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대고싶은 서정
보수동쿨러에게는 특별한 게 있다. 이들은 마음을 사로잡는, 그것도 흡입력 있게 단박에 사로잡는 음악을 한다. 누구에게나 꼭 하나 그런 곡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이 밴드의 노래는 뭐랄까 듣는 사람을 푹 빠져들게 만든다. 징글쟁글한 일렉트릭 기타가 대부분의 멜로디와 전체 추진력을 담당하는 구조 안에서 수록곡은 저마다 색다른 매력을 뽐낸다. 에너제틱하며 동시에 사색적인. 그 이중적인 분위기가 음반을 감싼다.
2017년 부산을 기반으로 결성한 밴드는 2019년 첫 EP인 이 앨범을 내놨다. 제목인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라는 단호한 거절의 표현은 작품의 중심 태도와 같다. 조금은 삐뚤게 그러나 확실하게 이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저항한다. 대상은 때로는 연인에게로 때로는 나에게로 또 때로는 삶으로 향한다. 이때 핵심은 선명한 부정 곁에 함께하는 여유와 낭만. 한 글자씩 입으로 곱씹게 되는 시적인 가사와 멜랑꼴리하고 몽글거리는 기타 톤은 밴드만의 색채를 빠르게 퍼뜨린다.
타이틀 ‘0308’ 그룹의 강단을 담았다. 펑키한 리듬 위에 ‘삶은 누구에게나 실험이고 중독의 연속이다’는 가사를 내레이션으로 내뱉는데 2016년 이랑의 ‘신의 놀이’가 주었던 통쾌함과 시원함이 전해진다. 하고 싶은 말들을 툭툭 내뱉다 자신들의 말에 동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 무심하게 던지는 ‘아닌가’란 질문 또한 놓칠 수 없는 매력 포인트. 연이어 ‘도어’는 눈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마음을 녹인다. ‘눈 맞춘 적 없던 시간들이 발끝에 멈춰’있을 때 문 앞에서 무언가를 기다려본 사람, 간절함을 손에 쥐어본 이에게 곡은 최고의 위로가 된다.
유독 거친 기타 톤이 흐르는 ‘목화’의 시린 감성과 음반 내 가장 어두운 감정을 분출하는 ‘이 여름이 끝나고’의 맛과 멋을 살린 건 전 보컬 정주리의 소화력 덕택이었다. 그가 떠나고 새 보컬 김민지가 바통을 이어받은 지금 내달 돌아올 신보가 궁금하다. 머리 위로 과감하게 엑스를 그리는 용기와 넘치는 낭만, 유쾌함을 가진 그룹.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처럼 뚝심 있게 밀어붙인 그들의 개성이 부산 밴드의 지평을 더욱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