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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Nov 15. 2021

찬란하고 덧없는 청춘의 우정에 대하여

찬란하고 가난한, 젊음과 실패의 시절에 대한 단상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작가 지망생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소재가 주는 매혹 때문이었다. 실패한 작가 지망생인 내가 읽어볼 수밖에 없는 이야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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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것만으로, 그것을 생계 수단 자체인 직업으로 삼기에는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하지만 또 젊은 날에는 그게 또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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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무모하게도, 글로써 직업을 가지려고 하는 사람들은 티도 안 나는, 눈물겨운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아파트먼트>의 주인공인 '나'는 그 무모한 길을 가려는 24살의 청년이다. 순수예술 문예창작 프로그램 대학원 첫날, 모두들 '나'의 소설을 읽고 모호하고 응원하기 힘든 주인공이라며 잔인하고 날이 선 피드백을 주지만 빌리만은, 자신은 생각은 다르다며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이렇게 덧붙인다.⠀⠀

"모르겠네요.(...) 저는 그냥 이 소설이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p.22⠀⠀

스트릿우먼파이터에서의 훅의 리더 아이키 같다.

“저, 할 말 있는데요. 제가 본 모습 중에 오늘 제일 섹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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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일하게 자신의 글을 알아봐 준 빌리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게다가 빌리의 소설은 같은 프로그램 안의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났다. ‘나’는 빌리가 아직 데뷔는 안 했지만 이미 작가스럽다고 생각하는데, 무엇보다 물질적 어려움이 없는 자신의 삶보다, 밤늦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면서, 자신의 고단한 인생을 투영해 소설을 쓰는 그의 삶이 진짜 작가의 삶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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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바이트하는 바의 지하 창고에서 살고 있던 빌리에게 일주일에 3-4번의 식사 준비와 청소를 해주는 조건으로 집세를 대신하자며 그를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입주하게 한다. 재능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따뜻한 응원을 해준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욕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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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몇 달이 지나자 사교성 좋은 빌리는 모든 일을 사사건건 자신과 함께 하려는 소극적인 '나'가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그리고 새로운 소설에 피드백을 달라는 '나'의 부탁에 빌리는 이제껏 다른 학생들이 자신에게 했던 피드백과 같은 피드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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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글에는 네가 정말로 어떤 사람인지가 항상 드러나지는 않잖아.”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리가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이 동거를 계속해서 만족스러워하며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빌리는 부유한 ‘나’의 친절이 고맙지만은 않다.


‘나’의 친절은 여유로운 부유함에서 오고, 그로 인해 자신의 가난한 처지와 끊임없이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에 만취해 밤마다 늦게까지 바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야 하는 자신과 달리, 아버지 지원 덕분에 일하지 않는 ‘나’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비꼬고 ‘나’는 빌리의 불쾌한 행동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파괴해버린다.


사실을 알게 된 빌리가 분노한 채, 하지만 차갑게 말한다.


“내가 너를 죽도록 패 버리지 않은 유일한 이유가 뭔지 알아?”


그는 짧게, 날카로운 웃음을 뱉어낸다.


“네가 존나 불쌍해서야.”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대학을 무기한 휴학하고, 둘의 동거, 아니 관계는 끝난다. 두 사람은 두 번 다시 만나지 않는다.⠀⠀


휴학 후 잡지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학교에 돌아갈까 하다가 문득 자신이 꼭 작가가 될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래서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일을 계속 한다(나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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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나'는 빌리가 대학 때 썼던 그 글을 장편으로 완성해서 발표한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몸에 받는 눈부신 작가가 된 것은 아니고 그냥, 흔한 작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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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인 '나'는 잡지 교열 팀장이자 고독한 중년 남성이 되었다.


‘고독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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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인간은 사실 젊은 날의 빌리가 가장 두려워하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살다 보니 고독이 두려워할 일도 아니고 받아들일 만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쩌면 빌리는 '나'가 가장 두려워하던, '아무에게도 이해 받지 못하는 것'이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인간이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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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10대 중반부터 작가의 꿈을 꿨고 몇 년 전, 성과 없고 오래된 그 꿈을 포기했다. 오래된 꿈이었기에 꿈을 포기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울 줄 알았다(이미 여러 번 얘기하긴 했지만).

하지만 상상과는 다르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덤덤했다.


그리고 얼마 전, 합평 때면 내 글을 칭찬해주던 동료 수강생으로부터 밤늦게 연락이 왔다. 그도 데뷔를 못 했을 것이다.


잘 지내니? 라는 그의 질문에 나는 네, 라고 대답했지만 그 이상의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고, 그도 더이상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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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버린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정확하게 이해하겠지만, 나는 그런 이해를 굳이 공유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포장해봤자 징징거리는 거니까.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나‘와 빌리는 눈부시지는 않아도 그들이 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신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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