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을 조용히 내려놓은 민차장은
아직은 친하지도, 솔직히 말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아빠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은지 머뭇머뭇 거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고 있었어.
"아빠.. 그래 아빠지. 남편은 아니었어. 남자친구라면 모를까.."
더 쉽게, 더 풀어서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
아. 아픈 과거가 있구나.
그리고는 혼자 추측하기 시작했어.
'미혼모? 그렇게 안 보이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당시 우리 사회는 미혼모라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다시 말하면 좋지 않게 보는 시선이 강했던 시대였어.
행실이 올바르지 않다, 여자가 문제다, 몸을 막 굴리는 여자다.
그런데 웃기지 않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그러다 생긴 아기를
책임지지 않고 떠난 남자는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사는지 모르는데
책임지겠다고, 이 아이만은 버릴 수 없다고 그렇게 삶을 포기해 가면서
끝까지 아이를 지킨 여자는 그런 수모와 욕을 먹으면서 차가운 시선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는 게 말야.
"맞아 나 미혼모야."
"언니..."
단호하게 말하는 민차장얼굴에는 옅게 미소가 지어졌지만
그 미소가 쓸쓸함과 슬픈 기억을 가리기엔 부족했던 것 같아.
옆자리에 앉은 정현이가 민차장의 손을 꼭 잡아주며 안쓰런 눈빛으로
위로를 대신하고 있을 때. 아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
아니,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조차 몰랐다는 게 맞겠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난 민차장은 한 가지 꿈이 있었데.
대학에 가면 집을 나와 자취를 하면서 집에 도움을 안 받고
스스로 성공하는 것.
물론 집안의 반대는 심했지만 결국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한
민차장은 설레고 행복한 새로운 시작을 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얼른 성공해서 그렇게 출가를 반대하던 가족들에게
나 이만큼 혼자 컸다고 자랑하는 게 목표였던 민차장은
신입생환영회도, MT도, 체육대회도, 축제마저 즐기지 않고
공부에만 목을 맸었던 거야.
'공부만 할 거면 뭐 하러 대학을 왔냐? 학원 다니지.
이게 다 사회생활인 거 몰라?'
수많은 질책과 질타에도 모질게 공부만 하던 민차장.
동기와 주변사람들이 하나둘 씩 떠나 점점 고립되던 민차장이 점점
외로워질 때쯤. 그 남자가 그녀 삶 안으로 들어온 거지.
"나..? 영진이.. 최영진 훗.. 그래 그 사람이름이 최영진이었어
핸드폰에 그 번호를 저장만 안 했더라도.. 그날 그냥 무시만 했었더라도.."
영진이란 사람은 되게 순진하고 소심한 사람이었어.
자기 의견조차 제대로 말도 못하고, 어딘가 어수룩해 보이는.
그런데 또 배려는 있는... 작고 어설픈 배려에, 그리고 왠지 내가
지켜줘야 할 것 같은 남자의 연약함에
민차장은 그렇게 그 남자에게 빠져들어간 거지.
술을 먹고 집으로 들어가던 그날밤.
자기보다 더 술에 취해 헤매고 있던 그 남자를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그날. 어설프고 초라한, 하지만 생전 처음 받아본 고백에
민차장은 이게 사랑이구나 싶었데.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이게 사랑인가? 다들 이렇게 시작하나? 싶었던 거지.
"해본 적이 없으니까... 사랑이란 게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어떤 게 사랑인지도 아무도 알려준 적이 없으니까...
그게 사랑인 줄 알았지 뭐..."
그렇게 시작된 연애. 소심하고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그 남자 때문이었을까?
항상 표현하고 챙겨주는 건 민차장 몫이었어.
"지갑은 왜 그렇게 흘리고 다니는지.. 가끔 옷도 뒤집어 입고,
또 어디 가서 억울한 게 있어도 아무 말 못 하는 거 있지?
맨날 싸우는 건 나였어. 엄마. 그래 남들이 보면
엄마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육아 같은 연애 속에서도 민차장은 행복했던 거야.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 남자 대신 다른 사람과 말싸움을 하면서도 혹여나 이기면 같이 웃으며
즐거워하고, 없는 돈 쪼개 가던 여행도, 함께 했던 둘만의 밤도
그냥 함께였기에 외롭지 않았고, 그 충족감이 민차장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왔던 걸까?
"그러다 결국 우리 예진이를 임신하게 됐어. 집에 말하러 가던 날 생각나네.."
임신을 하고 집으로 알리러 가기로 한날. 같이 가기로 했던 그 남자는
연락이 되지 않았어. 아침에 받은 지금 출발한다는 문자 외에는 말야.
결국 혼자 집으로 가게 된 민차장은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어.
