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잔치가 끝났다고 생각된다면

이제 파티를 즐기러 가자

by 시은

예전에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라는 책 제목을 본 적이 있다.


읽어보지는 않았다. 십 대 후반에 저런 시집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 서른 언저리에 읽어볼까 했었지만, 서른다섯인 지금, 이제는 읽어볼 생각이 없다.


십 대 때 저 책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서른이 어마어마한 나이인 줄 알았다.


그때도 작가 지망생 청소년이었지만 이해력이 뛰어난 청소년의 범주에는 들지 않아서 나이보다 성숙한 책을 읽어봤자 소화하지 못했다. 그래서 위대한 개츠비도, 상실의 시대도, 달과 6펜스도 명작이라고 하는데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책들이지만.


그래서 저 책만큼은 서른 언저리에 한번 읽어봐야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서 안 읽을 생각이다.


안 읽었지만 서른이 생각보다 뭐 없다거나 병신 같을 거라는 내용의 시만 가득할 거 같다. 그건 이미 살아봐서 다 아는 거다. 그리고 자기 연민에 찌든 내용은 시든, 소설이든, 만화책이든 읽고 싶지 않다.


그리고 정말 100% 사실일지라도, 인생이 별 볼일 없는 게 사실이더라도 어떤 인생을 비하하는 내용을 읽고 싶지 않다. 나는 누가 봤을 때 별 볼 일 없는 게 확실한 내 인생이지만 나에게는 몹시 소중하다.


대학교를 입학했을 때 선배들 중에 2학년인데 26, 27살인 선배들이 있었다.


이제 막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 내가 생각했을 때, 저 나이엔 사회생활까지는 아니어도 갓 입학한 나보다는 그들이 훨씬 어른스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스무 살 꼬꼬마인 내가 보기에 그들이 나보다 딱히 성숙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친구들보다 훨씬 빨리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서른이라는 나이가 된다 해도 보편적으로 사람은 별 거 못 이룰 것이며, 서른이 되어도 사실 별 대단한 게 없을 거라는 것을 생각보다 아주 일찍 깨달아버렸다.


그때의 짐작처럼 역시나 아무것도 못 이루고 대단한 게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상황이 시집 제목처럼 흐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스물여덟과 스물아홉 때 멘털이 탈탈 털리는 연애를 연속으로 한 후 심하게 상처 받은 나는 인생을 아주 막 살아버리기로 했다. 그게 스물아홉을 2개월 정도 살았을 때라서 나의 그냥 서른부터 만으로 서른까지를 지금 돌이켜 보면, 2년이라는 시간 내내 파티 같았다.


술도 넘치게 먹었고, 그 다음날이 피곤할 정도로 놀았다. 그렇게 술을 퍼마시고도 잠이 깨면 그 와중에 글도 썼다. 출근은 어떻게 하고 일은 무슨 정신으로, 어떻게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게 그냥 서른부터 만 서른까지 지냈던 것 같다.


이게 무슨 증거가 되겠느냐만 지인들이 나와 놀았을 때가 자기 인생의 황금기였다고 말해주곤 한다. 좀 더 빨리 너를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조금만 더 어릴 때 나를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과분한 칭찬이라고 생각하지만 덥석 받아들인다. 그러면 별 거 없는 나지만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우리 나이에 누가 요즘 잔치를 하나. 잔치는 어르신들이 축하할 일 있을 때, 예를 들면 고희연 정도는 돼야 '고희연 잔치' 할 때 붙이는 표현 같다고 항상 생각했다. 생일도, 생일잔치가 아니라 생일 파티가 더 괜찮고.


우리는 잔치 세대가 아니다. 우리는 파티를 하는 세대다. 그리고 솔직히 단어만 들어도 잔치는 한옥에 평상 늘어놓고 위에 천막이나 치고 그 밑에 음식이나 좀 많지 파티에 있는 그 흔한 스피커도, 미러볼도 없을 거 같다.


서른이 잔치가 끝난 것처럼 생각된다면, 그냥 이렇게 생각해도 될 것 같다.

잔치가 끝났으니 이제 파티를 즐기러 가자!!!





생각보다 너무 좋았던 올해 전주여행 때 마신 술!!


그리고 친구 만나러 갈 생각에 들뜬 딱 1년 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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