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 가수 임영웅의 콘서트에 가면 여느 아이돌 콘서트와 다르지 않은 뜨거운 열기와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다. 60이 넘은 할머니 팬들조차 그의 노래를 들으며 소녀처럼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린다. 평소에 아프고 쑤시던 곳도 그날만큼은 모두 잊고 어린아이처럼 소리 지르고 힘차게 박수를 친다. 좋아하는 가수가 생긴 것만으로 나이가 열 살은 젊어진 것 같다는 그들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생에 충만한 기쁨을 불어넣어 주는 일. 그 자체로 삶에 원동력이 되는 일 말이다.
지금의 나는 ‘정리 덕후’를 자처하며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지만 내가 정리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 몸뚱이를 가지고 4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30년 가까이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하는지 모른 채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자 주변에서 알아서 나의 길을 정해줬다. 생각이란 걸 할 필요도 없이 나는 좋은 대학, 미래 전망이 밝은 과,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길을 가면 됐다.적성은 그럴듯해 보이는 직업 중 뭘 고를래의 단계에서 적용됐다. 보기 몇 개중 답 하나 고르면 되는 늘 보던 객관식 시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은 30대가 들어서였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아이뿐 아니라 나 스스로를 잘 돌보고 키울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을 알아가기 시작하자 불안함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왔다. 조금 여유로워진 마음에 좋아하는 일들을 찾아 채워 넣자 인생이 훨씬 풍요로워졌다.
나는 전보다 행복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하고 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유튜브나 검색 창에 ‘좋아하는 일 찾는 법’이라고만 쳐도 엄청나게 많은 방법들이 나온다. 조금만 돈을 투자하면 각종 검사를 받을 수도 있다. 모두 좋다. 그러나 돈까지 들이기 아깝다면 내가 추천하는 방법도 한 번 시도하길 바란다.
1. 좋아하는 것들을 편안하게 적어보기
제일 첫 단계는 종이나 노트를 펴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다. 아니, 사소한 것 일수록 좋다. 좋아하는 계절, 날씨, 향, 음식, 장소, 운동, 어렸을 때 좋았던 기억, 여행 장소 등 생각나는 대로 내가 좋았던 순간이나 물건, 행동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 안에 끝내는 것보다 며칠 동안 진행하면 더욱 좋다. 오래 생각할수록 잊고 있던 좋았던 순간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때문이다.
2. 좋아하는 것들의 이유를 적어보자.
이 단계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적은 것들이 왜 좋은지 구체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같은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 이유가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은 숨이 턱끝까지 차도록 뛰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선수 선발과 전략에 따라 팀의 실력이 바뀌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재밌을 수 있다. 또 어쩌면 축구장에서 치킨을 먹으며 응원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단순히 무언가를 좋아하는지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것이 왜 좋은지를 생각해 내는 것이 인생에는 훨씬 도움이 된다. 앞서 말한 축구에서 전략에 관한 부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꼭 축구 감독이 되지 않아도 그런 분야의 회사 일을 하면 일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진다. 탁 트인 곳에서 소리 지르며 응원하는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야구장이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더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그 이유를 파고들어 많이 밝힐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역시 많아진다.
3. 검증하기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이것으로 당장 돈을 벌 수 있는지를 따진다. 이해는 된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 이야기만 들어도 행복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생각이라면 더더욱 신중히 ‘진짜’를 골라내야 한다. 조건이 붙은 것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도 월 300만 원은 벌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는 또다시 ’ 진정한 나의 관심사‘보다 ’ 돈‘에 맞춘 삶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정말 내가 순수하게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일단 저런 조건들을 다 내려놓는 게 좋다. 내가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유가 늘 1위를 하기 때문은 아니지 않은가.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은 그 자체로 즐거움과 원동력이 생긴다. 판단하기 힘들다면 다음 조건을 붙여 검증해 보는 것이 좋다.
- 이 일로 10년 동안 돈을 벌지 못해도 계속하고 싶은 일인가.
-나의 인생이 3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래도 도전해보고 싶은 일인가.
- 잠시 쉴 때도 있긴 하지만 정신 차리면 스멀스멀 이 일을 또 하고 있는가.
돈과 죽음에도 방해받지 않는 일이라면 그 일은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이라고 부를 수 있다.
4. 기록하고 평가받기
윗 단계들을 거쳐 검증한 ‘순수하게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즐겨도 인생이 풍요로워진다. 그러나 만약 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면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그것은 기록하고, 대중의 평가를 받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돈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 단계를 빠르게 패스하고 바로 돈을 벌고 싶어 하지만, 뒤늦게 이 일을 찾은 만큼 그것이 무르익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 일을 즐기면서 하되,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좋다. 기록은 글이어도 좋고, 사진이나 영상이어도 좋다. 자신이 가장 편하고 오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덕질의 과정을 기록해 본다. 요즘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들이 많다. 이러한 플랫폼들을 통해 기록했을 때 좋은 점은 그 자체로 덕질의 아카이브가 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들이 쌓이면 대중들은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전문가로 당신을 대우해 준다. 그때부터는 당신은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잘하는 사람이 된다.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때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과정이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과정이 오래 걸려도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 역시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덕질을 이어나가고 있다. 좋아하는 건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인정받고 싶었던 것들, 돈을 바라보며 시작했다가 이어지지 못하고 그만둔 것들 등 나 역시도 먼 길을 돌아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다. 그리고 아직 돈으로 바꾸기에 모자란 실력을 가진 채, 여기저기 평가를 받고 있는 단계이다. 그렇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자주 행복하다. 서은국 교수의 책 ‘행복의 기원’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행복의 정도는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덕질은 확실히 일상에 즐거움의 빈도를 높여준다. 많은 조건들을 내려놓고 그저 조금 더 자주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자. 그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일의 효용성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