"가족이니까.. 그래도 가족이니까 날 위로해 주겠지.
같이 방법을 찾아보려고 노력이라도.. 아니 노력하는 척이라도
해주겠지..."
하지만 현실은 달랐어. 노발대발하시는 아버지와 벌레 보듯 쳐다보는
오빠, 내 이럴 줄 알았다 라며 고개를 젓는 언니까지. 그나마 다행인 걸까?
그런 가족들을 말리는 어머니였지만 순간순간 새어 나오는 한숨은
숨기지 못하셨나 봐.
제일 위로받고 싶었던 그날. 마음 놓고 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곳에서
내편일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조차 민차장은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거야.
쫓겨나듯이 집에서 나온 민차장.
울고 싶은데, 하소연하고 싶은데, 아무 데도 할 곳이 없었어.
수십 번도 더 그 남자에게 전화했지만 역시나 받지 않았던 거야.
"웃긴 게 뭔지 아니? 난 그 순간까지도 영진이가 오다가 사고라도 당했나
싶어 걱정하고 있었어. 멍청하게도 말이지..."
늦은 밤. 불을 키면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이. 창가에 보이는 자기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무서울 것 같아 불도 켜지 안은채 자취방 구석에
다리를 모으고 벽에 기대앉아 있었던 거야. 그때 벨이 울리고
누가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이건 그 남자다 싶었나 봐
정신없이 뛰어가 문을 열었는데 거기엔 민차장이 다니고 있는 학과 사무실
조교오빠가 서있더래.
"영진이가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하더라. 내 전화는 그렇게 안 받더니..."
조교를 보는 순간 억눌렀던, 참고 참았던 슬픔이 드디어 터져버린 거야.
한참을 울던 민차장. 그런 민차장에게 조교는 충격적인 말을 전하고 있었어.
"군대 간다더라고.. 아침에 군휴학 신청서 작성하고 갔다고.."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순간이었어. 적어도 민차장에게는 말이지.
"그래서... 충격 때문에 못 왔구나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럴 수 있지...
그때도 난 영진이를 걱정하고 있었어. 그 여린 애가 군대 갈 생각에
얼마나 힘들까..."
그 후로 일주일정도 서로 연락이 없었던 거야.
혹시나 마음 추스르는데 짐이 될까 두려워
민차장도 일부러 연락을 안 했던 거지. 마음 추스르면 연락이 오겠지 하면서 말야.
그 순간에도 민차장은 그 남자 걱정만 하고 있었던 거야.
자기 자신은 얼마나 무너져가는지 모른 체 말이지.
일주일 조금 지났을 때라고 했나?
그 남자는 민차장방에 찾아왔어.
그날, 그 둘은 눈물로 그동안의 설움, 두려움을 서로 씻어주기라도 하듯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던 거야.
"제대 후에 결혼하자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 말을 믿었어. 그래 어차피 집에서도 쫓겨 낫으니까
우리 둘이서 뭘 못하겠어?라는 생각에.. 2년 정도야 뭐 기다리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둘만의 미래를 그리면서 다시 전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점점 입대날은 다가온 거지.
입대전날 조촐한 파티 후.
"그 개새끼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상을 쾅 치는 민차장.
부들거리는 손, 떨리는 살짝 깨문 입술,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물이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대신 보여주고 있었어.
"기다리지 말라고, 처음부터 그냥 갖고 놀고 버리려 했던 거라고,
애는 그냥 지우면 되지 않냐고..."
"언니..."
"응 정현이~ 괜찮아~"
민차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되려 자기가 울고 있는 정현이를
위로하고 있는 민차장. 이런 아이러니 속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더라고.
"아.. 그래서 그때부터 혼자.."
"쉽진 않았지 그래 팀장님 아니었으면.. 아니 그보다
너도 속도위반이라던데 맞니?"
"하아..."
경태형.. 내가 딱 한번, 우리 회사에서 딱 한번 그 인간한테만
얘기했었는데 이게 어떻게 민차장 귀에까지 들어갔나 싶어
한숨을 팍 쉬엇어.
"네.. 그런데 어떻게 아셨어요?"
/ 응? 풉! 하하하! /
어떻게 알았냐는 내 말에 서로 쳐다보곤 웃음이 터진 민차장과 정현이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분위기는 어디로 갔는지 다시 화기애애해진
느낌이었지.
"경태씨 한테 들었어. 너 몰랐구나? 경태씨 우리 회사 게시판인데.
경태씨 귀에 들어가면 다음날 전 직원이 다 알아. 또 다른 거 알려 준거 없니?
어차피 알게 될 거 여기서 다애기하고 가"
"하아.. 그 형 진짜.."
