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나~중에 사줄게"
어렸을 때 자주 듣던 말이다.
좁은 골목길,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올라야
겨우 다다를 수 있었던.
판자촌 우리 집.
넉넉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
갖고 싶은 건 왜 그리 많고
먹고 싶은 건 왜 그리 많았는지.
자식이 원하는걸
자식 품에 안겨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은 외면한 체
늘 보채기만 했었다.
'아 또 안 사줄 건가 보다.'
어린 시절의 난
'나중에'라는 말은 안 된다의
다른 말인 줄 알았다.
"게임은 무슨 게임이야?
지금은 공부하고 나중에 어른되서 해"
학창 시절 공부와 친하지 않았다.
버튼 몇 개에 내 맘대로 움직이고
현실과는 다르게 시간만 투자하면
점점 강해지는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다.
조금 더 자라 나는 성인이 되었고.
'딱 한판만...'이란 생각에 게임을 켰을때
"나중에 하라니까 또 게임질이야"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란 걸 알았다.
사회에 나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잘 있어, 나중에 밥이나 한 끼 먹자고~ 연락할게"
정말 친했고,
함께 울고 웃던 이들이었음에도
밥 한 끼 먹자고 연락 오는 일은 없었다.
밥 한 끼 얼마나 한다고.. 내가 사줄 수도 있었는데..
기다림에 지쳐
그리움에 이끌려
그들에게 연락했을 때
"어.. 야 요즘 너무 바쁘다 나중에 보자"
또 '나중에'였다.
세상에 지쳐갈 때쯤
술에 절어 하루하루 버텨갈떄
술잔을 채워주던 친구가 말했다.
"괜찮아, 나중에 다 잘될 거야."
그토록 힘 안나는 위로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나중에 언제..?
정확한 시간 좀 알려줘..."
나중에..
'나중에'라는 말처럼
사람에게 희망과 절망을
함께 주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길을 걸을 때도 목적지가 눈에 보이면
그 거리가 짧게 느껴지고
힘도 훨씬 덜 들게 마련이다.
'나중에'라는 말은
목적지가 있다고는 얘기하는데
어디에 있다고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버티라고
거의 다 왔다고
희망 고문만 할 뿐...
나중 : (명사)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그 끝을 알 수 없는 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를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한다.
흐른 시간 뒤에 찾아 올
'나중'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