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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진 May 18. 2020

젊음이여 열정이여 영원하라!

3호선 버터플라이 '스모우크핫커피리필'

자꾸만 돌아가지 못할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내가 지금 (조금은) 나이 들었다는 증거일까, 혹은 지금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미일까? 누가 들으면 이미 벌써 꽤나 나이 먹은 줄로 알겠지만 내 나이 방년, 20대 후반. 30대의 기로 앞에서 마음껏 응석 부리지도, 모든 걸 책임질 만큼 단단하지도 못한 채 어중간하게 살고 있는 여전한 학생으로서 요즘은 참 옛날이 그립다. (그립다 그리워!)


특히 되돌리고 싶은 건 모든 게 다 새롭기만 했던 21,2살 시절이다. 겁날 것은 없고 즐길 것은 많던 그때의 나는 툭 하면 웃었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학교의 제일가는 ‘통학러’였기에 왕복 4시간은 거뜬한 그 긴 시간을 이어폰 하나에 의지해 다녔음에도 호기롭게 새벽 공기 맞으며 9시 수업을 들었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친구 집을 전전하며 야식도 잔뜩 먹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어쩌다 보니 다시 공부하는 신세지만 그때의 내게 공부는 늘 먼 세상의 일이었고 취업은 두려움의 대상일 뿐 결코 곁에 올 일 없던, 그렇기 때문에 걱정은 하되 준비는 하지 않는 종류의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런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때의 나 참 반짝였다.


당시 내 에너지원은 허허허 ‘덕질’이었다. 정말 고백하건데 나는 그 록 밴드의 그 보컬을 사..사..사랑했다. 그가 쓴 모든 싸이월드 다이어리를 외울 듯이 읽어 댔고 그의 옷 스타일을 따라했고 눈물 콧물 뺀 연극을 보고 문득 옆자리에 앉은 그를 상상하기도 했다. 내가 그에게 빠진 건 뭐랄까, 완벽한 충격 때문이었다. 세상의 예의 따위는 거뜬하게 무시하고 적당히 관능적이고 폭발적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퍼포먼스. 그리고 그 삐딱함.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그 ‘날티’에 취해 그야말로 내 스무 살을 무지개 빛으로 뒤덮여있었다.


그렇게 음악, 인디 음악, 록, 밴드, 팝 등에 빠졌고 작은 욕심이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좋아하면 즐기는 걸로 끝냈으면 될 터인데 왜 그걸 글로 쓰고 싶었을까? 지금의 은사님을 언제부터 알게 됐던 걸까 싶기도 하고 더군다나 인디로 시작했으면 거기서 끝났으면 될 것을 나는 왜 팝과 역사까지 관심을 틔웠던 것일까? 잘 모를 일이지만 하여튼 간에 그때의 그 열정을 발판 삼아 (여전히 부족하지만) (지금은 나태하지만) 많은 책들을 찾아 읽었고 들으려 노력했으며 그냥 막연히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쓰고 듣고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꿈꿨던 것 같다.


그러면서 만난 게 3호선 버터플라이였다. 어디서 어떻게 그들의 음악을 듣게 됐는지 역시 모르겠다. 선배님이 진행했던 한 콘서트에서 게스트로 선 성기완님을 만나고 부터였을까? 한국의 명반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거였을까? 그 시작을 모르겠지만 끝은 확실하다. 단연컨대 3호선 버터플라이의 4집 <Dream talk> 그 중에서도 1번 트랙인 ‘스모우크 핫 커피리필’은 내 스무살, 반짝이던 그 때를 가장 많이 함께한 곡이다.



지금도 늘 세상이 버겁고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어릴 때는 더 심했다. 내 작은 세계가 늘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에 금방 부서질 일들 따위도 늘 아팠고 늘 무서웠고 늘 두려웠다. 그럴 때 난 이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때로는 아 그 뭐랄까. 스스로 파고, 스스로 들어가고 싶은 그 허세 넘치는 외로움에 취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나 오늘 좀 센치한데, 나 오늘 좀 시크한데 류의 무드로 내 몸을 휘감고 싶을 때도 난 이 노래를 들었다. 목소리가 하나씩 겹치고 가사는 질서가 없고 소리는 부딪혀 무너져 내릴 때 그 날카롭고 둔탁한 마찰음이 주는 파괴력을 사랑했다. 꽉 막힌 세상에 있는 힘껏 발차기를 날려주는 느낌이랄까?


한 번은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 이 노래를 크게 틀어뒀던 적도 있다. 지금은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떤 호감형의 손님에게 이미지 메이킹을 하려던 의도였다. 착 틀고 척 소리 키워 그리고 책 들고 해질녘 이 자리, 그래 이거지. 암요 암요. 물론 그도, 나도 서로의 존재를 그때도 지금도 알지 못하며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이건 그냥 내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일 뿐.


3호선 버터플라이를 보러 라이브 클럽도 참 많이 돌아다녔다. 혼자서 경기도 외곽에서 홍대까지 지하철로 1시간 30분을 이동하며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밴드가 유럽 투어를 가기 전 셋 리스트 연습을 하기 위해 만든 콘서트에도 갔었는데 당시 숫자 하나 차이로 기념품 획득에 실패했을 때도 아쉬움보다 그냥 그 순간에 내가 있다는 그 자체로 설렜다. 늘 눅진 공기, 그걸 달래려 머리 위만 시원한 에어컨. 저마다 독특하게 차려입은 사람들. 한두 명씩 꼭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들까지. 그 다양성과 새로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달리 힘에 부치는 요즘 내 글귀는 “더 나아지리라”다. 뭐로 보다 지금보다는 낫겠지 바라본다. 오늘은 오랜 만에 3호선 버터플라이를 들었다. 여전히 뜨겁고 알싸하다. 한 가운데 지금보다 훨씬 당차고 멋졌던 내가 서 있는 것 같다. 허허. 젊음이여 영원 하라. 음악이여 영원 하라. 아이쿠, 열정도 함께 영면...아니 영원하자!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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