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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진 Nov 25. 2020

공중그늘 인터뷰

밴드를 통한 메시지, 무겁고도 가벼운.

“재밌게 놀아보자며 시작했는데…”라는 말로 운을 뗐지만 실상은 달랐다. 장난스러운 농담을 주고받고 밝은 웃음을 자주 보여줬으나 답변에는 늘 오랜 고민 끝에 정한 어떤 가치관들이 묻어 나왔다. 이들의 방향은 최종적으로 사회를 향한다. “만들어내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음악을 하는 과정 자체에도 가치가 있다. 앞으로도 미래에도 밴드를 통해 꾸준한 의미를 전달하고 싶다.”

단단한 포부만큼이나 그룹의 우애는 각별하다. 스무 살 무렵 만나 자주 가던 공간인 '공중캠프', '우리 동네 나무 그늘'의 이름을 따 2016년 '공중그늘'이란 그룹을 결성했다. 이후 2018년 EP < 공중그늘 >을 발매했고, 2019년에는 단독 콘서트를, 올해는 드디어 첫 정규 음반 < 연가 >를 내놨다. 이들의 음악에는 젊음의 치기가, 어린 날에 대한 향수가, 또 문학적인 가사가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적 진지함이 그득하다. 10월 한 달간 바쁘게 쇼케이스를 끝마친 이들을 만났다. 장오(보컬·기타), 해인(드럼), 성수(기타), 철민(베이스), 동수(신시사이저)와 함께한, 화기애애했던 인터뷰 현장을 공개한다.


▶좌측부터 성수(기타), 철민(베이스), 장오(보컬,기타), 해인(드럼), 동수(신시사이저)

2016년 결성 이후, 어느덧 4년 차 밴드가 됐다. 생각했던 방향대로 흘러가고 있나?

해인 : 처음 생각과는 굉장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웃음) 재밌게 놀아보자는 계획에 따라 뭉쳤던 건데 이제는 직업이 됐으니 책임감과 무게감이 다르다. 그래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동수 : 친구로 만나 밴드를 시작했다. 근데 요즘은 직장 동료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가끔 합주할 때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한강 가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제안을 한다. 매번 거절당하고 있다. 매정한 직장인들… (일동 웃음)


동수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다고 들었다. 다른 멤버들은 어떤가?

철민 : 어릴 때부터 다들 악기를 다뤘다. 해인은 사물놀이를 거쳐서 드럼을 배우다가 상경했고 장오도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기타를 쳤다.


성수 : 나는 어릴 때 노래를 불렀다. 노래 부르다가 춤추다가 랩도 했다. 기타는 취미로만 잡다가 20대 때 본격적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철민 : 나도 성수와 같이 랩하고 춤추고 놀았다. 그러다 고등학교 때부터 베이스를 쳤다.


작년에 첫 번째 단독 콘서트를 성공리에 끝냈고 올해에는 첫 정규 음반 < 연가 >(2020) 를 발매했다. 매년 밴드만의 성장을 이뤄내고 있는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동수 : 2018년 헬로루키 결선에서 마지막 발표할 때가 기억난다. 그해 상반기에 헬로루키로 선정됐고 그렇게 뽑힌 뮤지션들을 모아 연말에 올해의 헬로루키 경연을 연다. 최종 순위 3위 안에 못 들었다. 그때의 허탈감이란… (웃음) 결선 준비 기간에 손가락을 다쳤었다. 경연 직전까지 붕대를 감고 있다가 무대에 올랐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다.


철민 : 나도 헬로루키 결선 마지막 무대의 라이브가 떠오른다. 그렇게 큰 공연장에서 그렇게 많은 관객 앞에 선 게 처음이었다. 당시의 긴장감과 긴장감을 넘어선 아드레날린이 지금도 생생하다.


다른 멤버들은 어떤가?

해인 : 2017년도에 첫 데모 '파수꾼'을 업로드 했을 때를 뽑고 싶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반응을 주기도 했고 다들 좋다고 얘기해주니까 밴드를 계속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성수 : '공중파'라는 기획 공연을 오랜 시간 해왔다. 처음 공중파 공연을 끝내고 뒤풀이할 때가 기억난다. 2017년에 새소년, 회기동 단편선과 함께 했을 때인데 그때가 정말 재밌었다. 다 끝나고 노는 것밖에 안 남았을 때. (웃음)


얼마 전 발매한 정규 음반 < 연가 >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연가'를 제목으로 쓴 이유가 궁금하다.

동수 : 우리 노래가 사랑이라는 주제 아래서 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연인에게 불러준다는 뜻으로 '연가'를 타이틀로 썼다. 휴가를 쓸 때 '연가를 낸다'고 하기도 하고 잔치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연가'가 아닌가? 여러모로 재밌고 우리에게도 잘 맞는 이미지였다.


앨범 준비 기간은 얼마나 되나?

해인 : 음원 데모 수집부터 피지컬로 나오기까지 8개월쯤 걸렸다. 기존에 써둔 곡도 있었고 새로 쓴 곡도 많았는데 아무래도 정규 음반이니까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EP < 공중그늘 >(2018) 이후 첫 정규 음반이다. 준비하는 데 있어 각오나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었을 거 같다.