"그래도 너는 책임을 졌잖아. 쉽지 않은 건가 보더라고 그거.."
"그치 그치! 쉽지 않은 걸 해낸. 내 친구가 이 정도라고!"
졸지에 칭찬을 받고 있는 나. 이야기가 왜 이렇게 되나 싶었지만.
어쩌면 민차장은 그 남자와 비슷한 모습의 내가, 그 남자와는
다른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건 아닐까?
영진이도 이랬었으면.. 하면서 말야.
"자자~ 우리 짠하자 응? 도리야~ 언니!
우리 인생이 짠내 나고 짠해서 짠을 안 할 수 없다! 짠!"
"너 요즘 그거 자주 하네? 너무 귀엽잖아."
"왜? 멋있지 않아? 요즘 내가 밀고 있는 건배사라구"
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하는 정현이가 귀여운지 볼을 꼬집으며
소주잔을 갖다 대는 민차장. 그리고 황급히 잔을 들어 잔을 부딪히는 나.
그날 밤은 그렇게 즐겁고 아프게 흘러가고 있었어.
"좋은 아침? 잘 들어갔니?"
다음날.
그런 날 있잖아? 평소보다 훨씬 적은 양을 마셨는데도 다음날 숙취가
확 올라오는 날.
2차 가야 된다고 죽기 전에 꼭 불러야 될 노래 리스트가 있다며
생떼를 써대는 정현이를 어르고 달래 집으로 보내고 겨우 마친
전날 술자리임에도 그날은 왜 그렇게 속이 쓰리고 힘이 빠지는지
좀비처럼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언제 왔는지 뒤에서 민차장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아.. 차장님.. 오셨어요.."
"뭐야~ 어제 그거 먹고 이러는 거니? 술 잘 마시는 줄 알았더니"
"아.. 제가 어제 공복이어서..."
"이거 마실래? 정현이 줄려고 편의점 갔는데 원플러스 원이더라. 놓고 올까 하다가
가져오길 잘했네."
숙취해소제를 넘겨주는 민차장의 얼굴은 마치 어제 일은 꿈인 듯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어.
단지 달라진 게 있다면. 조금은 친해진 듯한 말투와 분위기?
"어제 또 술 펐냐? 피곤해서 쉬러 간다더니?
이건 또 뭐야? 숙취해소제가 무슨 에너지음료도 아니고"
사무실을 들어가려 문을 여는데 담배를 피러 가는 건지
마침 경태형이 나오더니 손에 든 숙취해소제를 가리키며 한마디 하는 거야
어제 일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어.
"게시판..."
내 목소리가 들린 걸까? 경태형은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휙 돌아보며
큰 소리로 묻더라구.
"뭐.. 뭐? 너 지금 형한테 개시X이라고 한 거냐?"
"아니요.. 게시판 음.. 당직근무 편성표가..."
"아닌데 이 새끼 분명 나한테 욕했는데.. 너 이 새끼 솔직히 말해봐 욕했잖아!"
목을 팔로 감싸며 캐묻는 경태형. 웃음으로 마무리 됐지만 끝내 찝찝해 보이는
경태형이었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솔직히 욕한 게 맞기는 했으니 말야.
아니 사실을 얘기한 거니까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더 맞았으려냐?
"도리야!"
"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쩌렁쩌렁한 팀장님의 목소리가 들렸어.
자동반사처럼 대답을 하고 팀장님 자리로 뛰어갔지.
모니터를 보며 마우스를 만지작 거리는 팀장님 얼굴은
왠지 화가 많이나 보였어.
"야! 이거 어떻게 짠 거야! 이거 에러가 왜 이래? 다됐다며!"
"아.. 확인해보겠.."
"시연이 내일모렌데. 생각이 있는 거냐?
이 프로젝트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어?"
"죄.. 죄송.."
"죄송이고 나발이고 빨리 가서 확인해 봐 아우 씨X 되는 게 없어!
아 뭐 해? 빨리 가봐!"
"네..."
어이가 없었어. 프로젝트에서 빼버릴 땐 언제고 에러 하나에 불같이
화내는 모습에 말이야. 아니 엎어질 뻔한 시연회에서
내가 이 정도 해놨으면 칭찬 폭격을 해도 모자란 거 아냐?
핑계 같지만 사실이 그래. 개발자가 모든 에러를 알 순 없어.
기획서에 나와있는 대로 기능을 만들고 그 기능에 대해서만 테스트를
하는 게 보통이거든. 사용자마다 다른 환경, 다른 습관, 그 외에 다른
예외적인 상황을 모두 염두해 놓고 프로그램을 짜는 건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지. 테스터들을 두는 것도 그 이유 이기도 하고 말야.
