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참 녹록지 않네요, 그죠?
2018년의 반이 지났다. 아 더워 으 더워 하며 하루 하루를 견뎌내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인데 어제 저녁을 기점으로 그러니까 말복을 기점으로 날이 풀리기 시작했고 하늘에서 얼핏설핏 가을이 스친다.
매해의 끝, 그 한 해를 돌아볼 때 나는 늘 행복했다. 무엇보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많은 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으며 그래 무엇보다 올 해도 나쁘지 않았어 라는 읊조림으로 끝맺었다. 하지만 2018년의 반을 살아낸 지금 나의 씹팔년도는 그리 용감하지도 행복하지 않다. 굳이 굳이 따지고 보면 나의 26년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평면적이고, 질 좋은 웃음보다는 그래 그냥 지금, 그렇게 짧게 웃어버리고 말 작은 순간들이 전부였다. 꽤나 건조하고 꽤나 퍽퍽한 나날이다.
올해의 시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그 유명한 코인 노래방 사건이다. 첫 인턴, 그리고 첫 직장을 위한 몇 가지 단계를 준비하며 막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 같고 어리석은 어리광이지만 딱 7달 전만 해도 세상이 온통 회색빛에 마음 거뭇해져 앉아 있어도 서있는 것 같고 서있어도 누워있는 것 마냥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똥줄 탔다는 거다. 아마도 한 신문사 인턴을 서류에서 떨어지고 하릴 없이 채용 사이트를 뒤지던 날이었던 것 같다. 그 어디에도 내 이력서를 제출하고 싶지 않았던 그 날. 경택이와 코인 노래방에 가서 자우림의 샤이닝(‘지금이 아닌 언젠가 여기가 아닌 어딘가 나를 받아줄 그곳이 있을까’)를 부르며 울컥하고 체리필터의 오리날다(날아올라 밤하늘 가득 안고 싶어요 이렇게 멋진 날개를 펴 꿈을 꾸어요 난 날아올라)를 부르며 오열한 그날. 그땐 그 슬픔이 얼마나 감사한 외로움인지, 얼마나 얄팍한 괴로움인지 몰랐다.
그렇게 최종 면접을 갔다가 떨어지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안일했고, 내가 정말 부족했다. 꽃 피는 순서는 다 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몰랐고, 정말 많이 부족했고 자세나 태도나 행동이나 혹은 대화법 그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땐 정말 절실하게 꼭 이뤄내고 싶다) 또다시 프로 알바러가 되면서 아빠가 떠안고 있는 가장의 무게라든가, 도무지 깨뜨릴 수 없는 엄마의 어떤, 나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라든가 하는 좀더 큰 으른들의 세상을 경험하면서 요즘의 나는 내가 살고 있는 것인가? 아님 끌려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에 속에 살고 있다.
과연 나는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님 나는 끌려가고 있는 것일까? 내가 엄마를 혹은 아빠를 이해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서로를 혹은 나를 어느 정도 이해하려고 할까? 나는 어느 선까지 사회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말이 나왔으니 경택이와 나의 관계를 어느 시점에서 포용해야하는 가하는 정말 뿌리에 뿌리가 뿌리처럼 달리는 고뇌들이 자라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천에서의 일주일은 물론 경택이와 정말 크게 한 바탕 했던 것 때문에 스펙터클이 할리우드 급이 되어버렸지만 그것을 논외로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글을 계속 쓰고 싶은가? 하는 의구심이 쓰고 싶다! 는 느낌표로 바뀌게 된 경험. 김상훈 글인가 뭔가를 읽다가 인턴을 통해서 내 미래에 확신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었는데 이번 일주일이 나에게 그런 자신감을 줬다. 이 일을 해내고야 말겠다는 자신감을 말이다.
세상 돌아가는 많은 일들을 훗,칫,쁭야쁭야 넘겨버리던 그 무데뽀 철부지의 박수진은 지고있지만 이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박수진은 자라고 있다. 바로 그 면이 희망이고 바로 그 때문에 힘들고 힘든 2018년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힘들어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는데 그냥 닥치고 열심히 내 일을 해야겠다 싶다. 머리로는 그런데 또 감정적으로 잘 안 받쳐주기도 하고. 모르겠다. 모르겠는 인생이다. 참. 휴, 열심히 하자. 정말로. 열심히 또박 또박 적고, 성실하게 읽고, 들어야지.
적어도 아무것도 안 하며 원망하지는 말자! 어쨌거나 수진아 생일 축하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