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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도 젊은이가 많이 죽었는지 궁금하다

일하다 죽는 친구들을 떠올리며 - 1

by 시은

독일의 대표적 주간 시사잡지 슈피겔이 선정한 최악의 단어는 '인적 자원(Human Resource).' 이다.

비슷한 단어로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 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좋아하는 단어 아닌가.


나는 언젠가부터 국가에서 저출생, 저출산이 난리인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게 조금 웃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20대 초반까지, 서른즈음에는 결혼을 할 거고 출산은 선택이 아니라 디폴트 값이라고 생각했었던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20대 중반에 일을 시작해 서른을 맞이하면서, 업무 강도는 세지는데 직급이나 월급은 거의 오르지 않고, 그 와중에 빠르게 상승하는 집값은 그렇다 치고 전세사기가 이렇게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후속책은 딱히 마련되지 않는 현실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며 자연스럽게 (이런 상황에서 안심하고 아이를 양육할 자신이 없으므로) 출산을 내 인생의 선택지에서 빼게 되고, 그래도 결혼을 해야지 했으나 미루다 선택지에서 뺄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건, 결국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삶의 난이도가, 나라에서 ‘똑똑한 개인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하며 손 놓고 방관하는 사이 점점 ‘극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일해도 사회경제적으로 가정을 꾸려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었고, 여유가 없는 나는 점점 삶의 난이도를 높이는 선택지들을 인생에서 삭제했다. 결혼, 출산, 양육 같은 것들.


만약 이게 나 하나, 혹은 내 주변 몇 명의 선택이라면, 일부 사람들의 문제라고 어떤 입들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전국민적으로 '어떤 특정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건, 그들의 삶의 궤도가 그걸 선택할 수 없다는 목소리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나 혼자 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 혹은 장시간 노동으로 삶이 갈려 나가는 일 말이다. 쉬지 못하고 일하느라,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아이를 낳고 기를 생각이 들겠는가. 집이 없고, 주거가 불안하고, 어떻게든 우리의 젊음을 갈아넣어 버티느라 결혼과 출산에 관심을 잃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높은 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듯 하다.


(높으신 분들, 잘 지내세요….? 왜 잘 지내세요….?)


물론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죽은 사람들도 있다. 런던 베이글의 어느 젊은 직원처럼.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직장은 일주일에 52시간 근무였다. 말이 52시간 근무였지, 1시간이라던 점심시간은 10분씩 늦게 밥을 먹을 수 있었고 10분씩 일찍 점심시간 이후의 근무 준비를 해야 했으므로 40분인 셈이었고, 그 시간을 일주일치 모으면 100분 정도가 될 것이다. 퇴근시간도 항상 여러 가지 이유로 10,15분씩 지연되었다. 그런 자투리 시간까지 모두 합지만, 주 근무 시간은 57시간은 될 것이다. 이전 직장에 비해 월급은 아주 조금 더 높았지만 근무시간 대비 월급으로 치자면 더 높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간당 내 노동력은 더 헐값이 된 셈이었다.


그래도 몇 푼이라도 더 높은 월급을 받고 싶었기에 그 곳에 다니기로 했다.


일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일의 량이었다. 해도해도 다음날이면 몇 배의 일이 쌓였다. 문제는 사람을 더 뽑지 않았다는 것이다. 뽑고 있다고 하긴 했지만 뽑지 않았다. 일이 많은 건 윗선에서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몸이 갈리고 있다는, 쥐어짜이고 있다는 기분이 분명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내 앞에 산처럼 쌓인 일들을 하며 언제 될지 모를 인력 보충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몇 달 뒤 사람을 뽑았지만, 어마어마한 근무량에 다들 일주일이 멀다 하고 그만두었다. 그렇게 4-5명이 해야 할 일을, 2-3명이서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불가피하게 1-2명이 할 때도 있었다.


울며 겨자먹기로 직원들이 자기 시간을 더 써야 했고(그게 누군가가 점심시간을 자진 납반하며 일하는 식으로 이어졌다), 휴식의 질은 떨어졌다. 그렇게라도 일하지 않으면 일에 반드시 구멍이 생겼다. 밥을 안 먹는 사람도 있었다. 자신은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말이다. 법으로 정해진 시간에 쉬는 것인데도, 누군가 일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눈치가 보였다.






일을 한 지 1년이 조금 안 되었을 때,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를 감을 때 손에 감겨 나오는 양도 많았고, 수채구멍에 쌓이는 머리카락의 량도 너무 평소 같지 않았다. 그냥 좀 많이 빠지나 보다 했다. 머리숱에 자신 있는 편이어서, 좀 많이 빠진다고 해서 티가 날 것 같진 않았다.


직원은 계속 구하지 않았고(구했다 하더라도 빨리 그만두면 다시 또 한동안 구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일의 양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해서 현재 주 5일 근무인 근무시간을 당분간만이라도 주 4일 근무로 바꿀 수 있는지 상사에게 문의했다. 눈에 확 보이지는 않았지만 건강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게 하루하루 느껴졌다. 그 직장은 규모가 크지 않은 개인사업장이었고, 근무시간을 유동적으로 줄여주지 못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게 해줄 이유도 없었기에 나의 요청을 거절했다. 근무 시간 줄이고 싶으시면 그만 두시는 수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계속해서 머리카락이 너무 많이 빠지는 것 같아서 남자친구에게 장난 삼아 뒷머리 쪽을 봐달라고 했다. 혹시 좀 빈 부분이 있는지.



