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

by 도리

"이거 뭐야! 누가 그랬어!"


너희도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이 질문받고 당황해 본 적 있지 않아?

누가 그랬는지, 뭘 잘못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내가 입 밖으로 내 버리면 얼마나 혼나고 얼마나 힘들지 까지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마치 내가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기억 말야.


"김세찬이 야근시간에 뭐 하냐?"


'놀아요! 영화도 보고요. 막 게임도 해요.'


머릿속에선 이미 그동안의 김 과장 행적을 낱낱이 일러바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론 나오지 않았어.


"본인 업무하시고... 저도 도와주시고..."


아빠의 대답에 팀장님은 아빠를 살짝 훑어보는가 싶더니

다시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지.


"하아... 너 요즘 매일 야근하지 않았나?"

"네."


"세찬이도 같이. 맞지?"

"네.."


"그런데 네가 며칠 만에 만들걸 3주, 거의 한 달 동안 못해왔다?

이게 말이 되냐? 너라면 믿겠냐?"

"..."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내가 잘못한 게 없음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손을 뒤로 모아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있는 아빠를 쳐다보던

팀장님은 여러 서류들로 조금은 지저분한 책상을 뒤적거리더니

a4용지를 여러 장 묶어놓은 듯한 서류를 아빠 앞으로 휙 던졌어.


"거기 체크해 뒀으니까 세찬이 없는 동안 거기까지만...

안되면 되는데 까지라도 해봐. 이번주말에 시연인데

되는 게 없어. 아나 세찬이 이 새끼를 진짜..."


다시 받아 든 프로젝트 기획서. 그런데 이걸 기쁘다고 해야 하나?

다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게 아닌 임시로 도와주는 입장이

되어버렸으니 말야.


'하아.. 내가 그렇지 뭐.. 기회는 무슨..'


기획서를 넘기고 흡연실로 향하는 팀장님 뒤를 나도 한대 피고

시작할까 싶어 따라가다 괜히 또 김 과장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실까 싶어 그냥 자리로 돌아가 앉았어.


그리곤 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지. 엄청 안 받더라고.

5분에 한 번씩 전화를 걸어 8번째인가 됐을때 탈칵 소리가

나며 전화를 받더라고.


"뭐야? 전쟁 났냐?"

"네? 네?"


전화를 받자마자 심드렁한 목소리로 묻는 김 과장.

듣도 보도 못한 전화받는 방식에 당황해 하자 김 과장은

짜증 나는 듯한 말투로 말을 건넸어


"무슨 휴가자한테 전화를 이렇게 해? 어? 도리도리!

일 똑바로 안 해? 무슨 일인데?"


'너 큰일 났어. 팀장님이 너 야근시간에 뭐 하냐고 묻던데?'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솔직히 어떤 후폭풍이 몰려올지,

어떤 불편한 상황이 전개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지.


"아.. 저.. 과장님 컴퓨터 좀 써도 되겠습니까?"

"내 컴퓨터? 왜? 내 컴퓨터가 피시방이냐?"


"아... 과장님이 하고 계신 프로젝트 이번에 시연하신다는데

살짝 안 된 부분이 있다고 저라도 할 수 있음 해보라고 팀장님이

말씀하셔서요."

"..."


뭔가 생각하는 듯 잠시 조용해진 김 과장.

상황은 알리되 자세하지 않게, 그리고 서로 기분 안 나쁘게.

그래 중간 역할만 하자란 생각으로 얼버무렸지만

혹시라도 김 과장이 눈치채고 괜히 나한테 화내지 않을까

두려운 맘에 어느새 침은 마르고,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어.


"야이! 도리도리!"

"넵!"


갑자기 소리 지르는 김 과장.

거짓말하는 게 티 났나 싶어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대답하는 날

주위사람들이 뭐야? 싶은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거의 차렷자세로

몸은 딱딱하게 굳어 긴장한 체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김 과장

목소리에 온신경을 곤두세웠어.


"니가 보면 알아? 하... 내가 없으니 회사가 안 돌아가네.

써~ 써~ 거기 바탕화면에 보면 01 작업실 폴더에 있어."

