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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ul 07. 2023

무급으로 일해주실 작가님을 구합니다.

어느 대기업이 나에게 제안한 일

헐리우드에서 스파이더맨 제작 중단 기사를 보았다. AI 기술로 작가의 업무를 대신하려는 움직임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들이 단체 보이콧을 했다는 기사였다.


다시 찾으려고 보니 그때 본 기사를 찾을 수 없어 동일한 주제를 담고 있는 기사를 찾았다.


'창작'을 도둑질하는 AI... 전 세계 작가들, 집단행동 나섰다

https://weekly.hankooki.com/news/articleView.html?idxno=7079315     


기술의 프로세스는 대충 이렇다. 간단한 명령어를 입력하면 원하는 분량의 글을 결과물로 내놓는 것이다. 당연히 기계가 쓴 글은 매끄럽지 않다. 각 플롯과 인물 사이의 개연성을 고려하고 경험과 감정을 녹여내서 쓰는 글은 원래 쉽지 않기에  인간 작가들도 매번 최상의 퀄리티를 만들어낸다고 확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과 밀도 높은 스토리텔링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이 많으면 점점 정교하게 글이 나아진다. 그렇게 글은 완성된다. 그러니 그저 쓴 글과 섬세하게 쓴 글은 매우 다르다. 절대 같다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술이 창작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헐리우드 시스템이 지금 하려는 일을 예를 들어보자.


100 페이지의 글을 써서 그에 해당하는 고료를 받는 작가가 있다고 하면, AI를 이용해 명령어를 입력해 만들어낸 100페이지의 글에서 매끄럽지 않고 튀는 부분이 5군데 혹은 20군데 정도 있다고 하면, 작가에게 그 부분만 수정을 하게 하곤 원래 받던 고료의 5%혹은 20%만 지불하는 것이다(좀 거칠게 설명하긴 했지만 결국 큰 틀에서 보자면, 이렇게 제작비 항목 중 일부를 작가의 일을 줄여 아끼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헐리우드처럼 투자비가 많이 들어가는 작품은 한 명의 작가가 쓰지 않고 여러 명의 작가, 경우에 따라 수십명의 작가 크루를 고용해 글을 쓰게 한 다음, 그 수십 명이 쓴 글들 중 가장 임팩트 있는 부분들을 발췌하여 모아서 스토리를 완성 및 구축한다. 그래서 엄청 재미있는 것이다. 수십명이 머리를 싸매고 쓴 글이라서. 원래 그렇게 여러, 혹은 수십 명의 작가들이 쓰던 글을, 기계가 분량만 뽑아낸 후 한 사람의 작가가 어색하거나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들을 매만지게 하는 것이다. 기계가 쓴 엉성하고 조잡한 글을 뒤치다꺼리 하듯 다듬는 일을 시키는 포지션으로. 그렇게 제작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1년 전, 브런치 제안하기를 통해 어느 대기업 팀장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     

 

제안자는 브런치를 통해 쓰신 작가님의 글을 읽었는데 자신들이 찾고 있는 성격의 글인 것 같아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고, 좀 긴 내용이라서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어떤 기업일까 싶어 기업명을 구글링 해보니, 2007년에 설립되어 매출액이 1조 8천억이 넘는 꽤 건실한 미디어/소프트웨어 관련 기업이었다.


내가 비록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 책을 출간했지만 크게 인지도 없이 글을 쓰는 상태인 만큼 이 기업과 같이 일한다고 해도 단발성의 프로젝트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런 대기업의 러브콜을 받았다는 것에 솔직히 설렜고 감격했다. 내 글을 인정받은 것 같은 뿌듯한 마음도 꽤 컸다.      




며칠 후 사당역 스타벅스에서 그 기업의 팀장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첫 만남부터 좀 쎄했다. 약속 장소에 20분쯤 일찍 도착해 전화를 하자 먼저 도착한 팀장이라는 사람이 자신은 음료를 주문했다면서 마실 거 사오시라고 하고는 자기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통 일을 제안하는 쪽에서 음료 정도는 사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정도 일에 기분 나빠하는 것도 예민한 건가, 싶긴 했지만 우선 넘어가기로 했다. 프리랜서이든 뭐든 이 기업과 콜라보로 일해보고 싶었으니까.


