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앨범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진 Nov 25. 2020

김제형 <사치>

★★★★ 김제형은 누구인가, 김제형을 찾아라!

탈맥락 · 탈시대, 그리하여 김제형


지난 10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 김제형의 첫 정규 음반이 발매됐다. 소리, 소문이랄 것도 없는 조용한 등장이었다. 별다른 홍보도 없었다. 심지어 포털 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음악 플랫폼에 그의 이름을 검색해도 결과는 요원했다. 2017년 첫 EP < 곡예 >를 내놓고 올해 첫 정규를 냈다.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다.


뚜껑을 열고 음악을 만나보자. 이것 참 여러 가지 이유에서의 걸작이다. 우선 지난 EP가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의 감성을 노래했다면 이 작품은 장르 소환에 거침이 없다. '노래의 의미'는 레이 찰스의 명곡 'Hit the road jack' 풍의 스윙으로 몸을 들썩이게 한다. 이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위트. '음악의 쓸모없음(그럼에도 노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을 독특한 내레이션으로 고백한다. 친숙한 '고양이 춤'의 멜로디를 묘하게 비틀어 곡의 끝을 맺는 구성 또한 매력적이다.


이렇듯 큰 악기들을 활용해 사운드를 풍부하게 채운 노래들이 많다. 뮤지컬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의심이 많아진 사람의 마음이 있었지'나 편애하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사는 마음을 꿈꾼다고 말하는 '편애하는 사람'이 대표적이다. 뿅뿅이는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키치한 복고 감성을 내뱉는 '인정투쟁' 역시 쉬이 넘길 수 없는 킬링 트랙. 기교 없이 굵고 정직한 목소리로 '어어' 추임새를 넣는 센스 앞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삼킬 도리가 없다. '체 킷 아웃(Check it out)'하며 곡을 즐길 수밖에.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의 존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포크를 중심으로 일상과 위트를 결합했다는 측면에서 얼마 전 < 청파소나타 >로 돌아온 정밀아가 떠오르고 그 이외에도 김목인, 김정균(김거지), 권나무 등이 그와 교집합을 가진다. 김제형이 새로울 수 있는 건 단박에 집중 조명을 쏘아도 문제없을 음악성에서 나온다. 어쿠스틱 기타의 왈츠 리듬으로 기본을 잡고 바이올린이 탄탄히 곡을 견인하는 '농담에게', 셔플 리듬의 진득한 일렉트릭 기타가 근사한 '아엠 새드' 등 노래는 단단하다. '참을 수가 없어요 / 친구가 울었던 날 / 애인이 다쳤던 날'의 쉬운 가사와 명료하고 확실히 와 닿는 멜로디 사이 선연히 김제형의 존재가 빛난다.


어디선가 뚝 던져진 듯 등장해 바람처럼 좋은 음반을 내놓고 사라졌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이 음반은 세상의 어둠과는 별개의 유쾌함을 담았다. '실패담', '남겨진 감정'과 같은 익숙한 발라드 구성이 간혹 진부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쩐지 앨범 안에서 노래들을 만났을 때 곡의 진부함은 오히려 익숙함과 친숙함으로 그리하여 솔직함으로 다가온다. 뉴 잭 스윙, 재즈, 포크 등 다양한 소스를 맛있게 우려냈다. 김제형, 그는 누구인가!


매거진의 이전글 샘 스미스 <Love Goe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