장오 : EP 땐 우리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다. 비슷한 느낌을 줄 만한 사운드를 추구했고 그래서 같은 맥락의 음악들이 많이 담겨 있기도 하다. 정규는 조금 더 다양하게 서로 다른 스타일의 곡들을 넣었다. 그런 부분에서 재밌기도 했고.


성수 : 멤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전 싱글 '타임머신'을 작업할 때 좀 풀어지는 감이 있었다. 그걸 보완했다. (웃음) 이번 정규 음반은 EP 때와는 달리 우리 작업실에서 녹음했는데, 그러다 보니 어떤 곡부터 믹싱하고 톤은 어떻게 잡을지보다 깊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나름 음악적 성장도 있어서 과거보다 속도감 있게 작업하기도 했다. 실험적이고 여러모로 풍부한 작품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전부터 멤버들 간의 합이 참 좋다고 느꼈다. 누구 하나 욕심내서 튀어나오지 않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철민 : 곡을 스케치할 때부터 어느 정도 다른 악기까지 생각한 상태에서 쓴다. 물론 결과물을 만들 땐 다른 멤버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이 과정에 있어서 최대한 곡 쓴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끔 늘 그 당사자의 의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성수 : 이번에는 특히 해인이 직접 믹싱을 해서 균형이 더 잘 잡혔다.


블라인드 테스트도 한다고 들었다.

해인 : 똑같은 연주가 있을 때 어떤 사운드를 쓸 것인가에 대해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누가 만든 것인지도 모르고 이 소스가 아날로그로 만든 건지 혹은 컴퓨터로 찍은 것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멤버들의 선호도를 보는 거다. (웃음) 가장 많은 사람이 손을 들어준 버전을 고르고 있다.


장필순과 함께한 '연가2'가 참 인상 깊었다. 어떻게 함께 하게 된 것인가?

해인 : 오래전부터 장필순 선생님의 목소리와 음악을 좋아했다. '연가2'를 장오가 작곡해왔고 내가 편곡하는 과정에서 '이건 장필순 선생님께서 불러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연락해보자'라고 멤버들과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안 되겠지 했는데 선생님께서 흔쾌히 참여해주셨다. 성공한 음악가가 된 것 같았다. (웃음)


장필순은 제주도에 거주 중인 것으로 아는데.

해인 : 장필순 선생님께서 제주도 스튜디오에서 직접 녹음하신 것을 메일로 보내주셨다. 그렇게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곡을 만들었다. 작업 전 서울에서 만나 뵙기도 했다. 우리 소개도 드리고 이 곡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많은 걸 배웠을 것 같다

해인 : 믹싱하는 입장에서 소스가 참 좋았다. 음악을 만드는 자세에 대해서도 느낀 점이 많았다. 커리어도 굉장하시고 우리보다 작업 경험도 많으신데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게 없었다. 언제나 '내가 좋다고 생각한 버전을 보낼 테니 의견을 말해 달라'는 식으로 접근하셨다. 물론 너무 좋아서 따로 말씀드릴 게 없었다. (웃음)


천진난만하다가도 금세 진지해졌다. “이렇게 놀 바에 생산적으로 놀자”며 그룹을 만들었다지만 공중그늘의 생산물은 늘 탄탄하다. 앨범 아트나 포스터 디자인, 뮤직비디오 등의 비주얼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MD를 제작함에 있어도 허투루 함이 없다. 평소 “전시회 등을 꼼꼼히 다니며 협업하면 좋을 아티스트를 체크한다”는 대답에선 밴드 특유의 열정이 느껴졌다.

                                                


형제인 장오와 해인은 포항 출신이라고 들었다. 서울에는 언제부터 살게 된 건가?

해인 : 음악을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10대 때부터 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엄마 나 서울 가서 1년만 인디 밴드 생활을 하고 오겠다'고 선언했다. (웃음) 이후로 쭉 서울에 머무르고 있다.


장오 :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해인이가 먼저 서울로 올라왔다. 해인과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교를 안 갔다. 다른 멤버들도 다 대안학교 출신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 짧게 짧게 살기도해서 나름 서울이 익숙한 곳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어떤가?

동수 : 스무 살 때 경남 양산에서 올라왔다. 양산이 신도시이긴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좀 외진 곳에서 살았다. 스무 살 때 큰 꿈을 가지고 서울로 온 건데 사실 군대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군대 가기 전에 서울이 어떤지 보고나 오자 해서 입대 3개월 전에 서울에 왔다. 그때 이 친구들을 만났다. 3개월 만에 엄청 많이 친해졌다. 왜 휴가 나오면 제일 친한 친구한테 신세를 지지 않나. 멤버들이 늘 그 역할을 해줬다. (웃음)


그럼 스무 살 때 모두 처음 만난 건가?

장오 : 철민과 성수는 10대 때 알았다. 학교 안 다니는 애들이랑 대안 학교에 있는 애들이랑 만나는 캠프 같은 게 있는데 거기서 만났다. 동수는 군대 가기 직전에 만났고.


