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삶을 살고 싶은 이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에게 남긴 것

by 또똣샘

11년 전, 2021년 12월 마지막 주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내려오냐?"

"일주일 후에 갈 거야. 몸 잘 챙기고."


타지에 나와서 일을 하는 나는 겨울이면 제주도에 내려가곤 했고, 일주일 뒤면 제주도에 갈 터였다.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내려가기 전부터 종종 전화가 와서는 언제 내려올 것인지 물었다. 당시 아버지는 간질환으로 인해 많이 아팠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단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겨울이면 꼭 내려가 곁에 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다. 아버지가 왜 자꾸 전화를 거는지 말이다.


2021년 1월 2일 아침 9시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먼저 전화 거는 일이 없는 남동생 이름이 찍혀 있었다. 특별한 일 아니겠지라며 가볍게 넘기고 일을 마저 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리며 여동생이 뛰어 들어왔다.


"언니, 전화를 왜 안 받아.. 아빠가.. 아빠가.."

잠시 나의 자취방에 살고 있던 여동생이 말을 잊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순간 남동생의 부재중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안감이 앞을 가렸다.


"언니, 아빠가... 아빠가... 위급하대."

머리가 하얘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머리가 하얘져 버렸다. 5일만 지나면 곧 아버지를 만날 터였다. 아픈 데 너무 늦게 보러 왔다고 죄송하다고 할 터였다.


"얼른 와야겠다."

뒤이어 걸려 온 작은 아버지의 전화. 작은 아버지의 흐린 말 한마디에 정신을 차렸다. 눈물이 터질 틈도 없었다. 빨리 가야만 했다. 버스도 예약하고 비행기도 예약했다. 나의 자취방에서 제주도 아빠의 병원까지는 아무리 빠르게 가도 밤 9시가 최선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한 틈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 여기저기서 겨울 여행을 가는지 신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버스 안에서 여동생과 심장을 붙잡고 있었다. 제발, 제발. 휴대전화를 모은 두 손을 꼭 모아, 기도라는 것도 했다. 불안함이 넘처 흘러 심한 두통을 일으켰고, 휴대전화를 잡은 손바닥에는 손톱 자국이 핏빛을 띠었다.


전화는 계속 왔다.


"언제 오니. 이제 시간이 없다."


내가 줄일 수 없는 시간. 버스는 제 속도대로 가고, 비행기는 제시간에 맞춰 뜬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돈을 좀 더 벌겠다고 아버지를 보러 가는 시간을 뒤로 미룬 것이 가시가 되어 나를 찔러 댔다. 불안함이 차고 넘쳐 어지러워질 때쯤이었을까.


"아빠... 가셨어."


처음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고, '가셨다'는 말을 이해하고 나서는 소리 없는 울음으로 소매를 적셨다. 꽉 찬 버스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후회 섞인 마음으로 숨죽이며 우는 일밖에.


"가위 바위 보~"

비행기를 탔다. 설렘을 안고 가는 사람들을 위해 승무원과 아이들의 즐거운 이벤트가 진행됐다. 그 안에서 슬픔을 머금고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내가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이토록 비참한 일이라는 알려주기라도 하듯 의자 한 칸의 안전벨트는 더 조여왔다.


몇 개월 만에 만난 아버지는 수척했다. '아빠'라고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 이미 차갑게 변해버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많이 울었다.


'조금만 기다리시지. 나 좀 보고 가시지.'

아버지의 마지막 길에 마음속으로 수백 번도 외쳤던 그 말. 그건 나에 대한 질책의 말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훌쩍 떠났다.


소리 내어 우는 시간을 지나고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쯤, 다시 일상생활을 해야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일들 속에서 문득문득 후회라는 가시가 마음을 찔렀다. 좀 더 일찍 아버지를 보러 내려갔으면 아버지는 괜찮아졌을 거라는 터무니없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혔다.


영원한 이별이 이토록 '순간'이었다는 걸.


아버지가 잦은 전화를 하며 '맏이'인 나에게 했던 잔소리에 짜증 섞인 응답을 했던 그 순간들이 자꾸 가슴에 와 박혔다. 좀 더 살갑게 말할걸. 한 마디 다정한 말이라도 해 둘걸.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내가 한 말들, 내가 한 행동들은 한 '순간'으로 인해 '미안하다'는 말을 할 기회조차 생길 수 없다는 걸 배웠다.


한 순간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토록 볼 수 없다는 것은 나의 삶을 크게 바꿔 놓았다. 지금 내가 만나는 사람과의 '순간'이 후회가 되어선 안 된다는 마음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알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다정함을 주려고 노력하자는 다짐을 했다.


다정한 사람, 따뜻한 사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나서 내가 살아가는 가치 기준이다. 아버지가 떠나고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사람을 향한 모진 말과 행동이란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결국 '순간'이라 만남에 있어서 상대에게 따뜻한 기억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사람을 만날 때는 좀 더 정성스럽게 그 사람을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마음을 담아서 당신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라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사실 나는 사람을 많이 가린다. 내 성향과 맞지 않는 사람 곁에 있으면 많이 힘들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인사 한마디는 할 수 있으니까. 먼저 다정한 인사를 건네보는 사람이 되었다.


온라인 커뮤티니에 참여하는 기회가 많아졌는데,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의 모임이고 글로써 서로를 알아가는 사이지만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담아 답변을 단다. 블로그의 댓글조차도 마음을 담는다. 내 마지막 말이 후회가 되지 않도록 말과 글에 정성을 다한다.


'내가 당신을 따뜻하게 대하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다정하게 대하고 있어요.'


내가 타인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이다. 남편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한 번 한 적이 있었다. 남편에게 한 말은 나의 삶의 기준이다. 남편에게 전했던 말을 다시 떠올리며 글을 마무리해 본다.


"우리가 어느 순간, 한 명이 훌쩍 떠나버릴 수 있잖아. 그때 말이야.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자기를 향한 마음이 후회가 아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려고 노력해. 내가 자기에게 한 마지막 말이 자기에게 준 상처가 아니기 위해서. 내 마지막 눈빛이 상처로 남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자. 서로의 마지막에 후회가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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