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키우려던 건 아닌데

책 읽다가 육아 반성

by 심야책방

아들이 연산 문제집을 풀다가 또 짜증을 냈다. 문제집을 펼치자마자 모르겠다며 연신 끙끙 앓는 소리를 낸다. 받아 내림이 있는 뺄셈인데 거의 한 달째 숫자만 바뀌었지 같은 유형의 문제를 반복해서 풀고 있는 터였다. 게다가 세 자릿수 뺄셈은 너무 어렵다고 한탄을 해서 두 자릿수 뺄셈으로 문제 수준을 낮춰 주었다. 그런데도 저 난리다. 끓어오르는 화를 지그시 눌렀다. 주방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아들의 짜증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자기가 도대체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모르겠단다. 공부가 너무 싫고 집은 지옥이란다. 결국 나도 뚜껑이 열려서 단전 깊은 곳에서 사자후를 뿜어냈다.

"그럼 하지 마! 누가 어려운 거 시켜? 너 지금 학교에서 6단원 나가지? 그거 3단원이잖아! 학교에서 배웠던 거 복습하는 건데 그걸 몰라?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마!"


요즘 우리 집에서 1주일에 두세 번은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가끔은 아이를 설득하기도 하고 가볍게 나무라기도 한다. 아이도 아직은 엄마 말이 무서운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눈치를 보면서 억지로라도 그날의 할당량을 마친다. 분위기가 좀 풀어졌다 싶을 때 나는 매뉴얼을 읊듯 아이를 설득한다.

"공부는 싫어도 해야 되는 거야. 아빠도 회사 매일 가고 엄마도 매일 집안일하잖아. 엄마 아빠도 하기 싫을 때 있지. 그래도 해야 하니까 하잖아. 그러니까 너도 해야지. 집에서 엄마랑 공부하는 게 정 싫고 힘들면 차라리 친절한 선생님이 있는 학원에 가자. 선생님들은 착해서 엄마처럼 화 안 내. 그리고 더 재미있을걸."


어디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아들은 학원은 절대 안 간단다. 학원이라고는 피아노를 다녀본 게 전부 다인데 학원은 싫단다. 집에서 공부하는 것도 싫지만 학원보단 나을 것 같다며 혼나도 엄마랑 집에서 공부하는 걸 선택하겠단다. 하아... 아들아... 난 널 놓고 싶다... 자기 자식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는 말은 진리다. 나는 결혼 전에 학원 강사였다. 온갖 진상에 꼴통들도 만나 봤고 아이들 다루는 데는 어느 정도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내 자식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아이는 학원에서 만났더라면 아마 적당히 뺀 질대고 적당히 장난꾸러기인 보통의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과 엄마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는 천지차이라는 걸 몰랐다. 사람은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 세상 만만한 게 엄마고 엄마에겐 온갖 진상을 다 떤다. 내가 오만했다. 엄마표라는 이름으로, 혹은 혼공, 집공부, 홈스쿨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들은 내 능력으론 불가능했다.


대단한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도 나도 공부 유전자가 없다는 걸 알기에 아이에게 큰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연령대에서 배우는 걸 따라는 가야 하지 않겠는가. 1년에 총 6권으로 구성된 자기 학년의 연산 문제집을 2권도 마치지 못하고 있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나마 그 책도 어렵대서 더 쉬운 걸로 바꿨는데 그것도 어렵다고 징징대다니.


영어도 그렇다. 엄마표니 잠수네니 새벽달이니 하는 수많은 엄마표 영어 관련 도서를 섭렵하고 어릴 때 귀나 좀 틔워주자 싶어 유치원 때부터 넘버블럭스, 알파블럭스, 페파피그, 블루이 등등 아이가 좋아할 만한 영어 영상들을 틀어줬다. 쉬운 영어 동화책도 시도해 봤다. 하지만 아이는 대부분 거부했다.


