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캐롤 >과 < 세이프 오브 워터 >를 중심으로
오랜 시간 영화 속 여성은 이미지로서 존재했다. 최초의 극영화인 < 달나라 여행 >에서 남성이 달 타험을 떠나는 위대한 과학자로 그려졌다면, 그 옆에 짧은 핫팬츠 차림의 응원단은 여자의 몫이었다. 폭력에 희생당하는 약자, 남성을 유혹하는 에로틱한 성인, 혹은 순결한 여성은 존중받고 자유로운 성 관념을 지닌 자는 비난 받는 식으로 여성은 왜곡된 채 의미화 되어왔다. 심지어 서구의 가장 오래된 레즈비언 재현 영화가 뱀파이어 극으로 발현된 몬스터였다는 것만 봐도 여성성에 씌워진 가치 프레임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여성이 사랑을 소비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우디 앨런의 영화 < 블루재스민 >에서 주인공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쇼핑과 파티를 즐기는 뉴욕의 ‘잘 사는’ 여성이다. 그의 곁에는 ‘잘 나가는’ 사업가 남편 할(알렉 볼드윈)이 있는데 사실 그는 바람둥이에 거창한 사업은 유령회사, 연대보증 등의 사기로 가꾼 언제 바스러질지 모를 위태로운 감투다. 그녀는 그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한다. 그녀에게 남편은 부와 명예를 물어다주는 까치이기 때문이다. 외도, 명의도용에도 잠자코 있던 재스민이 할의 이혼 요구에 자신의 소유물을 잃을까 극단적인 선택을 한 장면은 그녀의 남성 의존적 사랑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그녀의 동생 진저(셀리 호킨스)는 그럭저럭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보잘 것 없는 형편의 전 남편과 실수로 사랑하고 결국에는 이혼을 했지만, 또다시 비슷한 부류의 남자를 만난다. “믿을만한 사람 만나기 어렵잖아” 라는 극중 진저의 말처럼 그녀에게 사랑은 그저 현실일 뿐이다. 눈높이에 맞춰 적당히 기댈 수 있는 사람. 만남은 쉽고, 그저 현실의 빈틈을 메꿀 한 가지 대안일 뿐이다. 재스민의 설득에 빠져 고급 파티에서 만난 다정다감한 남자와 금방 새 출발을 꿈꾸고, 후에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전 남자친구 칠리(바비카나베일)에게 돌아가는 과정은 그녀의 사랑 역시 ‘의지하기’가 주목적임을 보여준다.
해시태그를 타고 불어온 미투 운동, 그리고 재점화된 페미니즘 리부트에 맞춰 영화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재스민 역의 케이트 블란쳇이 주연한 < 캐롤 >, 진저 역의 셀리 호킨스가 열연한 < 셰이프 오브 워터 >(이하 워터)를 통해 그 달라진 양상을 파악해보자.
레즈비언을 소재로 했던 한국영화 <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에서 극이 두 주인공을 귀신으로 그려내고, 대표적인 여성 퀴어 영화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가 만남 이후 사회적인 제약에 집중했던 것에 반해 < 캐롤 >과 < 워터 >는 조금 더 현실성 있는 결속과 감정 그 자체를 그려낸다.
사람과 닮은 외관을 지녔지만 아가미가 있어 수중 생활이 가능한 괴생명체와 사랑에 빠진 < 워터 >의 여주인공 엘라이자. 그녀가 그(?)에게 마음을 준 건 같은 결핍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선천적 농어인 엘라이자는 말을 할 수 없고, “신음 소리도 못 내느냐”라는 공격을 받아도 아무 대꾸도 할 수 없는 묶인 신세다. 남미에선 신으로 추앙 받았을지 몰라도 잡혀온 우주항공센터에서는 그 또한 갇혀있고 소통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와 같은 상황, 연대 속에 있다.
반면, < 캐롤 >에서의 사랑은 운명적 스파크다. 여주인공 캐롤과 테레즈(루니 마라) 사이에는 여성이라는 공통점 외에 연령대, 경제 사정, 관심사 그 어디에도 연결점이 없다. 그들의 사랑은 첫 눈의 이끌림이다. 극 중 캐롤이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 “나의 천사,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고백하고 테레즈 역시 극중 애인의 유럽 여행 제안에는 답을 하지 않지만 처음 만난 캐롤의 식사요청이나 집 초대에는 단번에 응하는 등 다가온 사랑을 거부 없이 수용한다.