"하아.. 애는 또 뭐가 문제냐.."
에러를 찾기 위해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돌렸을까?
디버깅을 찍어봤더니 이상한 점을 발견한 거야.
"어? 왜 false 지?"
누가 봐도 아니 아무리 계산해도 이 조건식에서는 true 가 떨어져야 맞는데
디버깅에서는 false로 떨어져서 다음 조건 문에 진입조차 못하고 있었어.
"왜? 뭐가 안 되냐? 니 숨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된다 형이"
억울함과 화남으로 인해 숨소리가 거칠었던 걸까?
씩씩대며 작업을 하고 있던 아빠의 모니터를 슥 쳐다보며 경태형이
묻고 있었어.
"이게 다 맞는데 왜 false가 떨어질까요..?"
"나야 모르지 재부팅해봐. 그래도 안되면 본체 몇 대 후려갈기거나"
그렇지.. 쉽게 알려줄 양반이 아니지 싶어. 말을 말자라는 식으로 계속
모니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 어느새 내 옆까지 의자를 가져와서는
마우스를 잡고 있는 내손을 툭 치는 경태형이었어.
"손 치워봐 좀 보게"
마우스를 뺏어서 코드를 확인하던 경태형. 한동안 확인하는가 싶더니
"야! 담배나 하나 피자? 이 새끼 이거.. 잘하는 줄 알았더니
아직 멀었구먼? 허허허"
뭔가 알겠다는 듯이 거들먹거리며 일어나는 경태형.
기대반 의심반으로 흡연실로 졸졸 따라 들어갔지.
"찾으셨어요?"
"도리야. 봐봐? 내가 컵이 있어. 음료수를 많이 먹고 싶어서 계속 따라
그러면 어떻게 되겠냐?"
"넘치겠죠?"
"그럼 어떻게 해야 돼? 난 많이 먹고 싶은데?"
"더 큰 컵을 찾아봐야죠."
"..."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한가지 생각에 아직 반도 피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고 탈출 하듯이 흡연실을 뛰쳐나갔어.
"아! 고마워요 형! 복 받을 거예요!"
"뭔 개소리여. 음료수 사달란 소린데"
그런 내 모습이 우스꽝 스럽다는 듯 낄낄 대며 웃고 있는 경태형을
뒤로 하고 말이지.
자리에 돌아와 천천히 다시 코드를 확인하기 시작한 아빠가
문제점을 찾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어.
'아.. 여기가 문제였네.. 당연히 오버플러우가 터지지..'
overflow 흘러넘치다라는 뜻이야.
변수라는 게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면
그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크기가 있는데
너무 작은 그릇에 커다란 데이터를 담으려 하다 보니까 흘러넘쳐서
이게 여기저기 문제가 돼서 제대로 된 연산을 하지 못했던 거야.
담배를 급하게 비벼 끄고 음료수 사달란 경태형을 뒤로하고 자리에 앉아
코드를 다시 확인했어. 역시나 변수 사용에 문제가 있었던 거지.
'하아~ 다행이다 의외로 쉽게 마무리됐어..'
바로 팀장님께 실행 파일을 메신저로 넘기고 팀장님 자리로 향했지.
"뭐야? 빨리 수정하라니까 왜 또 와?"
혼나고 간지 20분도 안돼서였을까? 당연히 아직 수정됐을 리 없을 거라
생각한 건지 아직도 화난 목소리로 팀장님은 묻고 있었어.
"다됐습니다. 지금 메신저로 보내드렸습니다."
"뭐?"
실행프로그램을 덮어 씌운 후 다시 테스트해 보던 팀장님. 진짜 사람얼굴이
한순간에 그렇게 바뀌는 거 처음 본 거 같아.
"어우야~ 도리야~ 거봐 하면 잘하잖아. 잘했다~ 담배하나 필까?"
"아.. 방금 피고 와서요. 다음 작업 들어가겠습니다."
태도가 순식간에 변하는 팀장님을 보면서
진짜 진심으로 생각해 봤어.. 저거 정신병자 아닐까?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려는데
"도리? 열심히네? 실력도 좋은가 봐?"
어제의 그 화기애애한, 동네 누나처럼 같이 술 마셨던 모습은 어디 가고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사무적으로, 상사처럼 얘기하는 민차장.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래요. 수고해."
모든 게 다시 돌아온 것 같았어.
어제의 술자리도 마치 없었던 것처럼 오늘로.
그날의 상처받은 민예서도 아픔을 딛고 지금까지 달려온
민차장으로 말야.
"아~ 어제 2차 가자니까아~ 노래 부를 거 있었는데~"
물론 정현이는 빼고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