뚠뚠한 시선-06

일에서 행복을 찾지 말라는 말, 그 너머의 나

by 이주동

무엇이든 잘 그리던 소년과 현실의 벽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 곁에서 자란 덕분에 유치원 대신 시장 근처 미술학원을 다녔다. 멋진 그림이 보이면 무작정 따라 그렸고, 늘 '제일 잘 그리는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 든 순간, 나는 서늘한 현실을 마주했다. 공부보다는 내가 잘하는 것에 승부를 걸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미대 입시를 준비했고, 기적처럼 나의 생일날 대학교 합격 통지서라는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다.

시각디자인과로 진학하며 나는 언제나처럼 가장 가능성 높고 현실적인 선택을 하려 애썼다. 게임 일러스트레이터나 만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나중에 먹고살 길을 생각하니 디자이너가 정답처럼 보였다. 사실 그 이면에는 일종의 체념도 섞여 있었다. 전국에서 모인 '그림 좀 그린다는 학생들' 사이에서 내가 결코 1등이 될 수 없음을, 내 재능의 한계를 일찍이 깨달았던 것이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배운 디자인의 언어

대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적응으로 겉돌던 나는 도망치듯 늦은 나이에 군대로 향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전환점은 그곳에서 찾아왔다. 학교에서 겉돌며 방황했던 디자인 툴을 전혀 다루지 못했던 나에게, 군대 선임은 구원자처럼 일러스트레이터와 포토샵을 가르쳐주었다. 전역 후, 그전까지 그토록 싫어했던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것은 내 인생의 가장 의외의 변곡점이었다.

모든 선택이 꽃길은 아니었다. 인턴 자리는 교통비조차 나오지 않아 용돈으로 메꿔야 했고, 급한 마음에 등록한 학원은 사기를 치고 도망가기도 했다. 실력도 경험도 부족하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던 졸업 직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본 '학생 디자인 잡지' 제작 광고는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되었다.


커피로 수혈하며 마주한 마스터피스

미천한 실력이었지만 '아트디렉터'라는 거창한 명함을 쥐고 디자인 팀장을 맡았다. 적당한 책임감과 무거운 부담감은 오히려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게 잡지를 완성해 가던 중, 이를 뒷받침해주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고 나는 다시 한번 팀장이라는 직함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믿을 건 튼튼한 몸뚱이뿐이었다. 일주일에 집에 가는 날을 손에 꼽으며, 고객이 지불한 돈이 아깝지 않은 포스터와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밤을 지새웠다. 실력의 공백은 엉덩이로 채웠고, 커피를 혈관에 수혈하듯 들이켜며 회사 소파에서 쪽잠을 잤다. 지금 흘리는 코피 한 방울이 훗날 나의 실력이 될 거라는 무식한 믿음 하나로 2년을 버텼다. 그 치열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 살 형이자 입사 동기인 지인을 만났다. 그는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일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나를 사랑하는 법 : '나의 것'을 위한 선택

그 꼰대 같은 말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회사를 위해 몸 바쳐 일하는 게 잘못된 걸까?" 오랜 시간이 흘러 이제야 나는 그 말에 대한 나만의 해답을 내린다. 일에서 행복을 찾아도 된다. 다만, 그 노력이 온전히 '나의 것'일 때만 가능하다.

내 세월의 선택들이 모두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 끝에는 '미래의 나'가 있었다. 지금 당장 밤을 새워 일을 해도 좋다. 그를 통해 얻게 될 성취감과 실력이 훗날의 나를 행복하게 만들 거라는 확신이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당장의 밥 한 끼나 누군가의 기대를 위해서라면 그러지 말기를 바란다. 삶은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어떤 선물이 될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다.






일에서 행복을 찾지 말라는 말은, 당신이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잊지 말라는 경고다. 당신의 노력이 온전히 당신을 향하는 순간에야 일은 비로소 행복의 자리를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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