그렇다면 3학년엔 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시작하니 교과서라도 읽게 미리 대비라도 해주자 싶어 파닉스를 집에서 가르쳤다. 지금 2년째 하는 중이다. 과연 이게 맞나 싶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다. 만일 내가 아이가 없었더라면 겨우 초2인데 무슨 공부냐, 저학년 때 놀아야지 언제 노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학년 때 신나게 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자, 이제 한 학년 올라갔으니 공부라는 걸 시작해야겠지? 오늘부터 국어, 수학 두 장씩 풀고 사회랑 과학도 복습하고 영어책도 한 권씩 읽는 거야? 좋지?"

라는 말에 수긍할 리가 없다. 공부 습관이란 걸 몸에 서서히 스며들게 해 주고 싶었는데 아이는 제일 기본적인 공부량에도 과부하가 걸린 듯싶었다. 혹시 내가 너무 과하게 시키나 싶어서 맘카페에서 다른 초2들은 어떻게 공부를 시키나 검색해 보면 거기엔 이제 겨우 초2인데 매직트리하우스를 읽는다느니 최상위를 푼다느니 하는 유니콘 같은 아이들만 있어서 이제 검색 같은 건 거의 하지 않는다. 나처럼 평범하거나 못하는 아이들의 엄마들은 맘카페 활동은 잘 안 하는 걸까. 아니면 나처럼 유니콘 같은 아이들의 사례를 보면서 자기 아이와 비교하고 속상해할까.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고 저 아이는 저 아이 나름의 인생을 잘 살아나갈 것이다,라고 주문을 외워도 원래가 걱정 많고 불안을 잘 느끼는 성격 탓인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이럴 때 내게 딱 맞는 솔루션을 내려 줄 오은영이나 조선미 박사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겠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도 없고 아이는 집집마다 다르고 부모와 아이 간의 기질 궁합도 천차만별이라 선배맘들의 조언도 와닿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 해답을 주는 건 책이다. 아니 이건 약간 잘못된 표현이다. 내가 어떤 해답을 얻고자 육아서 같은 걸 읽는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육아서는 거의 읽지 않는다. 어차피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져서이다. 오히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책을 읽을 때 어떤 구절에서 머리를 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오늘 읽은 책의 한 구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한다. 잘 가르치겠다면서,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다. 묻지 않는 어른 앞에서 어린이는 입을 잃어버린다. 이 경우 입은 오직 대답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데, 훈련된 대답은 말이 아니다. 말을 할 수 없는 입은 몸에서 사라진 기관이나 다름없다.

얼마나 많은 혜원이 들이 우리 곁에 있는가.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부모 욕심은 아이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진행된다. 소통을 무시할 때면 아무리 현명한 주장도 봉건적인 통제와 다름없는 폭력이 된다. 하물며 지금은 과거에 비해 더욱 첨예한 경쟁 시대가 아닌가. 경쟁의 속도전에서 진지한 소통이 한가한 얘기로 취급되는 한 우리 곁의 혜원이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거짓말하는 어른>, 김지은, 문학동네, 91쪽)


이 구절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밑줄을 그을 수는 없어서 플래그를 가져와 붙였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고 잘 가르치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욕심은 사실 나의 욕심은 아니었는지(그럴 확률이 높다) 한참 생각에 잠겼다. 아이가 학습에 뒤처지게 되면 경쟁 시대에 도태되고 그것은 곧 내가 양육에 실패했다는 것과 같은 뜻이 된다. 결국 나는 나의 실패를 보고 싶지 않아 나를 잡는 대신 아이만 잡은 꼴이 아닐까.


입시가 끝나면 아이와의 관계만 남는다고 어떤 유튜버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좀 서늘해졌다. 과연 아이는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공부 안 한다고 이것도 못하냐고 닦달하던 엄마로만 기억될까 봐 두렵다. 다행히 아이는 중2가 아니라 초2다. 그리고 아직은 엄마를 좋아하는 나이다. 나는 아이를 저 인용한 구절의 혜원이(권위적인 아빠 밑에서 시킨 대로 움직이고 자기 속마음을 잘 말하지 못하는 아이)처럼 만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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