려서 자신들을 잊지 못하게 해주자고 하며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막상 만나자마자 채린은 자신이 잘못했다며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비정상적일 정도로 용서를 빈다. 어쩌다 보니 채린이 비정상적인 종교에 빠져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미와 선우는 결국 (거기서 빠져나오지 않으려는) 그녀를 구해주고 만다(이게 스포).



온갖 개고생 끝, 각자 집으로 가는 두 사람. 그때 갑자기 선우를 크게 부르는 나미. 왜 무슨 일이냐며 다가온 선우에게 나미가 환하게 웃으며 크게 외친다.


“웰컴투더헬이다!”




그녀들의 고군분투에도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배드엔딩 같지가 않다.


두 사람이 목숨 걸고 채린을 빼내온 그 사이비종교는 건재할 것이고, 나미가 떨어진 대학에서 갑자기 연락이 오지도 않을 것이고, 갑자기 부유해지지도 않을 것이고, 끝없는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상냥해지지도 않을 것이고, 갑자기 인생이 행복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채린에게 복수하려는 두 사람은 번번이 의견 차이로 다투고, 그러다 날선 말을 던지기도 한다.


“너도 박채린만큼 진짜 별로고.“

“야, 내 생각은 니 생각이랑 다르거든?????”

서로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기도 하고, 같이 복수 못 하겠다며 벽을 세우기도 한다.


그래도 두 사람은 느낀다. 같이 뭘(복수하려고 이것저것 시도는 함) 하고 있으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고, 어쨌든 좀 더 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너란 친구가 있는 이 지옥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마무시한 엄청난 지옥은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는 사이, 나미와 선우는 강해졌다. 사랑하지 않는, 아니, 그 사람 때문에 죽고 싶었고, 그래서 죽이고 싶던 사람을 구할 수도 있을 만큼.




세상의 바람에 마구 흔들렸던 얇은 풀만큼 얇은 나무가 모진 비바람에도 그 땅에 기어코 뿌리를 내리고, 다시 그 뿌리로 어떻게든 흙을 움켜쥐고 강해진 나무가 되는 광경을 본 듯 했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이지.‘ 하고 냉소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뭐,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지만 어쩔 수 없고, 여기가 지옥이지만 나는 살아낼 수 있는 인간이구나. 뭐, 같이 삽질할 친구도 있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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