"아 네 감사합니다."


"형은 좀 있다 회에 소주 먹을 건데. 크큭 고생해라~ 선물사다 줘?"

"마음만.. 받겠습니다.. 쉬세요.."


또 장난치려고 시동을 거는 것 같은 김 과장 말에 부랴부랴

전화를 끊어버렸어.


'이거.. 내가 준 그대로네..'


김 과장 자리에서 복사해 온 파일을 열어봤을 때, 아빠는 정말

한숨부터 흘러나왔어. 프로젝트에서 빠지면서 김 과장에게

전달해 준 상태 그대로 진짜 아무것도 추가되거나 수정된

부분이 없었거든.


'대체 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이 정도면 진짜 월급 강도 아니냐고..'


소스파악이고 뭐고 필요가 없었어. 기획서를 보며

코딩을 하기 시작했지. 오전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


맞아, 그날은 점심도 먹지 않았어.

결과를 좋아하는 팀장님에게 어떻게든 빠르게 작은 거라도

결과를 보여줘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거든.


"팀장님 이 부분 해결됐습니다."

"여기 이 부분은 이런 방식으로 대체하는 게 사용자가.."

"여기 메뉴는 사용법 알기 쉽게 마우스 오버되면 도움말 보이게.."

"이 부분은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설명 부탁드려도..."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팀장님을 찾아가 보여드리고, 상의하고,

피드백을 받았지. 너무 자주 찾아가는 게 아닌가 싶어

조금은 조심스러웠지만 팀장님의 얼굴은 점점 웃음기가

가득해지고 있었어.


"팀장님 이 부분 다 구현됐습니다."

"어? 뭐? 야~ 도리야아~ 그걸 벌써 다하면 어떡해~

네 자리로 가서 한번 보자~"


오후 3시쯤. 기능 하나를 구현하고 팀장님을 찾아가자

연인에게 애교 부리는 듯한 콧 목소리를 내며 프로그램을 돌려보던

팀장님은 감탄을 금치 못했어.


"햐.. 미쳤네.."

"헤헤.. 아닙니다.."


"아니야 너 진짜 미쳤어.. 세찬이가 못하던걸 하루 만에..

너 반나절은 걸렸냐?"

"그건.. 과장님이 바쁘셔서..."


"세찬이 언제 돌아오냐?"

"다음 주 화요일로 알고 있습니다."


아빠의 대답에 또 살짝 눈을 감고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팀장님은 아빠 등을 탁 치며 말을 이었어.


"다음 주 수요일 시간 비워놔 세찬이하고 해서 술 한잔 하자"


그때 정말 기뻤지.. 생각해 봐 사회초년생에 신입티 벗지도 못한

일개 사원에게 간부가 술을 먹제. 그게 뭐 어때서? 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마치 영의정이 포졸한테 소주 한잔하면서

긴히 할애기가 있다고 하는 것 마냥 그 당시 아빠에겐

인정받았다는 기쁨이었고, 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라는

희망이었으니 말야.


"너 왜 자꾸 저 양반 달고 오냐? 부담되게"


팀장님이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경태형은 옆에서 귓속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어.


"아.. 의논드릴 게 있어서.."

"그래?.."


아빠의 너무 교과서적인 대답에 경태형은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며

혼잣말 같이 중얼거렸지.


"그나저나.. 세찬이 형은 돌아오면 클났네..

허허 한바탕 난리가 나겠어..."


긴장이 풀렸는지 잠깐 의자에 축 쳐져있는데 잠이 오더라구.

계속되는 야근에 더 이상 버틸 체력이 없는지 눈도 무거워지고

정신도 멍해지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탕비실로 향했어.

커피라도 마실까 싶어 믹스커피 스틱을 들어 올리는데


'커피는 원두가 맛있다'


갑자기 김 과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거야.


'뭐야.. 이 회사 망령이야? 지박령이야? 아.. 아직 안 죽었구나...'


컵을 커피머신에 올려놓고 아메리카노를 선택했어.

솔직히 그 당시 아빠는 달달한 커피만 좋아했었는데

한번 마셔보고 싶었어. 얼마나 맛있는지.


