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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뚠뚠한 D Sep 23. 2022

뚠뚠한생각 -4

부사수가 독립하다

아마도 첫 만남은 2017년 12월이었다. 나는 다니던 회사를 잠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상황이었다. 복귀전날 회사 대표님과의 미팅을 위해 잠시 방문했었는데 그때 그와 처음 만났다.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이었는데 다음날 휴가 스케줄이 잡혀있다고 했다. 다음날 출근했을 때 내 자리 위에는 인수인계 사항이 빼곡하게 정리되어있었다. 그 뒤로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꽤나 에피소드가 많았었는데 늘 그렇듯 내 머릿속 추억들은 검색어가 입력되지 않으면 쇼릴영상처럼 여러 장면들이 섞여서 떠오른다.


첫 회사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직원들이 내 밑에서 옆에서 지나갔다. 디자이너는 보통 신입들로 뽑았었고 경력직도 1~2년 급이었다. 스치듯 안녕했던 몇몇을 제외하고는 2년 정도 같이한 경우가 많았는데 느낌상 '내 새끼'같은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그는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남자 디자이너가 밑에 있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처음에는 나랑 디자인 스타일이나 지금으로 치면 MBTI가 상극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도 내 주변에서는 볼 수 없던 싹싹함이라던지 성격에 적응이 되고 나의 낯가림도 걷히자. 편함과 든든함이 생겼다.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의 느낌.


그 친구가 5년 정도의 시간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회사에서도 꽤 큰 일이었다. 가장 근속 일수가 높은 직원이 퇴사하는 거였으니까. 다른 부서 직원이나 운영진에서는 꽤 걱정이 많았다. 나는 섭섭함이 없을 수는 없었으나 걱정이라면 자식 유학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 아쉬움은 이제 그의 아침인사를 매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처음 그만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오히려 축하해 주었다. 다른 팀원들에게는 나의 이 마음을 솔직히 말하면서도 '퇴사'라는 말보다는 '졸업'이라는 말을 했다. 이 친구는 더 이상 나에게 무엇인가 배우는 것보다는 다른 곳에서의 경험이 더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이다. 


팀원들의 생일이나 입사 기념일이 되면 나는 책을 선물하곤 한다. 대체로 디자인 이론서나 관련 도서를 주었다. 일 뿐만 아니라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 성장하길 바랬으니까. 그의 퇴사 전날인가에도 서점에 갔다. 이번에는 디자인 코너가 아닌 문학코너를 서성거렸다.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고르고 골라 시집 하나를 선택했다. 


나태주 시인의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그리고는 첫 장에 편지를 적었다. 

이제는 스스로의 길을 가는 그에게 나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이 책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잠깐 짬이 생기면 살짝 펴서 한 줄만 읽어도 좋고, 제목만 읽어도 좋지만, 그 잠깐의 여유를 꼭 가지며 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도 떠나가며 나에게 여러 말을 전했다. 그동안에 대한 감사 인사와 선물을 건네었는데 왠지 낯간지럽고 쑥스러워 제대로 리액션을 못한 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다.


팀원들과 나의 회사생활에서 꽤 큰 조각이 빠져나갔지만 그렇게도 또 굴러간다. 이제는 각자 위치에서 서로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살아가겠지. 가끔은 서로의 행적이 겹쳐질 때 반갑게 인사하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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