결핍과 운명으로 만난 각 영화의 캐릭터들은 사랑에 있어서만큼 주저하지 않는 과감한 모습을 보인다. < 워터 >의 엘라이자는 그가 해부될 위기에 처하자 주저 없이 그를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짜고, 캐롤은 아직은 어린 테레즈를 향해 둘만의 여행을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테레즈는 걱정보다는 “(여행 출발 이후) 집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거나 “더 저렴하다는데 한 방만 주세요”라고 이야기 하는 등 적극적으로 감정을 고백한다.
이는 자주 등장하던 의존적이고, 상대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등 주체적이지 못하게 그려져 오던 여성의 사랑법과는 다른 시선이다. < 워터 >의 엘라이자, < 캐롤 >의 캐롤, 테레즈는 사랑과 감정 앞에서 충실하고 직선적으로 달려 나간다.
최근 < 콜미 바이 유어 네임 >과 마찬가지로 두 영화 속 장애물은 동성 혹은 괴생명체와의 만남에서 촉발되는 사회적인 차별이 주가 아니다.
< 워터 >의 마찰 요인은 우주항공센터의 보안책임자 스트릭 랜드(마이클 섀넌)의 욕망이다. 지능과 공감 능력으로 인간과의 교감이 가능한 것에 상관없이 그는 괴생명체를 해부하려 한다. 그를 통한 성과와 업적이 유일한 목적. 심지어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 < 슈렉 >에서조차 몬스터와의 사랑을 차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오히려 < 워터 >는 화장실 문틈을 막고 그들만의 바다에서 사랑을 나누고, 입을 맞추는 장면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그들의 사랑에 있어서의 걸림돌은 오로지 스트릭 랜드의 방해뿐이다.
< 캐롤 >에 주요 훼방꾼은 이혼 소송 중인 남편 하지(카일 챈들러)이다. 캐롤과 테레즈의 여행에 사람을 붙여 그들의 밤을 염탐하고 끝내 캐롤을 동성애 회복이란 명목 하에 심리 치료사 앞으로, 또 자신의 옆으로 붙들어 맨다. 다만 주목해 봐야 할 것은 영화가 그런 외부 방해보다는 두 여성의 사랑과 감정에 집중한 다는 점이다. 현재 캐롤의 시점으로 시작된 영화가 창밖을 바라보는 테레즈의 시선을 통해 과거로 들어가고, 이후 일련을 사건을 겪은 후 다시 현재 테레즈의 시선으로 마무리 되는 섬세한 카메라 시퀀스를 통해 극은 ‘동성애’영화 보다는 동성‘애’에 방점을 찍는다.
두 영화에서 반가운 지점은 극 속 여성 캐릭터가 현실에 안주하는 식으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일터를 오가던 엘라이자는 괴생명체가 사라진 후 스트릭 랜드와의 면담에서 그를 노려보며 F,U,C,K를 날리고, 저녁 식사 메뉴조차 혼자 힘으로 고르지 못했던 테레즈는 캐롤과 만나며 싱크대 밑에 묻혀둔 직접 찍은 사진을 꺼내 들고 자신이 꿈꾸던 사회로 나아간다. 캐롤 역시 딸 린다를 위해 가정에 다시 돌아간 듯 했지만 결국 “날 포기하며 산다면 린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고 말하며 양육권을 포기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종국에 해피엔딩으로 귀결된다. 과거 < 가장 따뜻한 색, 블루 >가 어긋난 만남의 종착을 다뤘다면 현재의 두 영화는 상황 앞에 뒷걸음질 치기보다는 한 발 앞서 사랑을 위한 단검을 뽑아든다.
이처럼 더 이상 영화는 상황 앞에 위축된 여성이나 혹은 그들의 사랑을 차별적 잣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극이 조금씩 방향을 틀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플라톤의 향연을 바탕으로 쓰인 영화 < 헤드윅 >의 대표 테마곡 ‘Origin of love’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 옛날 세 종류 사람 중 등이 붙어 하나 된 두 소년
그래서 해님의 아이
같은 듯 다른 모습 중 돌돌 말려 하나 된 두 소녀
그들은 땅님의 아이
마지막 달님의 아이들 소년과 소녀 하나 된
그들은 해님, 땅님, 달님의 아이”
세상은 변하고 있다. 위의 가사처럼 사랑의 기원에는 두 소년이, 또 두 소녀가, 또 남녀가 존재해왔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은 유형을 미뤄내 왔던 것은 아닐까. 아직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동성애, 그중 특히 여성의 사랑과 또 여자가 사랑하는 방법이 더 의욕적으로 주목되기를 바란다. 변화는 오고 있다. 위에 풀어낸 두 영화에 그 자장의 조짐이 움틀 거린다.
< 헤드윅 ost, Origin of love >
*참고자료
-< 영화와 사회 > (김이석, 김성욱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