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5G 시대가 열렸다. 사고 때문에 아침에 차가 막히면 평소보다 30분 일찍 방안에 불이 켜진다. 기상 시간에 맞춰 알아서 작동되는 토스트기에서 노릇노릇 구워진 식빵을 꺼내 입에 물고는 자동차에 올라탄 후 "회사로"라고만 말하면 자율주행 자동차가 알아서 운전을 한다.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뉴스들을 보거나 2GB 영화를 0.8초 만에 다운로드하여 즐겁게 즐기다 보면 금세 회사에 도착한다. 화상회의를 통해 외국의 동료들과 회의를 하고 집에서는 가전제품들이 미리 집안일을 해놓고 우리를 기다릴 미래가 곧 온다는 뜻이다. 원더 키디처럼 초록색 얼굴로 하늘을 날아다닐 줄 알았던 미래보다는 훨씬 아름다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이런 판타스틱한 시대를 맞이하여 나의 사랑 아이폰 8을 전화와 문자만 되는 폴더폰으로 바꿨다.
'에이, 효도폰 산거 아니야? 모양만 폴더고 인터넷 빵빵 터지는 폰 많잖아?'라고 묻고 싶을 것이다.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내가 산 폰은 정확히 전화랑 문자만 되는 진짜 그 폴더폰이다. (아, 라디오도 나온다.) 아니 분명 나 고등학교 때는 폴더폰이어도 자체 내장되어 있는 게임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왜 뺐나 모르겠다. 은근 섭섭하네. 암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홀로 언박싱을 해 보았다. 상자 안에 앙증맞게 들어있는 배터리 두 개를 보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실제로는 똑같지만 내 눈에만 조금 더 통통해 보이는 놈으로 골라 장착을 시도해 보았다. 불과 몇 년 전에는 눈 감고도 하던 일인데 배터리 커버 빼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배터리 앞 뒤도 잘 확인하여 조심스레 넣고는 커버를 닫았다. 자 이제 드디어 전원을 켜 볼 시간이다. 이 장난감 같은 게 과연 켜질까 잠깐 의심스러웠지만 일단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본다. 한 때 전원 켜는 소리만으로도 어깨 뽕 올라가던 익숙한 멘트가 나온다.
'스카이'
오랜만에 보는 푸르뎅뎅한 화면이 나타나자 다시 한번 헛웃음이 나왔다. 핸드폰을 사면 늘 그랬듯이 카메라부터 켜 봤다. 어떤 사진 보정 앱보다 강력한 뽀샤시를 넘어선 얼굴 뭉개짐 기능을 확인하고는 옛날처럼 사진을 찍어 배경화면으로 설정해 놓으려던 계획은 접었다. 기본 사진 중 대충 괜찮아 보이는 사진으로 배경화면을 저장하고 나니 혹시 이런 식이면 벨소리도 단음이나 24화음인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확인해 보니 다행히 아니었다. (혹시 2000년생 독자가 있다면 이게 다 뭔 소린가 싶을 것 같아 미안하다.) 벨소리도 괜찮은 걸로 하나 설정하고 이번엔 무얼 해볼까 하다가 전화번호를 저장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하나하나 내 손으로 일일이 번호를 찍어가며 저장해야 한단 소리다. 전에 쓰던 폰을 보니 180명 정도의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자주 연락하는 사람 위주로 스물몇 명만 일단 저장을 했다. 남편이 또각거리는 키패드 소리가 신경 쓰이는지 계속 흘끗흘끗 쳐다보는 바람에 나머지 160명은 다음을 기약했다.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저장하고 나니 텅 빈 폰이 제법 채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 뒤에는 이어폰을 꽂아야만 나오는 라디오도 켜 보고, 정겨운 편지 모양의 메시지함도 열어보고, 계산기도 잘 작동되는지 살펴보았다. 그렇게 20분 살펴보고 나니 더 이상 볼 게 없었다. 애꿎은 폴더만 열었다 접었다 몇 번 하고는 침대 한 귀퉁이로 폰을 던졌다.
웃음이 났다. 내가 원한 삶. 바로 이거였다.
연어도 아니면서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살아보고자 했던 이유는 바로 이 할 것 없는 무료함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내 손에 늘 들려있는 스마트폰은 나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화면만 켜면 내가 볼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들이 넘쳤다. 영어 단어 하나 검색하러 들어갔다가 SNS 광고로 필요도 없는 화장품을 사고 나고 나오는 나날들, 그깟 온라인 장보기를 하면서 인형 놀이 같이 하자는 아이에게 "엄마, 잠깐만"을 외치다 결국 "엄마!! 핸드폰만 보지 말고!"를 울부짖는 아이를 보는 하루들이 지긋지긋했다. 한때는 타고났다고 믿었던 나의 멀티태스킹 능력이 어쩔 땐 저주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인생 육아서에서 스마트폰을 끊는 것은 TV를 끊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시간을 만들어 준다는 한 문장이 늘 목에 가시처럼 걸렸지만 차마 실천하기가 두려워 모른 척했다. 스마트폰 없이 사는 삶. 과연 내가 그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러다 나는 코로나로 인한 집콕 생활의 부작용으로 글쓰기 세계에 입문하였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쓸 때마다 괴로운데 이상하게 안 쓰면 찝찝하고 뭔가 아쉬운 알다가도 모를 세계였다. 예전보다 집중할 시간들이 많이 필요했다. 애도 보고 글도 쓰려면 쓸데없는 시간들부터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이 들자 집는 책마다 같은 메시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버드 상위 1퍼센트의 비밀'에서는 '차단'이란 단어만 반짝거렸고, '타이탄의 도구들'에서는 사진작가 체이스 자비스가 말한 '얻어야 할 것에 집중하지 마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라.'라는 말이 뇌리를 맴돌았다. 육아서들은 말할 것도 없이 '스마트폰보다 아이의 얼굴을 보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더 해빙'에서는 '일단 마음을 먹으면 두려워한 것보다 어렵지 않다는 말'에 눈이 반짝였다. 나는 드디어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행동에 옮길 때였다.
다시 한번 생각하기 전에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인터넷에 들어가 폴더폰을 검색했다. 남이 쓰던 낡은 중고폰은 끌리지 않았다. 이왕이면 내가 처음 쓰는 새 제품이었으면 했다. 알뜰폰 통신사와 연계되어 있는 한 제품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결제하고 가입서도 적어 보냈다. '에라이 모르겠다' 하면서도 설렘에 가슴이 콩닥거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은 금요일 밤이기 때문에 월요일에 개통된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왠지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지르긴 했지만 사실 난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나에게는 이별을 준비하라는 듯이 이틀의 말미가 생겼다. 나는 별로 찍지도 않던 셀카도 여러 장 찍고, 괜히 쓰지도 않던 앱들도 한 번씩 눌러보며 그간 나의 스마트한 활동들을 되짚어 봤다. 원래의 주말이 그렇듯 이틀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나는 이제 2G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