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의 할머니가 롤모델이었다. 할머니는 씩씩했고 다정했다. 나는 그런 나의 할머니를 사랑했지만 사실 할머니는 희대의 시어머니였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순수하게 사랑했던 마음이 복잡한 층이 생긴 채로 사랑은 계속되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도, 계속.
할머니가 희대의 시어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어떤 할머니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거의 매일 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할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데도.
사랑하는 사람의 아주 별로인 부분을 알게 되는 것은 아주 우울한 일이다. 악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치사하고 추하다고 할 만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특히 나의 엄마에게는 시어머니 노릇을 톡톡하게 하셨다. 어린 내가 없는 장소에서 어른들끼리 있을 때에만 벌어진 일이라 알 수 없었을 뿐.
이런저런 호박고구마 같은 사연들이 너무 많고, 내가 사랑했던 할머니가 시어머니로서 엄마에게 행한 그 많은 치부를 열거하고 싶지는 않다. 최소한 지금은.
그러나 내가 며느리로서 지시받았다면 오만정이 다 떨어져서 당장 이혼했을 법한 일들을, 할머니는 엄마에게 시켰다(그리고 할머니가 엄마한테 시키던 걸, 엄마는 나한테 시켰다. 이렇게 악습은 대물림 되나 보다).
할머니가 의도적으로 엄마를 괴롭힌 것은 아니겠으나, 당연히 그런 행동이 무슨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들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할머니 당신이 젊었을 때 당한 것을 엄마에게 푼 것일 뿐. 그럼에도 할머니가 밉지는 않지만 이런 내 마음이 엄마에게 상처가 된다는 걸 알기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할머니는 도대체 엄마한테 왜 그랬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사셨을까. 비록 나를 예뻐해 주시긴 했지만 할머니가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고, 어떤 청춘을 보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아는 게 거의 없다. 1932년경 태어났고, 23세에 내 아버지를 낳았고 하는, 그런 행정서류에 있는 사실 말고는.
그러다 보니 사노 요코, 박완서 같은 할머니들이 쓴 글을 자주 읽는다. 내 할머니는 아니지만, 이 할머니들의 생각이라도 알고 싶다. 이 할머니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셨을까 궁금하다. 그리고 조마조마하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기는 하지만 이 매력적인 할머니들의 나쁜 시어머니적인 모습을 보게 될까 봐. 아무래도 나의 할머니가 희대의 시어머니였다는 게, 다른 할머니를 볼 때도 투영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저 할머니,라고 하기에는 자신만의 색깔로 글을 ‘너무 잘 쓰는’ 작가들이긴 하지만 그녀들의 책을 읽는 목적은 오로지 그녀들은 어떤 할머니였을까, 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다. 얼마나 좋은 글을 썼는지 궁금하지 않다.
다만 글을 오래 써온 사람들의 글에는 어쩔 수 없이 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가 짙게 배어 나온다. 삶에 대한 태도, 싫은 것을 해야 할 때 어떻게 하는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어떤 태도인지.
그런 사람들의 글은 재능이나 노력과 무관하게 이미 세상을 보는 안목이 깊어지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를 가져서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몸 안에 있어서 펜을 드는 순간(혹은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저절로 잘 쓸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니면 입술을 열어 말하는 순간 그런 생각들이 더하거나 뺄 것도 없는 문장이 되어 나오거나.
최근에는 ‘키키 키린’이라는 할머니의 책을 읽었다. 그녀가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가 인터뷰나 시사회 등에서 했던 말들을 책으로 묶은 에세이집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확실한 주관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을 한다. 사실 자신의 인생에 확실한 주관대로 살면서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냈다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가 꽤 멋있는 할머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단한 깨우침을 주는 그런 이야기는 없다. 뭔가 드라마틱하고 임팩트 있는 이야기 없이 멋있을 수 있는 게 과연 쉬운 일인가. 나는 험난한 인생을 산 이야기보다 이게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글에서 보니 멋있게 나이 드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멋있게 나이 드는 법’ 같은 건 말장난이다.
원래 멋있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게 멋있는 거지 젊었을 때 아무 멋도 없던 사람이 ‘멋있게 나이 드는 법’ 같은 거 읽고 거기 나오는 대로 따라 한다고 멋이 생기는 게 아니라고.
그러므로 멋있고 괜찮은 할머니라는 존재는, 젊었을 때도 멋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뚝딱 괜찮아지는 게 아니므로.
그렇다면 지금부터 괜찮은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 상태가 결국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것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