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아카데미아

#1_작가(지망생)들은 한이 많다

by 시은

일주일 남짓이지만 뭘 써야 할지 생각이 잘 안 떠올랐다.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그러다 각종 시나리오 수업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 혹은 거기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좀 들려주고 싶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는데 글 쓰는 것을 배우는 일도 그렇다. 대학교에서 전공으로 배웠어도, 아카데미를 다녀보니 아직 몰랐던 부분이 있었고, 알고 있지만 까먹은 것도 많았고, 여하튼 배울 게 많았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카데미의 선생님들보다 같이 공부했던 작가지망생 언니, 오빠, 동생들이 훨씬 자극이 되고 그들에게 배운 것이 많다고 느낀다.


아카데미에서 있었던 일을 쓰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일은, 자신의 한(恨)에 대해서 말해보라고 했을 때 있었던 일이었다.


그때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어릴 때부터 폭언과 구타를 당한 분이 있었다. 친한 사이가 아니어서 그분의 이름이나 성격은 기억나지는 않는다. 편의상 A 씨라고 하자. 그분은 자신이 그런 폭력을 당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화가 날 때마다 그 얘기를 그분에게 하셨던 것이다.


그분의 어머니는 아가씨였던 시절에 그분의 아버지한테 성폭력을 당해 임신을 하게 되어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그 분노를 A 씨에게 풀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미워 죽을 지경이라고, 가끔씩 어머니를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기가 힘들고, 그런 자신이 혐오스럽고 고통스럽다고 말하며 펑펑 우셨다. 학대를 당한 에피소드도 몇 가지 고백하셨는데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충격을 받았다는 것만 기억난다.


다 돌아가며 말하는 시간이었는데, 그분 바로 다음이 내 차례였다. 하지만 그분 뒤에 내 이야기를 하자니 그분의 눈물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내가 겪은 일이 너무 별 거 아닌 거 같았다. 그래도 말하기는 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어머니가 홈쇼핑에서 나오는 원피스를 너무 갖고 싶어 하셨는데, 그걸 내가 너무 사드리고 싶었다. 입시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야간 자율학습을 매일 땡땡이치거나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야간 자율을 빠지고 아르바이트를 할 용기는 없어서 급식비를 받은 후 라면으로 몇 개월을 때우며 그 돈을 모아서 엄마에게 원피스를 사드리려고 했다. 혹시나 그 사이에 엄마 마음이 바뀌어서 취향에 맞지 않는 원피스를 사드리게 될까 봐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싶어 졌을 때 모은 돈을 엄마에게 드렸는데 그때 엄마의 첫마디가 "너, 어디서 몸 팔고 왔니?"였다.


그 당시만 해도 어리고 이성과의 접촉을 두려워하던 내가 그때 느낀 수치심이나 불쾌감은, 솔직히 피가 끓는다는 느낌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뭘 팔은 거냐고 물은 거냐고 되물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거였다.


정말 별 거 아닌 것처럼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 앞의 에피소드의 충격이 다들 너무 커서 다들 내 얘기는 아, 그러셨어요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였지만 그건 다른 분들의 에피소드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그분의 고통에 주눅이 들고 말았다. 감히 위로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고통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도 비참한 기분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나는 엄마와 다툴 때마다 그때 그런 말씀 하신 거 아냐고 따졌지만, 엄마는 그런 기억도 없으며 사람을 때린 것도 아닌데 그 정도 얘기가 그렇게 흥분할 일이고 사과할 일이냐고 글 쓴답시고 니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하며 나무라셨다.


어떨 땐 엄마와 싸운 것도 아닌데, 갑자기 파도가 몰려오듯 어머니로부터 들은 모욕적이고 서운한 말들이, 저 일을 비롯해 몇 가지 떠올랐는데 그럴 때면 A 씨의 어머니 이야기가 더 큰 파도처럼 거의 항상 뒤따라 생각났다. 그리고 그분이 겪은 일들에 비하면 그래도 내 어머니가 한 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과 그래도 난 맞지는 않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파도가 물러나듯 그 분노도 멀어졌다. 그런 일이 나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있었고 시간도 흘러서 그 감정이 거의 누그러졌다.


이제는 어머니로부터 저런 일들에 대한 사과를 받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기억도 안 나신다고 하셨었지만 그래도 포기하는데 시간은 좀 걸려서 15년 반 걸렸다. 그리고 그나마 15년 반 걸려서라도 포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A 씨의 이야기를 듣고 한 1-2년 후에는 저 때의 내 감정이 점점 사그라들다 거의 다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그 날의 수업은 나에게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날의 뭔가 소외되고 비참했던 기분은, 이제 다행이라는 감정으로 바뀌었다.


예전에 훌륭한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라는 독자의 질문에 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을 들었다.


-불행해지시면 됩니다.


어쩌면 그분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 가장 불행한 분은 그분이다.


나는 그분 덕분에 내 고통이 상대적으로 작아서, 별 거 아니어서 대단한 작가도 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매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야누스의 두 가지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