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소리, 각자의 세계
2012년 2월 8일,
프랑스 파리의 베르시 스타디움
(현, Accor Arena).
<뮤직뱅크 월드투어 in 파리> 무대.
티아라(T-ARA)의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멤버 은정의 인사가 공기를 갈랐다.
“아비앙또!”
파리 관객들이 환호했다.
의미는 정확히 전달되었다.
그런데 몇 시간 뒤, 한국의 온라인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아리가또라고 인사했대.”
“일본어 아냐??”
소속사 측은
프랑스어 "아비앙또"가
한 멤버의 귀에는
일본어 "아리가또"로 맺혔고,
그것이 오해로 이어졌다고 해명했다.
소리는 하나였다.
뜻도 바뀌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듣는 사람의 세계였다.
실제로는 프랑스어 À bientôt,
“다음에 또 만나요.”라는 뜻이다.
그 몇 초 사이,
이 한 문장은
국경을 건너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낯선 외국어는 종종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 변한다.
‘오빠 만세’로 들리던
‘All by Myself’.
‘
번개탄’으로 오해되던
‘Funky Town’.
가사는 달랐지만,
귀는 가장 가까운 언어를 선택했다.
익숙하지 않은 소리를
이미 알고 있는 단어로 바꿔 인식하는 순간,
소리는 다른 의미로 재배치된다.
공교롭게도
당시 T-ARA가 발표한 미니앨범은
《Funky Town》이었다.
이는 단순한 착각이 아니다.
뇌는 낯선 음성을 공백으로 남기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경험과 맥락 속에서
무엇일지 먼저 짐작할 뿐이다.
인지과학에서는 이런 작동 방식을
‘예측 처리’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당시 티아라는 일본 활동을
활발히 하던 그룹이었다.
그때 들려온 낯선 프랑스어 “아비앙또”는
뇌가 가장 익숙한 경로를 선택하며
일본어 “아리가또”로 재구성되었다.
이는 특정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인간 인지의 효율성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에 가깝다.
뇌는 낯선 것을 오래 붙들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범주 안으로 끌어당긴다.
그 편이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이 방식이
생존에는 유리했을지는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때때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타인을 채 이해가 기도 전에,
이미 이해했다고 믿어버리는 것.
우리는 이를 ‘직관’이라 부르며
신뢰하지만, 종종 타인의 세계를
우리 언어의 틀 안에서만 해석하게 만든다.
우리는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는 만큼만 보고 듣는다.
그래서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흥미롭다.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것만이 아니라,
자동으로 작동하는 해석의 회로를
잠시 멈춰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과 기억이 오래 축적된 대상일수록
예측은 더 빠르고 강하게 작동한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사적으로 오래 얽혀 있는 관계일수록
그 작동은 더욱 즉각적이다.
그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재는 일이 아니라,
해석의 속도를 늦추는 연습과 같다.
상대의 문장 구조 안에서 사고할 때,
우리는 비로 깨닫는다.
내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단 하나의 해석이었음을.
“아비앙또”와 “아리가또”사이에는
몇 개의 음절 차이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놓여 있다.
우리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가,
아니면 예측을 통해 재구성하는가.
낯선 것을 낯선 그대로 두어보는 일.
어쩌면 그것이
타인을 이해하는
최소한의 한 걸음일지도 모른다.
2012년의 작은 해프닝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해석하고,
생각보다 쉽게 확신합니다.
여러분에게도
확신 속에 놓쳐버린
"아비앙또"가 있으신가요?
-또마-
[말말말, 내 맘대로 사전(私典) 02]
아비앙또(À bientôt)
격주 수요일 밤 9시,
서랍을 하나씩 엽니다.
[다음 서랍]
질문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오란다, 가련다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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