나는 대기업에 입사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없기에 대기업 면접에 대한 데이터는 없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사회생활의 데이터를 봤을 때, 대부분의 회사에서 1차 면접은 아무 대접이 없다고 해도 어쨌거나 서류 통과를 하고 나서 2차로 개인 면접을 볼 경우, 하다못해 물 한 잔, 커피 한 잔 정도의 대접은 해주었다.


내가 브런치에 꾸준하고 성실하게 쓴 글이 그들에겐 일종의 포트폴리오였을 것이고, 그래서 나름의 1차 면접을 통과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갔던 자리였다. 그런데 오라고 한 자리에서, 커피는 내 돈 내고 사 먹어야 하고, 대화를 하자고 한 사람은 노트북에 코를 박고 있는 이런 상황, 이런 대접이 썩 유쾌하진 않았다. 그래, 내가 고용되고 싶은 입장이니 싫은 소리 하지 말자 싶어 우선 커피를 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일하는 기간은 어느 정도인지, 얼마를 주는지 듣고 같이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자, 우선 기분 나빠하지 말자 스스로를 추슬렀다.

      

그 팀장이란 사람은 내가 커피를 들고 오자, 그제서야 노트북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 음성서비스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데 거기에 내 글을 사용하고 싶어 만나자고 한 것이라고 했다. 에세이나 짧은 형식의 소설도 괜찮다고 하면서 일주일에 1,2회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하고 최소 몇 개월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서 구독자를 만들고 이 플랫폼에 사람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작가의 개성이 드러날 수 있는 '기획된 에세이'나 '연재형식의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쉽게 얘기하자면 윌라 같은 보이스 콘텐츠 플랫폼을 회사에서 기획 중인데, 콘텐츠가 윌라처럼 책이 아니라 브런치나 블로그를 통해 꾸준히 자신의 색이 있는 글을 쓰는 작가들을 기용한다는 점이 차별점이었다. 자신들의 기업에서 만든 보이스 프로그램으로 작가들이 쓴 글을 사용자들에게 읽어주는 것이 서비스의 핵심이었다.  그러기 위해 색다른, 색깔 있는 신선한 글이 필요해 컨택을 한 것이었다.       




좋은 기획 같았다. 아직 정식 책 출간 제안을 받지는 못했지만 개성 있고 밀도 높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브런치에는 꽤 있었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는 알겠고, 업무량도 어느 정도인지 이해했다. 나는 그에게 일의 페이를 물었다.


대학 때 전공이 미디어창작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료는 통상적으로 몇 페이지에 얼마, 라는 대강의 금액을 동기나,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다.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이 업계 페이도 아예 크게 성공한 게 아닌 이상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지인들은 각자 방송작가, 칼럼, 게임시나리오 작가 등으로 모두 글 쓰는 일을 하지만 각자의 전문성에 따라 다른 성격의 글을 쓰고 있고, 분야와 연차와 경력에 따라 금액이 다르긴 하지만 사실 천차만별의 금액인 경우는 없었다. 분야가 달라도 ‘통상적인 금액'이라는 건 비슷했다. 그리고 아무리 단발성의 프로젝트라도 고료는 작업량에 따라 지불해야 하고, 고료는 통상적으로 몇 페이지에 얼마, 라는 대강의 금액을 동기나,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게 생각보다 높은 금액이 아니라는 것도. 

     

그런데 내가 ‘페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팀장이라는 사람이 ‘어, 저 그게’ 하더니 말을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 아까 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을 청산유수처럼 말했을 때와는 딴 판이었다. 그러더니 지금 만들고 있는 플랫폼은 정식으로 대중에게 오픈된 것도 아니고 베타서비스 형식으로 오픈된 상태라서 아직 수익이 나는 구조가 아니다, 향후 플랫폼이 인지도가 생기고 광고가 붙으면 그때 수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커피도 한 잔 안 살 때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언제 그 플랫폼이 인지도가 생기고, 언제 수익화가 될 줄 알고 사람의 노동력을 그냥 자기 회사를 위해 써달라고 하는 것인가.


내가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제 노동력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인데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단 돈 몇 만원이라도 주셔야 하는 게 맞고, 아니면 회사 주식이든 상품권이든 뭔가 현물적인 게 오고 가야 '일'을 하는 거지, 이런 식으로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하시지만 뭐가 어떻게 될 줄 알고 약속된 페이도 없이 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일을 그쪽이 원하는 형식대로 하라고 하시는 거냐고 차분히 물었다.