"어? 너 믹스파 라며? 웬일로 원두?"

"너, 나 스토킹 하냐?"


총총걸음으로 탕비실로 들어온 정현이.

핫초코를 집어 들며 의아하다는 눈빛을 하며 아빠에게 묻고 있었지.


"아메리카노? 그거 싸구려라 맛없어. 믹스 먹어 믹스.

아메리카노는 내가 너한테 조공하는 저 앞에서 파는 게 제일 맛있지"

"김 과장이 커피는 원두가 맛있다던데?"


"아.. 김 과장.. 가까이하지 마.. 옮을라.."


벌레를 본 것 마냥 눈썹을 치켜올리며 인상을 쓰는 정현이.

같은 부서도 아닌데 저렇게 까지 싫을까 싶어 물어봤어.


"왜? 김 과장님 별로야?"


아빠의 질문에 정현이는 고개를 탕비실 밖으로 한번 쓱 빼고

두리번 두리번 하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 회사에 김 과장 좋아하는 사람 없어... 척하는 거지 다들.."


남들 일할 때 놀고, 남들 놀떄 놀고, 본인만 재밌는

장난치기 좋아하고, 남들 기분신경 안 쓰는.

아빠가 봐온 김 과장은 그런 사람이었기에 정현이의 말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어.


물을 다 받았는지 티스푼으로 컵을 살살 젓고 있는 정현이는

다시 아빠를 쳐다보며 물었어.


"그래서? 오늘도 야근?"


정현이의 질문에 아빠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지.


"으그그.. 아니 오늘은 집에 가서 쉴래. 너무 피곤해"


야근을 안 할 거라는 말에 정현이는 환한 미소와 함께

눈빛이 밝아지며 핫초코를 젓고 있던 손을 멈춘 체 물었어.


"오! 잘됐다. 오늘 예서언니.. 아니 민차장님이랑 술 먹기로 했는데

친구! 너도 가자!"

"아니.. 난 집에 가서 쉬.."


"오케이! 일단 이거 받아. 차장님한텐 내가 얘기해 놓을게.

장소는 메신저로~"

"아니.. 야!"


자기가 먹으려고 타던 핫초코가 담긴 컵을 스푼이 담긴 채로

나에게 넘기고는 신나서 탕비실을 나서는 정현이


"요이요이 단무지새끼. 이제 뛰어다니네? 사무실이 운동장이야?

너는 어떻게 갈수록 애가 어려지냐?"


얼마 못 가 팀장님께 귀를 잡힌 채로 끌려갔지만 말야.

손에 아메리카노와 핫초코. 순간 음료 부자가 돼버린 나는

아메리카노부터 한 모금 마셔봤어.


'으아.. 쓰다..'


도대체 이런 게 왜 맛있다고 하는 건지, 김 과장 혀는 제기능을

하고 있는 건지 의심을 품으면서 정현이의 핫초코도 마셔봤어.


'으아.. 달다.. 도대체 몇 봉지를 탄 거야?

맛이 극단적이기는 김 과장 성격 같네 그냥..'


혼자 투덜거리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지.

그동안 너무 피곤했던 걸까? 아메리카노를 보리차처럼 들이키듯이

다 마셨음에도 졸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 그대로 잠들었던 것 같아.


퇴근시간 10분 전.


4시 좀 지난 시간부터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거의 2시간은

잠들었던 것 같아.


"오늘도 야근하냐? 아주 숙면하던데?"

"스읍.. 아니요.. 오늘은 집에 가려고요."


"그랴~ 일부러 안 깨웠어 요즘 너 고생하는 거 같아서.

쉬면서 해. 열심히 해봐야 월급 똑같이 주는데 뭐 하러 개같이 일하냐?"


앉은 상태에서 키보드에 손을 올린 채로 고개만 까딱거리며 자고 있는

아빠가 안쓰러웠었나 봐. 깨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입사한 지 1년도

안된 애가 오죽하면 저러겠냐는 생각에 경태형은 일부러

깨우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니네 집 근처에서 먹자. 퇴근시간 전에 맛집 추천 부탁해./


정현이의 쪽지를 보고 시계를 봤더니 퇴근시간 7분 전.

