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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진 Feb 08. 2021

'홍대여신'은 없다.

가능성과 대안의 공간으로의 인디씬.

 홍대 여신은 누구인가. 장기하와 얼굴들, 10cm와 같은 인디 뮤지션들이 매스컴을 달구던 때는 바야흐로 2008~2010년 즈음 ‘홍대 여신’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곧이어 홍대 마녀, 홍대 3대 여신이란 호명들이 뒤를 이었다. 홍대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 인디 뮤지션’들에게 붙여지던 이 별칭은 명백히 여성 혐오적 표현이다. 이들을 음악성이 아닌 외모로 집약되는 상품성에 주목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2018년 뮤지션 오지은은 여성신문에 <홍대 여신은 혐오다>(2018.1.3.)란 기사를 썼다. 불편했지만 도통 이유를 알 수 없던 바라지 않은 칭찬의 진실. 그것은 여성 뮤지션이란 이유로 손쉽게 라벨링 당하고, 폄하 당하는 구조 속에서 드러났다. 오지은의 말대로 여성 뮤지션은 “여신으로 대상화됐고 혐오와 숭배는 맞닿아있다.” 음악이 아닌 여성 프레임으로 확대되는 이들의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흐름이 ‘인디씬’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주류 메인스트림보다 활동 제약이 적은, 그럼으로써 더 자유로운 창작이 보장되는 인디씬에 가해진 차별과 혐오는 여성 뮤지션들의 위치를 재고하게 한다. 1990년대 초중반 형성된 홍대의 인디씬은 여성들에게 일종의 해방구와도 같았다. 능숙한 음악 실력이 없어도 발 들일 수 있던 아마추어리즘, 관객과 무대의 경계 없음이 주는 자유로움은 여성들을 인디씬으로 이끌었다. ‘담다디’, ‘사랑을 할 거야’ 등의 노래로 사랑받던 이상은은 인디씬으로 들어와 거침없이 생각과 감정을 토해냈다. 흔히 말하는 인디 1세대로 비슷한 시기 황보령은 기존 남성의 장르로 여겨지던 록(Rock)을 기반으로 포효했고 김윤아가 메인으로 활약한 자우림, 장필순 등도 대안 공간으로써 인디씬이 존재했기에 활약할 수 있었다. 이처럼 인디씬의 시작에는 자생, 자유, 평등이 존재했다.


 판도가 뒤집힌 건 인디씬이 대중화되면서부터다. 기존 다양한 음악 장르를 중심으로 가지각색의 목소리들이 군림하던 인디씬에 획일화가 시작됐다. 인디씬에서의 활동은 음악을 향한 열정을 증명하는 일종의 연습 기간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또한 ‘인디 뮤지션 출신’ 이란 설명이 훈장처럼 음악가를 수식했다. 거대 자본의 유입이 있었고 인디 음악을 팔기 위한 캐치프레이즈가 횡횡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저렴한 임대료를 바탕으로 예술가들이 집결되어 있던 홍대 인근을 2008년 서울시가 ‘걷고 싶은 거리’로 지정하면서 예쁜 카페와 가게들이 들어섰다. 이 아기자기함 혹은 화려함이 그대로 여성 인디 뮤지션의 음악을 포장했다. 이들이 전달하려던 메시지는 ‘홍대 여신’이란 단어 아래 흩어졌다.


 오늘날 홍대 인근의 인디씬은 과거의 에너지를 잃은 상태다. 투기 과열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홍대를 중심으로 모이던 음악가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 19는 이에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작년과 올해 홍대 인근의 라이브클럽 10여 곳이 연달아 문을 닫았다. 라이브클럽은 음악을 전할 수단이 많지 않은 인디 뮤지션들에게 몇 없는 기회의 공간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여성 뮤지션의 상황 역시 녹록지 않다. 그나마 뜻을 함께하는 음악가를 만나고 교류할 장으로서 인디씬이 사그라든 지금 여성 뮤지션이 기댈 곳은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그들의 선택은 인디씬이다. ‘홍대여신’이란 부름이 멸칭임을 스스로 깨닫고 그리하여 한 명의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나가는 여성 뮤지션들은 여전히 인디씬을 대안 공간으로 삼아 활약 중이다. 얼마 전 발매된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 <we do it together>가 이를 증명한다. 12팀의 여성 뮤지션들이 모여 주체적 목소리를 냈다. 뭉치니 더 강한 울림이 전해진다. 홍대 여신은 없다. 이 명제를 지키기 위한 토대로써 인디씬이 지금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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