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려고 하는 것과 쓸 수 있는 것

추구미와 도달가능미

by 시은

새해 첫날, 안 좋은 연애를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더 딥하게는 ‘아빠의 행동이 딸의 연애에 미치는 영향력’ 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호기롭게 썼었다. 사회생활이나 일은 멀쩡하게 잘 하면서 '남자는 꼭 이상한 남자만 골라 만나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 를 쓸 거라고 말이다.


나는 망한 연애도 제법 했고 내가 그런 경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쓰려고 했던 것과 내가 쓸 수 있는 것 사이에는 내가 짐작하지 못했던 큰 강이 흐른다는 것을 머지 않아 깨달았다.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망했다고 생각했던 연애들이 지금 와서 보니, 꼭 그렇게까지 망한 연애는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망한 연애의 범주에 속하는 연애들이었으나 그렇다고 또 오지게 폭삭 망한 연애까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내가 꾸준하게 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고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쓰고자 했던 큰 틀인 '아빠의 행동이 딸의 연애에 미치는 영향력'인 것까지는 맞겠으나 이상한 남자만 골라 만나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 라고는 장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다음 이야기는 다정하고 이상하고 이기적인 나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빠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그 사랑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혼재되어 있었고, 그렇기에 아빠에 대한 내 마음이 엄청난 사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심플하게 말하면 폭력과 바람이겠으나이렇게 단순하고 납작한 단어로 묘사할 내용은 아니므로 추후에 자세하게 쓸 예정이다)로 아빠와 연락을 끊은 지금 와서 보니 내가 그동안 사랑했거나 좋아했던 남자들에 대한 마음을 모두 합친 것보다, 어쩌면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했던 것보다 아빠를 사랑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과거의 나는 그걸 전혀 몰랐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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