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얼마 전 남자 친구와 함께 인도 음식점에 밥을 먹으러 갔다.
자리도 많은데 굳이 바로 옆에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 자리를 주었는데 옆 테이블과 간격이 60cm도 되지 않아서 들으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그들이 하는 얘기가 너무 생생하게 잘 들렸다.
그 테이블이 너무 쉴 새 없이 얘기해서 우리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냥 밥만 먹으며 그들의 대화를 라디오 듣듯 듣게 되었다.
둘 중에 한 명이 법대생이었는데 주로 그 법대생이 자신의 넋두리를 하고 다른 사람은 들어주는 편이었다. 거의 정확히 옮겨보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와, 나 2학년 돼서 형법 하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야. 교수님이, 지금 말하는 내용, 몇 페이지에 나오는지 다 알지, 넘어간다? 하고 넘어가는데 나 모르겠는 거야. 일도 모르겠어서 순간적으로 나, 공부 이제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거든? 근데 그 수업 끝나고 생각해보니까 나 매일, 거의 평일 주말 없이 12시 반까지는 무조건 공부하거든. 더 열심히 못 하겠는데 로스쿨 가면 진짜 어떡하지 싶더라니까.
아마, 그 법대생만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런 거 같다. 권위 있는 누군가가 우리의 지식, 노력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노력이 부족한가 순간적으로 반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노력한 걸지도 모른다. 글 쓰느라 생긴 내 빚의 크기가 그 증거라면 증거일 수도 있다. 알바든 정식으로 취업해서이든 일도 분명히 거의 했는데 자료 조사나 책 사는 게 만만치 않았다.
어쨌든 그 법대생의 넋두리를 원치 않게 들으면서 그래도 로스쿨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 그런 걱정은 안 하는 거 보니 크게 돈 걱정하는 학생은 아니구나 생각도 들었다.
그들이 나가고 나서 우리도 겨우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근데 진짜 공부 열심히 하긴 하나 보다. 옷차림이 진짜 공부하다 나온 티 나더라.
-서울대생이니까 진짜 열심히 하겠지.
-그 사람이 서울대생인 거 어떻게 알아?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서울대입구역인데 굳이 다른 학교 학생이 저 차림으로 여기까지 와서 밥을 먹을 거 같진 않아.
물어보진 않았지만 물리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그 학생은 심지어 서울대생이었을 확률이 높다.
그도 최선을 다하지만 그 학교를 나오지 않은 우리 역시 최선을 다 한다. 학벌과 상관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