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결제 버튼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by 뚜이

그날은 이상하게 결제 버튼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미 여러 번 사본 물건이었고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평소라면 카드 번호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누르는 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화면에는 지금 구매하기라는 문장이 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이미 알고 있던 금액이
아무렇지 않게 적혀 있었다..


그 숫자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돈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당장 아껴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금액 앞에서
나는 한동안 멈춰 서 있었다


왜 멈췄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다만 누르는 순간..
오늘이라는 하루가 아무 설명 없이

넘어가 버릴 것 같았다


최근 며칠 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말을 너무 자주 하고 있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아
지금은 그냥 넘어가도 괜찮아..


그 말들은 위로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들여다보지 않기 위한 말들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나에게 이유를

묻지 않은 채 선택해 왔다


편리하니까.. 익숙하니까..
다들 그렇게 하니까..


결제 버튼 앞에 서 있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그 이유 없는 선택들을
천천히 떠올리고 있었다


사고 싶었던 건 물건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누르는 행위로 이 하루를

조금 덜 느끼고 싶었던 마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간을 넘겨버리고 싶었던 마음

누르기만 하면 오늘은 끝나고
내일이 올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망설였다


결국
결제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대신 화면을 닫고 방 안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공간에서
시간이 흐르는 걸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눈앞이 조금 흐려졌다


그제야 알았다

그날 내가 필요했던 건 무언가를 갖는 일이 아니라
멈춰 서는 일이었다는 걸..


그동안 나는 너무 쉽게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힘든 감정도.. 불편한 생각도..
선택 하나로 덮어두고
괜찮다는 말로 밀어냈다


그날의 망설임은 그 모든 흐름을
잠시 멈추게 했다


누르지 않은 선택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를 아주 조금
다른 쪽으로 세워두었다


그날 이후로..나는 선택 앞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었다


사기 전에..정리하기 전에
넘어가기 전에..

이게 정말 필요한지보다


이 선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날의 망설임이

조금 슬펐다는 걸 알게 된다


울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분명 조금 슬펐던 날이었다


아마도 그 슬픔은 그동안 내가
나를 너무 급하게 다뤄왔다는
뒤늦은 깨달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도 결제 버튼 앞에 서면
가끔 그날을 떠올린다


누르지 않았던 선택 하나가
아무도 모르게 나를 조금 덜 외롭게 해주었던
아주 조용한 저녁을 그리고 그날 이후로

나는 안다..


선택의 크기가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서 본 경험이
사람을 남긴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선택 앞에서
조금 천천히 숨을 쉰다


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떤 상태인지 한 번 더 알아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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