가장 오른쪽 탈모는 가운데가 너무 크게 비어서 머리카락 일부로 그 중앙을 가려 공백을 나눈 상태로 찍은 사진이다. 분명 상태가 심각했지만, 어디 딱히 몸이 아픈 것은 아니었고, 좀 피곤하고 예민해지긴 했지만, 어쨌든 몇 년은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매일 아침 빈 부분들을 가리기 위해 머리를 묶으며 생각했다.


그래도 돈을 모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 금액의 돈이 있었고 그 돈을 모아,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손에 쥐고 싶었다.


매주 탈모클리닉과 병원을 다녔지만 차도는 없었다. 39살의 나이에 머리카락은 점점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여전히 사람은 구해지지 않았고, 52시간(이지만 체감상 57시간)의 근무시간을 줄여줄 수는 없다고 했으며, 일의 량은 줄어들지 않았고, 계속해서 점심시간은 공식적으로는 1시간, 실제 제공되는 시간은 40분이었다.


뒤에만 빠지던 머리카락은 정수리를 타고 앞쪽으로도 빠지기 시작했다.



애매하게 보호되지 않는 점심시간 같은 것도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수 있나 궁금했다. 하지만 신고하기는 두려웠다. 신고하면 일하는 사람들과 껄끄러워질 것이고 그만둬야 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점심 시간이 계속 축소된 채 일을 해야 했고,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방식으로 근무시간은 계속 조금씩 추가되었다. 원래 일의 톱니바퀴란 게 그런 거니까.


뒷머리에만 탈모가 있을 땐 묶으면 어느 정도 가려졌지만 이제 매일 아침 흑채를 써야 했다.


직장 내 괴롭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것 역시 과도한 일의 량에 부대낀 결과로 인한 스트레스가 누적된 어느 직원이,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나를 괴롭히는 것으로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다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다(그래도 나쁜 년이라고 생각하지만).


마치 일과 가사에 쫓긴 엄마가, 방어력이 없는, 가장 가까운 자기 아이들을 죄책감 없이 학대하듯이(이렇게 생각하면 그 여자도 좀 이해되지만, 굳이 왜 내가 그 여자를 이해해줘야 하나 싶다).


일이 적정선으로 줄어들지 않는 한, 그녀의 스트레스는 나를 향할 것이었다. 직장을 그만두기 하루 전날, 나를 괴롭힌 사람에게 당신 때문에 그만둔다고 분명하게 얘기를 했다. 당신이 괴롭혀서 그만 두는 것이라고, 사람 그만 좀 쪼으라고.





하지만 그녀가 나를 쪼게 만드는, 누구라도 들들 볶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디다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을 계속해서 들들 볶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 사람을 뽑지 않고 계속 일을 돌리는 것 때문일 테지만, 그 시스템을 바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그 시스템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걸 1년 3개월동안 버티면서 충분히 느꼈다.


정말이지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일과 나의 주파수를 맞춰서 이력서에 여기서 꽤 근무했다는 이력을 기입할 정도의 근속은 채우고 싶었다. 흔히 말하는 것처럼, 요즘 애들 나약해서 빨리 빨리 그만둔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나 자신이 그렇게 나약하다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강도 높은 그 톱니바퀴에 갈려나가지 않게 그만둔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직장을 그만둔 후, 머리카락은 더 이상 빠지지 않았다. 6개월이 지난 후 탈모였던 머리상태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아마 계속 일했더라면, 죽지야 않았겠지만 머리카락은 점점 더 잃었을 것이다. 아마 내가 모르는 어떤 건강을 더 잃었을 수도 있고.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근무하던 시절과 비교하며 요즘 사람들은 너무 일을 빨리 그만둔다고 비난한다. 힘들어서인 것도 있지만, 계속 버티다 죽을 것 같은 느낌에 그만두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일이란 건 쉽지 않았겠지만, 아무리 과거의 기록들을 찾고 뒤지고 살펴봐도,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자기착취적인 분위기가 아니었다. 예전에는 그냥 자기 일을 하면 되었지만, 지금은 아주 쥐어짜가며 일을 해야, 제대로 일다운 일은 한다는 분위기다. 게다가 일을 잘 하면 돈을 더 주는 게 아니라, 일을 더 준다.


언론 기사에 따르면 런던 베이글에서 근무하며 과로사로 사망한 직원의 업무 포지션을 보면 이 말이 좀 더 선명해진다. 그는 오픈 준비와 운영 업무를 동시에 담당했고, 인력이 부족해서 발주와 정리, 직원 관리까지 떠맡았다고 한다.


일이란 게 원래 좀 그렇다. 막상 들어가서 하다 보면 내가 하기로 했던 포지션의 일만 할 수는 없다. 전혀 듣지 못했던, 하기로 했던 일이 아닌, 하지만 하지 않으면 일이 굴러가지 않으므로 할 수 밖에 없는 일들도 있다. 그래도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 그 일을 한다. 무엇보다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그리고 일이 힘들어서 ‘빨리 잘 끝낸 후 쉬고 싶은데’

일을 빨리 잘 하면 ‘일을 계속 더 준다.’ 상사와 동료들은, 네 덕분에 무사히 해 낼 수 있었다고 추켜세우면서 계속 일을 더 준다. 그렇게, 계속, 죽을 것 같을 때까지 게속 주니까. 혹은 죽을 때까지 계속 주니까.


돈은 절대 더 안 주고 일만 더 주니까. 그래서 우리가 그만 두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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