그는 베타서비스로 오픈된 그 플랫폼에 올라가 있는 글들을 보여주며 여기 글을 연제하고 있는 작가들 모두, 고료를 받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싸우기 싫고 뭐라 말을 섞기도 싫지만 우선 궁금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섭외한 것인지.


"...이분들은 원래 어떻게 아시는 분들인데요?"


그는 여기에 글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도 나처럼 브런치 등을 통해 섭외한 작가들이고, 간혹 블로그 등을 보고 섭외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걸 하는 팀원들이 따로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는 제안도 내가 받은 제안과 똑같은 것이라고 했다. 우선은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으면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를 하자는 방식으로 글을 연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들이 왜 이렇게까지라도 해서 이 대기업에게 무료봉사를 하는지 안다. 어떻게든 자신의 글을 타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절박함이 대기업의 이런 노동착취를 눈감는 것이다. 그렇다고 절박함을 비난할 수야 없겠지만, 이 절박함이 나쁜 연쇄작용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 때문에, 그 대기업 팀장이란 사람이 사례들을 보여주며 ‘다들 돈 안 받고 글을 써주고 있다. 그러니 너도 그렇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나에게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이다. 관례라는 식으로. 



     

솔직히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회사 내에서 이게 장기 프로젝트인지, 단기 프로젝트인지는 모르겠으나 매출총액이 1조 8천억이 넘는 기업에서, 콘텐츠 개발 사업 준비(냉정하게 보자면 '보이스 제공 서비스' 사업이라는 것에 더 방점이 찍혀 있지만 어쨌든)를 하면서 작가 고료 책정도 안 했다는 말이었고, 보이스 제공 서비스를 위해 콘텐츠가 있어야 하고 그 콘텐츠를 생산할 작가가 필요는 한데, 그 작가를 사용할 돈을 계산에 넣지 않고 일을 진행시키는데 또 그런 작가를 섭외하기 위한 팀원들이 따로 있다니(당연히 그 팀원들 월급은 지급될 거면서).


부족한 컨텐츠를 채우기 위해 글 쓰는 일을 하는 작가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고료는 책정되어 있지 않는 프로세스다. 이렇게 작가들을 수집하고 굴리는 기업이라니.

                 

그날의 미팅 후 몇 번의 대화 끝에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물러서지 않으니 그는 회사 법무팀에 의뢰해 계약서를 써주기는 했지만 금전적인 댓가에 대한 내용은 절대 써줄 수가 없다고 했고 실제 그런 계약서가 왔다. 아무도 금전적인 댓가를 받은 선례가 없다고 하면서.


제목은 계약서라고 되어 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계약서라기보다 걍 종이쪼가리였다. 그럴듯하게 포장한 계약서라고 해주고 싶은데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종이쪼가리, 노예계약서였다. 결국 나는 ‘그 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돈을 받지 않는 것이었으니 ‘일’이라는 명사를 붙이기도 아깝긴 하지만.


팀장은 나를 설득하겠다고 몇 번이나 다들 그렇게 글을 쓰고 있다고 했고, 그 부분에서 나는 한 번 더 분노했다(어차피 안 볼 사람이니 화를 내진 않았지만). 화를 가라앉히느라 대화를 끊고 심호흡을 오랫동안 해야 했다.


신진 플랫폼이 대중들에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그건 단순히 개발비만 드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포지션의 사람들이 필요하고 그 중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하는 것이라면 어떤 톤&매너를 가진 서비스가 될지,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의 역할이 분명 필요하다. 해당 플랫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플랫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돈을 받지 못한 그들은 끝난 후에도 아무런 댓가를 받지 못하고 흩어질 것이다. 일을 시작할 때 댓가를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이 끝나는 마당에 댓가를 지불할 리 없다.


나는 이런 걸 착취라고 부른다. 아니, 나만 이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부드럽게 말하고, 다정하게 제안한다고 해도 일한 부분에 대해서 금전적인 댓가가 없는 것을 우리 사회는 노동 착취라고 부르기로 했다.


문제는, 글밥을 먹고 살고 싶은 사람들이 부드럽게 노동을 착취하려는 손길을 뿌리치기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이 일로 어떤 인연이 되어 길이 열릴까 봐. 단언할 수 있다. 그런 일은 절대 없다. 그들의 목적은 글 쓰는 이를 성장하고 돕고 글을 쓴 댓가를 지불하는 게 아니라, 되도록 싼 값에, 혹은 공짜로 부려먹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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