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랭 Oct 21. 2024

순수하게 좋아할 권리


  얼마 전 내가 좋아하던 유튜브 채널이 tv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됐다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바로 ‘청소왕 브라이언’이다. 예전부터 깔끔 왕으로 알려진 가수 브라이언이 다른 연예인들의 집, 사무실, 차 등을 살펴보고 청소해 주는 내용이다. 보고 있으면 어쩐지 청소를 하고 싶어지는 마성의 프로그램이다. 더러운 것을 볼 때마다 극혐 하는 깔끔쟁이 브라이언과 패널들의 반응도 웃기지만 역시나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더러웠던 공간이 몰라보게 깔끔해졌을 때이다. 어찌나 그 희열이 큰지, before 모습이 더러우면 더러울수록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극적인 변화는 늘 새롭고 짜릿하기 때문에.



 그런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청소계와 정리계는 다른 분야이다. 브라이언 님은 정리도 훌륭하지만 따지고 보면 청소계 사람이다. 일반인들에게 이 둘의 차이가 크게 다를까 싶겠지만 노노. 이 둘의 차이는 천지차이이다. 정리계는 물건의 형태와 쓰임에 따른 분류,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미관상 좋게 수납하고 보관하느냐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청소계는 세균과 먼지, 오염된 것을 제거하고 방지하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렇다 보니 정리계 사람들의 물건들은 보이기엔 물건들이 모두 각이 잡혀 있어도 그 위엔 먼지가 소복할 수 있다. 그렇다. 이것은 내 얘기다. 나는 정리인을 자처하고 있으나, 청소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혀 청소를 안 한다 는 건 아니지만, (아니, 나름 자주 쓸고 닦는 편이라고 자부한다.) 어찌 됐든 ’ 청소에 자신 있습니다!‘라고 스스로 말하기엔 조금 양심에 걸리는 수준이다. 내가 이 둘을 이렇게 구분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오해 때문이다. 정리를 좋아하니 으레 정리도 청소도, 요리도 잘하는 ‘살림 9단 주부’ 일 것이라는 오해말이다. 심지어 나는 정리조차도 ‘좋아한다’라고 말했는데 멋대로 ‘정리를 잘한다’라고 착각하여 혼자서 기대했다가 실망까지 자유자재로 한다.


“정리 좋아한다는 사람이 이건 왜 이렇게 쌓아놨대?”

“야, 정리 좋아한다더니 이건 먼지가 뽀얗다.”




 청소까지의 연관성이야 뭐 어떻게든 넘어가겠는데, 아니 왜 요리는 끌어들이는 것인지. 요리는 엄밀히 말해서 ‘어지르다’와 ‘치우다’ 두 개념으로만 나눠서 생각할 때, 어지르는 쪽이다. 재료 손질부터 요리를 그릇에 담고 마지막 설거지까지 신경 쓰며 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부엌은 엉망이 된다. 그렇다 보니 나에게 있어 요리는 도무지 친해지지 않는 분야이다. 게다가 소신 발언을 좀 하자면, 나에게 ’ 음식‘은 그저 살기 위해 채우는 영양소 덩어리이다. 미식가와는 한참이나 떨어진 사람이다 보니 요리란 최대한 간편하고, 영양가가 부족하지 않으며, 많이 어지르지 않는(중요), 치우기 쉬운(아주 중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식단 선정에 있어서도 새롭고 맛있는 메뉴보다 식재료의 재고 관리가 쉽고 영양소 조화 면에서 나쁘지 않은지가 더욱 중요하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에게 ‘정리를 좋아한다’는 한 마디에 ‘요리를 잘한다’까지 이어지면, 나는 늘 체한 것 마냥 마음이 불편하다. 이쯤 되면 정리는 좋아하는데도 요리를 못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배신’이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 좋아한다 ‘를 ’ 잘한다 ‘의 겸손 버전이라 여긴다. 말은 저렇게 하지만 엄청난 고수로 비상한 실력을 지니고 있을 거라며 시원하게 김칫국 드링킹을 한다. 특히 나처럼 ‘정리’라는 분야는 이미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에  더더욱 깐깐히 ’ 덕후‘의 실력을 검증한다. 그렇지만 ‘좋아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순수한 동기로 그것들을 즐기는 것이다. 실력을 신경 쓰는 순간, ‘덕심’은 순수함을 잃는다. 그러니 실력을 체크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면 ‘쿨하게’ 대답해줘야 한다.


“그냥 좋아하는 건데?”



좋아한다고 해서 꼭 잘할 필요는 없다.

외국에서는 책 한 권 내지 않아도 평소에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스스로를 ’ 작가‘라고 부르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당당히 자신을 ‘가수’라 소개한다.

그러니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을 즐기자.

우리에게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할 권리를 주자.

뭐 하나 내세울 것 없어도 당당히 ‘정리 덕후’를 자처하는 나처럼.



이전 08화 너 J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