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더폰 생활, 오늘부터 1일

by 또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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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나의 2G 생활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카톡 프로필에다 비장한 한마디를 남겨놨다. '카톡 연락 안 됩니다. 문자나 전화 주세요.' 혹시 몰라 프로필 사진도 지워버렸다. 프로필 사진과 실제 모습의 괴리감에 양심이 조금 찔리던 차에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암튼 이쪽으로는 절대 연락이 안 된다는 결연한 의지였다. 확인할 것들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전원을 껐다. 전원을 끄기 전 '밀어서 전원 끄기'라는 글씨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배터리가 나가 저절로 꺼진 것 말고는 내 손으로 전원을 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챘다. 필요하면 비행기 모드로 바꿔 놓는 것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굳이 스마트폰을 꺼 본 적이 없던 것이다. 그렇게 나의 스마트폰은 처음으로 휴식을 맞이했다.


개통에 관련된 몇 개의 문자가 온 것을 빼고는 폴더폰은 도통 울릴 일이 없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울리는 앱 푸시 알림, 단체방 카톡 알림에 익숙해진 나는 이 고요함이 무섭기까지 했다. 혹시 개통이 잘못되어서 뭔가 올 게 안 오고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애꿎은 폴더만 접었다 폈다 하며 날짜와 시간만 떠 있는 파란 화면만 계속 확인했다. 특히나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조차 폴더폰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나 그들이 연락을 하고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했다. 중요한 일로 단체 채팅방에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데 나만 대답을 해 주고 있지 않아서 뭔가를 결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면 어쩌지? 혹시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이기로 했는데 나만 빼고 만나는 건 아닌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카톡 앱 옆에 확인해야 할 빨간 숫자들이 점점 높아지고 있을 생각을 하니 자꾸 마음이 불안해졌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 한 번만 켜서 확인해 보자. 그래도 미리 얘기는 해줘야지.'라는 합리화가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져 있었다. 아까 스마트폰에게 휴식을 주니 어쩌니 한 지 딱 두 시간 만의 일이었다.


똥줄이 탄다는 게 이런 것인가.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누르는 그 몇 초가 몇 분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드디어 나타났다. 아! 반가운 사과 그림. 몇 시간 안됐는데 왜 이리 반가운 것이냐. '서비스 없음'이란 낯선 단어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옆에 빵빵하게 떠있는 와이파이 모양을 보자 안심이 됐다. 잠시 후 안부를 알리듯이 몇 개의 알림들이 우다다 떴다. 대부분 카드 사용 알림이거나 반가운 브런치 앱 알람들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카톡 옆에 빨간색 숫자도 눈에 띄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카톡 앱을 실행해 보았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는 다른 사람들이 나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혹시 내가 손해 볼까 봐 쿠폰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친절한 쇼핑몰 언니들, 택배가 오늘 안에 도착한다는 반가운 택배 기사님, 놓칠 수 없는 1+1 혜택들을 알려 주는 마트 사장님들이었다. 이 얼마나 친절한 세상인가. 그러나 나의 지인들은 내가 아직 2G 세상으로 떠난 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세상은 내가 없어도 잘만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켠 김에 제일 자주 연락하는 친정 엄마와 여동생에게는 폴더폰으로 바꿨다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전화로 할까 했지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막막해 단체 카톡방에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보는 것 같아서 폴더폰으로 바꿨다고만 이야기했다. 역시나 동생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엄마는 의외로 응원해 주었다. "너 평소에 핸드폰 많이 하는 거 보면서 걱정했는데 어려운 결심 했네."라며. 그렇게 겨우 두 명에게 나의 의지를 알리고 나는 문자와 전화의 세계로 다시 길을 떠났다. 두 시간 만에 무너진 나의 결심이었지만 지인들의 무관심으로 다행히 계속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퍼런 폴더폰 화면만 보고 있을 것 같았다. 인심 쓰듯 아이에게 "우리 뭐하고 놀까?"물었다. 지겨운 인형놀이든, 숨바꼭질이든 뭐든 해야 이 적응 안 되는 무료함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아이와 놀아주다 보니 정말로 머릿속에서 핸드폰에 대한 생각은 사라지고 있었다. 핸드폰을 한 손에 쥐고 노는 것도 안 노는 것도 아닌 예전에 비해 오랜만에 온전히 아이와 함께 놀아주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오후가 지나가고 있었다. 거실에서 진동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나의 폴더폰에서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고장 난 건 아닐까 했는데 다행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번호를 보니 친한 대학 동기에게 온 전화였다.


친구는 조금 심각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심상치 않은 카톡 프로필과 시시때때로 이쁜 척하고 올리던 나의 프로필 사진마저 모두 없어지자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핸드폰 해킹이나 사기 같은 거라도 당했나 싶어 전화로 확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친구의 심각한 목소리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둘이 한바탕 웃고 나니 친구가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친구 역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냐며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어쩌다 그런 결심을 했냐는 질문에 나는 생각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 대충 얼버무렸다. 글쓰기라든지, 나의 시간이라든지를 이야기하기엔 왠지 낯부끄러운 느낌도 들었다. 대충 아이 핑계를 대고는 앞으로는 안부가 궁금하면 전화로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나 역시도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이것을 통해서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뭘까? 이도 저도 아닌 뒤섞인 시간들이 싫다고만 막연히 생각했지, 사실 제대로 된 목표와 계획은 없었다. 성질머리대로 일단 지르긴 했지만 이 생활을 제대로 즐기고 이어나가려면 나에게도 명분이 필요했다. 남이 아닌 나를 설득하기 위한 명분. 그저 폴더폰만 하나 더 사고만 지름신의 장난으로 끝내기엔 나는 나름 심각했다. 나는 폴더폰과 함께 생활하기 위한 나만의 계획과 목표를 세워보기로 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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