그 시간에 맛집을 추천하라니... 정말 너무하단 생각이 들면서도

혹시 대리비 때문에 걱정할까 봐 장소를 집 근처로 배려한 건 아닐까?

아니, 정현이라면 충분히 그랬을거야. 라는 생각에 학교 다니면서

지금까지 가봤던 음식점들을 머릿속에 정리하기 시작했어.


/감자탕 어때?/


결국 선택한 게 도희랑 갔던 감자탕 집이었지만 말이지.


"왔어? ... 갈수록 여자분이 바뀌네..? 거기다 오늘은 둘? 인기 좋아~"


농담을 던지며 반갑게 맞아주는 사장님의 안내로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지.


"이야~ 넓네? 피크 때 알바들 고생 많겠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던 정현이는 식당에 풍기는 맛있는 냄새,

인테리어, 메뉴 이런 것보다는 식당 규모가 먼저 눈에 들어왔나 봐

식당에 관한 첫 소감이 평범하진 않았어.


"여기 뭐가 맛있니?"

"아.. 네.. 감자탕 집이라 아무래도 감자탕이... 같이 드시는 거 별로면

해장국도 괜찮아요.."


테이블에 감자탕이 오르고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데

점심을 못 먹어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멈추질 않는 거야


'헤에.. 맛있겠다...'


앞에 앉은 민차장과 정현이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고 떠들어

대는데 아빠는 침만 삼키며 끓고 있는 감자탕만 바라보고 있었어.


"맞아 언니, 저번에 지하상가에서 샀는데 이거 봐 이거!

이쁘지 않아?"

"어? 정말~ 어디서 샀어? 우리 예진이 해줘야겠다."


'귀걸이던 코걸이던 애는 언제 익는 거야?'


얼마 전에 샀다며 귀걸이 자랑을 하고 있는 정현이는 전혀 아빠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이쯤 되면 다 익었는데? 더 끓으면 졸여져서 맛없는데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런 아빠가 느껴졌던 걸까?

한번 힐끔 아빠를 쳐다본 민차장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살짝

떠먹어보더니


"와.. 맛있다! 정현아 먹어봤어? 회사 앞에 있는 거랑 확실히 다른데?"


민차장에 말에 국물 맛을 보는 정현이. 눈이 커지면서 뭔가 리액션을

하려고 하는 그때. 아빠는 손을 높이 들고 사장님을 향해 소리쳤어.


"사장니임! 여기 공깃밥 하나요!"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가게 안을 울리고, 사장님은 곧바로

공깃밥을 들고 와 아빠에게 건네었지.


"왜 화가 났어? 내가 못 들었나?"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몇 번 얘기했는데 못 들어서 화가 나

크게 소리 질렀나 하고 오해하는 사장님이었어.


"너 감자탕 먹을 줄 모르는구나? 처음엔 고기하고 국물 떠먹다가

마지막에 볶음밥. 그게 진리인데!"


알지.. 볶음밥 맛있는 거. 하지만 하루 종일 굶은 아빠한테

고기하고 국물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은 존재하지 않았어.


"너 점심 안 먹었니? 무슨 몇 끼 굶은 사람처럼..."


술 마시러 모였다는 취지는 무색하게 공깃밥을 받자마자

국물을 덜어 밥을 흡입하고 있는 아빠를 쳐다보며 민차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어.


"아.. 제가 아침부터 굶어서요..."

"왜 밥도 안 먹고 일해?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너 그러다 골병 나면

나중에 애기도 못 안아준다? 와이프가 알면 슬퍼하겠다."


"안 먹은 게 아니라 못 먹은 거지.. 시간이 없어서"


자기 일처럼 걱정해 주는 정현이. 이 회사 들어와서 제일 잘한 건

정현이와 친구가 된 게 아닐까 싶은 순간이었어.

물론 그마저도 정현이가 먼저 다가왔으니 가능했던 일 이긴 하지만 말야.