성수 : (웃으며) 그래도 본격적으로 친해지게 된 건 스무 살 때였다.


밴드 결성이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잘 맞았던 걸까?

해인 : 좋은 가치관을 다 같이 공유한다기보다 비슷한 수준의 가치관 안에서 토론을 많이 한다. 마음껏 질책하기도 하고.


장오 : 자주 올바른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 과정에서 해인 말대로 질책도 서로 많이 한다. (웃음) 무엇보다 시간 남고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애들끼리 모인 감도 없지 않다. (일동 웃음)


성수 : 사실 처음에는 밴드를 안 하려고 했다. 동수는 밴드 이전부터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했고 해인, 철민은 세션으로 또 장오는 포크 스타일의 곡을 써왔다. 나는 당시 공중캠프에서 스태프 일을 했다. 음악이라고 해봤자 두리반 철거 반대 시위 집회에서 통기타 반주했던 정도? 물론 주변에 음악 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러다 어느 날 장오가 밴드를 하자는 거다. 그러면서 맥북으로 만든 곡을 하나 들려줬는데 장비가 많이 드는 음악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안 하겠다고 했었다. (웃음)


마음을 돌린 이유는 뭔가?

성수 : 내가 안 하면 안 할 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나 없이도 (밴드를) 할 것 같았다. 주변에서 기타도 주고 이펙터도 주는 등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합류하게 됐다.


해인 : 성수는 그렇게 느꼈어도 우리는 성수가 안 하면 안 하려고 했다. 성수가 밴드 참여를 고민할 때 1주일만 기다려봐라 하고 기존 곡을 다 버리고 노래를 새로 써서 들려줬다. 그때 쓴 곡이 첫 싱글인 '파수꾼'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이펙터를 많이 쓰고 있다. (웃음)


힘을 의도적으로 뺀 채 부르는 보컬 장오의 창법이 독특하다. 덜 마초적인 스타일로 부르는 목적이 있는 걸까?

철민 : 장오가 보컬을 연구하던 중 우리가 들었던 팀들이 피쉬만즈(Fishmans), 테임 임팔라(Tame Impala) 등이다. 남성 보컬임에도 목소리 자체에 하늘하늘한 느낌이 있었다. 소리 자체도 얇고.


해인 : 목소리가 얇고 굵으냐에 따라서 마초적이다 혹은 여성적이냐 남성적이냐를 나누건 아니다. 다만 강하고 굵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게 우리 팀의 성향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음악적으로 더 어울리는 보이스를 택했다고 봐주면 될 것 같다.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장오 : 실제로 곡마다 톤을 조금씩 다르게 가져가고 있다. '역'을 특히 다르게 불렀다. 조금 더 숨을 적게 섞어서 파워풀하고 시원시원하게 기차처럼 불렀다. '여행'도 성악같이 많이 쌓고 성가대 같은 웅장한 스타일의 보컬을 썼고.

                                                        


끝으로 어떤 밴드로 기억되기를 바라나.

장오 : 시대에 맞게 옳은 것들, 변화하는 것들을 추구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악 자체도 계속 변화하고 진보할 수 있는 밴드로 기억되고 싶다.


성수 : 나도 진보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 그게 음악을 듣는 사람들과 우리 음악을 들어주는 주변 사회와 그렇게 괴리되지 않게, 납득할 수 있는 그런 변화를 들려주는 밴드가 되면 좋지 않을까?


진보, 메시지 등 단어의 선택도 그렇고 음악 활동을 통해 어떤 사회적 의미를 만들어내려 한다는 인상이 든다.

장오 : 일단 우리가 음악을 하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진보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만들어내는 결과물뿐만 아니라 음악을 하는 과정 자체에도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밴드가 대중에게 보이는 부분이 굉장히 많지 않나. 지금은 우리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앞으로 미래에도 꾸준히 그런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최근에 자주 즐겨 듣는 곡이 있다면? (인스타그램 아이디 parxhill님의 질문)

해인 : NCT의 'Make a wish'를 자주 듣고 있다. 비트나 음악적인 효과도 재미있는데 후렴부에서 'I Can do this all day' 하며 끝을 늘려 부르는 게 좋았다. 아주 자신 있게 들렸다.


장오 : 평생 제일 좋아했던 노래는 루 리드의 'Perfect day'. (왜 좋으냐 물으니) 그냥 좋다. (웃음) 영화 < 트레인스포팅 >을 보고 처음 알게 된 곡인데 이후 살면서 가장 많이 들은 곡이다.


성수 : 여름휴가 때 태민의 '2 KIDS'를 많이 들었다. 뮤직비디오 속 안무도 직접 짰다고 한다. 모든 부분이 다 멋있었다.


동수 : 최근에 좋아하는 뮤지션은 안다영이다. 얼마 전에 낸 '잘 있어요?'를 잘 듣고 있다.


철민 :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음악을 들으며 사운드 고민을 한다. 'Rydeen', 'Tong Poo' 등을 유튜브에서 자주 듣고 있다. (웃음)


원문 : http://www.izm.co.kr/contentRead.asp?idx=30407&bigcateidx=11&subcateidx=&view_t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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