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진 May 20. 2020

체형의 역사

20대 여성의 자기 몸 인식

20대 여성의 자기 몸 인식


 우리는 자라면서부터 많은 것을 강요받는다. 그것은 드러난 울림일 수도 강제되지 않은 자연스런 억압일 수 있다. 그중 특히 남성과 여성, 그 이분법적인 나눔에서 기원하는 규정성은 삶의 많은 부분에 꼬리를 물며 우리를 따라 다닌다. 남자는 힘이 세야 한다,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 여자는 찬 데 앉으면 안 된다 등등 시작이 언젠지도 모를 많은 규범들이 개인의 탄생부터 인간의 삶에 달라붙는다. 


 여성의 삶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물론 비교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흔히 여성들이 겪고 있는 오늘 날의 가부장적 한계와 그들의 평일을 감싸고 있는 해야만 하는 그 어떤 것들의 현재를 좇을 것이다. 그녀들의 인식이 현재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그 끝을 따라 정리하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은 음식과의 전쟁으로부터 시작된다. 20대 중, 후반이라면 유치원 때 즈음 겪었던 IMF의 광풍이 역시나 우리 가족에게도 예사 없이 불어 닥쳤다. 우리 집은 휘청, 휘청, 휘청거리며 흔들렸다. 어릴 때 아버지의 기억은 거의 없고 그래서 난 늘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크지만 낡은(할아버지 때부터 살던 기와집) 방에서 하루하루를 곱씹었다. 외동딸이기에 유독 길게 다가온 외로움 버티기는 대부분 맛있는 음식 먹기를 통해 해결됐다. 골목길 앞 식당에 다니며 뒷문으로 고기며 쌀이며 김치 등을 수급(?) 해오던 엄마는 길기만 한 하루를 할 일 없이 쓸 어린 딸을 위해 늘 기름진 것들을 한 바구니씩 가져왔다. 나는 아기 새 마냥 그걸 받아먹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쯤 몸은 이미 통통하게 불어있었다.


 그렇게 식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사실 식과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시선과의 전쟁이었다. 당시 시장에 Best Club이란 작은 옷 가게에서 철마다 옷을 하나씩 사 입었는데 그때마다 어린 나는 마음에 상처를 가득 담아 집에 가고는 했다. 옷이 너무 작다, 바지가 너무 낀다, 옷에 태가 안 난다, 엉덩이가 너무 크다, 덩치가 남산만하다. 하나 뿐인 딸이 예쁘지 않게 자라는 모습이 안타까웠을 엄마가 내뱉은 많은 말들은 내게 잔인한 비수가 되어 꽂혔다. 중학생이 되니 교복은 또 왜 이리 작은 것인지. 주변 친구들이 짧게 치마를 줄이고 꽉 끼는 와이셔츠를 입을 때도 나는 그 예쁨을 쫓아가기보단 거리를 뒀다. 내 몸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어릴 때부터 누적되어 온 콤플렉스를 드러낸다는 것과 같았다. 나는 몸을 숨겼고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그게 내가 나를 지킨 방법이다.


 중학교 3학년 때 한창 유행하던 아이라이너를 사보긴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이 새빨간 틴트를 사서 입술에 찍어 바를 때도, 호일을 사서 파마를 할 때도, 얼굴이 허예지게 분을 찍어 바를 때도 나는 늘 거리를 유보했다. 엄마는 그게 다 꾸미고 살지 않은 나 때문이라 했지만 내가 꾸미지 않은 건 그런다고 해서 뚱뚱한 내가 그다지 예뻐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론 어차피 난 귀여웠기 때문이다. (하하하) 하지만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만은 여전해 불철주야 공부에 매진하던 고등학교 때는 친구 2명과 함께 다이어트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고 짧은 저녁시간에는 늘 운동장을 (뛰지 않고) 걸었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식이요법이었다. 


 아니 근데 이게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대학교에 가니 이제 갑자기 화장을 또 해야 한다는 거다. 살을 좀 뺏다 싶으니 다음은 화장이었다. 구두에 대한 압박도 만만찮았다. 실제로 선배들은 어떻게 뭐 기계가 해준 것 마냥 정석인 일명 ‘풀메’를 하고 구두를 신고 등교했다. 매일 매일 컬러풀한 예쁜 옷은 물론이고 늘 향기가 났다. 어중간하게 몇 번 따라 해보다 이내 마음을 접었다. 모든 게 너무 낯설었다. 하지만 그 무렵 메이크업에 소질이 없던 나는 긴 시간의 식이요법을 드디어 성공적으로 끝냈다. 한참 열풍이 불던 디톡스 쥬스를 강남에 가서 1주일 분을 18만원 정도에 구매했다. 디톡스가 무엇인가. 그냥 쥬스만 먹는 거다. 독기를 뺀다는 명분하에 모든 영양분을 빼앗기며 다이어트를 시작한 나는 친구의 후기를 듣고 복싱을 등록하기에 이른다. 두 개의 시너지가 맞아들었다. 격렬하게 팔을 털고 과일과 풀뿌리만 먹고 연명한 끝에 어린 시절부터 유지하던 귀여움이 배가됐다. 아 이제 됐구나, 화장은 못해도 나는 다른 내세울 매력을 찾았다.


 복귀해보면 내가 그때 그렇게 칼을 물고 살을 뺀 건 남자 동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다이어트 말 좀 그만해. 어차피 빼지도 못하면서” 묘하게 묻어있는 내 신체에 대한 비하의 말에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뒤이어 들린 또 한 문장. “많이 쪘으니 금방 빼지 않냐? 난 3-5kg은 금방 빠지던데” 분노가 치욕으로 뒤 바뀌었고 내 몸 하나 관리하지 못했던 나는 이내 부지런하지 못한 여자가, 자기 몸 하나 가꾸지 못하는 낙오자가 된 듯 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내 체형 만들기는 그렇게 남들의 시선 속에서 싹을 틔운다.


 내 다이어트 역사는 이렇게 반복된다. 그리고 2016년을 기점으로 벌어진 많은 여성 혐오 번죄들이 내 사고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놨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무언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원치 않는 치마는 입지 않는다. 머리는 짧은 게 편하니까 계속 짧게 자른다 등의 나름의 신조를 유지하지만 그건 내 몸무게가 50kg 초반이고 바지가 27을 넘지 않으며 속옷 위로 가슴살이 튀어 나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몸무게가 많이 나갔다면 그래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이상적이지 않았다면 나는 또 다시 식음전폐의 디톡스와 과일 식사를 시작했을 거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해야 한다. 브라자는 꼭 가슴에 동여 메야하고 경조사가 있을 땐 단정한 손톱 위에 오랜 시간을 공 들여 젤 네일을 하고 발목이 아플 지라도 다리가 길어 보이는 구두를 신고 여자는 안경보다 렌즈. 눈가에는 미세 플라스틱이 많이 들어있다는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를 눈썹을 진하게 입술을 빨갛게 해야만 한다. 이 기준 값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우리의 몸 인식 지형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지독하게 이어져온 다이어트와의 사생결단. 매달 많은 지출을 차지하는 화장품, 옷, 구두, 핸드백과 관련된 소비. 사회에서 경험한 이러저러한 조언들까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하다. 이제 정말 시작해야하는데 엄두가 안 나는 건 거쳐야할 너무 많은 정보들과 정리해야할 너무 많은 시선 때문이다. 그래도 다시 용기를 내서 글을 씁니다. 저와 한 시간 반을 기꺼이 함께해주실 분. 거기 계신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