"시간이 없어? 김 과장 그 인간 때문에?"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민차장은 소주를 따라주기 위해

소주병을 내밀었고, 아빠는 황급히 숟가락을 내려놓고 소주잔을

내밀었지.


"아! 감사합니다. 아니요 제가 그냥 일머리가 없어서..."

"언니 나도! ... 아닌데? 너 일머리 있는 것 같던데?

우리 팀장님이 너 되게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정현이에게도 소주를 따라주고 본인잔을 채우려는 민차장.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두 손으로 소주병을 뺏듯이 가로채며

민차장에게 소주를 따라주고는 헤헤 웃고 있었어.


"웃지 마! 당하고도 말도 못 하는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래봐야 아무도 너한테 잘한다고 안 해."


'아.. 이 술자리가 나 혼내려고 모인 거구나..'


민차장에 다그침에 무표정으로 바꾸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어.

순간 정적이 흐르고, 어두워진 분위기가 신경 쓰였을까?


"아~ 이러지 말고 짠하자~

사이좋게 맛난 거 먹으러 와서 왜 그래 언니?"


정현이의 주도하에 건배를 하고, 첫 소주를 들이킨 뒤 입맛이 없어진 아빠는

국자를 들어 끓고 있는 감자탕 속 뼈다귀 위에 국물만 뿌려대고 있었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건배하고 마시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도저히 이분위기는 못 참겠는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뭔가 말하려고 하는 정현이와 거의 동시에

민차장이 입을 떼었어.


"언니! 어제 뉴스 봤..."

"미안, 널 보면 자꾸 생각 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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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그럼 나보다 어리네?

근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너 나 몰라?"


아빠가 흔하게 생긴 얼굴은 아니라서 혹시 아는 선배나

친구의 누나 일까 싶어 다시 한번 찬찬히 쳐다봤어.


"잘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날듯 말듯한단 표정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여직원의 모습이 조금, 아니 많이 부담스럽더라고.


"저... 와이프가 있는데 말입니다..."


-풉!-


우리 모습을 엿보고 있었는지 아빠의 말에

주변테이블은 웃음 참는 소리로 가득했고, 그 여직원은

뭔가 생각 낫는지 눈이 커지고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금세 사라지곤 실눈을 뜨고 아빠를 바라봤어.


"나도 있어"

"아! 결혼하셨을 것 같았습니다."


"남편 말고 딸이 있어"


이해 못 할 말과 함께 자신의 잔을 채우고

입에다 신경질적으로 툭 털어버리곤 잘 들리지 않는 한숨을

안주로 삼키는 것 같았어.


"너 재미없다."


---- 시즌1 11화. 첫 회식, 그리고(https://brunch.co.kr/@ddolly/42) ----


생각 나는 사람이라.. 그래 민차장을 처음 만났을 때도

우리 어디서 본 적 없냐고 물었었었어.


그 당시에는 그냥 건넬 말이 없어서, 그리고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했었는데 민차장은 그게 아니었었나 봐.


"아 그렇습니까? 제가 또 흔하지 않은 얼굴인데..."


분위기를 살리고자 살짝 웃으며 농담을 건네는데.

그때 봤어. 분명 살아 있는데 죽어 있는 눈.

눈을 뜨고 있는데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은

생기 없는 눈. 민차장의 눈은 그런 상태로 꽉 채워진 소주잔을

향해 있었어.


뭔가 생각에 크게 잠긴 듯.

이번엔 건배 없이 그리고 조용히, 가득 차 손위로 살짝 흘러내리는

소주잔을 입에다 털어 넣고는 한숨을 쉬는 민차장이었지.


"있었어.. 우리 딸.. 예진이 아빠.."

"아~ 신랑분이요? 근데 왜?.. 돌아가셨..."


혹시 실례되지는 않을까. 과거형으로 말하는 민차장에 말에

설마 싶어 뒷말을 흐리면서 정현이를 쳐다보는데

말없이 고개를 젓는 게 그만 물어보라는 것 같더라고.

잠시 입술을 깨물던 민차장은 다시 말을 이었어.


"아니, 내 남편 말고! 예진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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