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랄 이야기도 아니지만, 나 역시 태어나 보니 흙수저였다. 아빠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셨지만 늘 부채에 허덕이셨다. 엄마가 매일 랩처럼 줄줄 외워대는 247개쯤 되는 에피소드 중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도 이 시기 고생바가지 에피소드들이 대부분이다. 아빠가 생활비를 안 갖다 줘서 엄마가 처녀 때 꼬불쳐 온 비상금으로 살아야 했고, 그렇게 생활비도 안 가져다주면서 밤늦게 따박따박 밥해내라고 하는 통에 밤 12시에도 찌개까지 끓여 밥상 차려야 했다는 이야기, 또 새벽에 출근해야 할 아빠가 못 잘까 봐 자다 깨서 우는 나를 둘러업고 소리 죽여 바깥을 어슬렁거리며 다시 재운 이야기 등등. 어디 흙수저 경연대회가 있다면 우리 집도 장려상 정도는 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들이 우리 가족에겐 차고 넘친다.
집에 돈이 없다는 건 아무리 어린아이여도 쉽게 알 수 있다. 늘 남들보다 적은 용돈이 그러했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과 달리 우리 집은 오래된 연립이었다. 천장에서 쥐가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면 나와 여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양말을 돌돌 말아 천장에 '쿵'소리가 나게 던졌다. 물론 앙칼지게 '야옹' 소리를 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집에 집개미와 집바퀴벌레는 동시에 살 수 없다는데, 나는 개미와 바퀴벌레와 쥐가 함께 사는 공생의 현장을 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 인간까지 네 가지 종이 치열하게 생존게임을 벌이며 각자 먹고살겠다고 애쓰는 모습은 슬프기보다 웃겼다. 그렇게 우리 집엔 남들만큼의 돈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나는 남들처럼 길거리에서 떡볶이 한 번 사 먹어 본 적이 없다. 물론 초등학교까지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이긴 했다. 오케이, 그건 인정. 하지만 나는 학원 가는 길에도 당시 100원 하던 떡꼬치에도 흔들려 본 적이 없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데, 나는 먹는 돈이 제일 아까웠다. 뱃속으로 넣어버리기엔 나는 그 돈들이 절실했다. 가족이나, 친구들의 선물을 사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방방을 한 번 더 타기 위해(정식 명칭은 트램펄린이나, 지역에 따라 방방, 퐁퐁 등으로 불린다.) 나는 그 돈들을 입에 털지 않고 기꺼이 저금통에 넣었다. 철이 든 게 아니었다. 그저 남들처럼 사는 척하기 위해, 이런 지지리 궁상인 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필요한 돈이었다.
이렇게 제법 가난했던 우리 가족에게도 풍족한 날은 있었다. 바로 아빠의 월급날이었다. IMF 이후 아빠는 다시 월급쟁이가 되었다. 사장님 소리 듣던 아빠는 많이 서운했을지 모르지만, 엄마와 나, 동생은 아빠의 월급날만 기다렸다. 그리고 아빠 역시 월급날만 되면 뭔가 어깨가 넓어지셨다. 그럴 만도 한 게 요즘처럼 인터넷 뱅킹으로 보내주면 이 카드 새끼, 저 카드 새끼, 이 은행 놈, 저 은행 놈이 다 빼가 5분 만에 텅장이 되는 게 아니라(죄송합니다.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간 표현들입니다.) 현금으로 뽝! 돈다발 뙇! 수표 말고 만 원짜리로 촥! 월급봉투에 현금을 두둑이 넣어 가져오셨기 때문이다. 거기에 기름이 잔뜩 묻은 종이 쇼핑백을 들고 오는 아빠의 모습은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그 기름진 종이 쇼핑백에는 모두가 알듯이 통닭이 들어있었다.(죄송해요. 2000년 생 여러분.) 절대 치킨이 아니다, 통닭이다. 엄연히 다르다. 그렇게 손에 기름 묻혀가며 닭다리를 뜯고 있으면 아 월급이란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맨날 아빠 월급날이면 좋겠단 생각을 했더랬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는 그 뒤로 봉투만 봐도 기분이 좋아졌다. '봉투'하면 안에 '돈'이 떠올랐고, 통닭과 화목한 그날 밤의 분위기가 떠올라 그냥 봉투만 봐도 침을 흘렸다. 특히 돈이 살짝 비치는 얇은 노란 봉투가 그렇게 좋았는데, 나는 어느 날 용돈의 일부를 털어 그 얇은 노란 봉투를 100장 샀다. 100 장치곤 엄청나게 비싸진 않았지만 초등학생인 나에게 꽤나 대담한 소비였다. 그리고는 떡꼬치, 컵떡볶이, 슬러시 안 사 먹고 모은 돈을 그 노란 봉투에 소중하게 넣어 책상 서랍 맨 안쪽에 숨겨두었다. 아빠처럼 두둑한 봉투는 아니었지만 어찌나 뿌듯하고 기분이 좋던지. 살짝 비치는 지폐의 빛깔이, 도톰하게 올라와 있는 동전의 형태가 너무도 아름다웠다. 하루에도 열두 번, 서랍을 열고 깊숙이 손을 넣고는 봉투가 잘 있나 확인하였다. 돈이 모일수록 제법 두툼해지는 봉투를 느끼며 행복했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게 이런 거구나, 그 어린 나이에 알게 되었다. 봉투가 너무 얇아 찢어지면 또 새로운 한 장을 꺼내 돈을 옮겨 담았다. 나중에는 돈을 모아야 할 상황이 생기면 봉투에 글씨를 쓰고 그 봉투에 따로 돈을 모았다. 그 나이에 나름 통장 쪼개기 같은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나는 그렇게 노란 봉투에 모은 돈으로 초등학교 6학년 내 생일파티를 직접 열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친구 15여 명을 햄버거집으로 데려가 햄버거와 음료를 사줬고, 그 당시 최고의 놀이 시설이었던 실내 놀이터(지금의 키즈 카페 같은 시설)에서 멋지게 입장료를 결제했다. 이 일은 내가 모은 돈으로 목돈을 소비한 최초의 경험이었으며 뿌듯함 역시 그 어떤 경험보다 컸다. 그 뒤로 나는 돈이 아무리 적어도 그 적은 돈 안에서 사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고 느껴졌다.
얼마 전 폴더폰 생활을 하면서 오랜만에 카드 대신 현금 쓰기를 시도해봤다. 원래도 체크카드 위주로 쓰기 때문에 주어진 금액에서 쓰는 편이긴 하지만, 현금으로 뽑으니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현금이 내 손에 있으니 쓰기가 아까웠다. 심보가 고약해서 그런가 안 보이는 가상의 금액은 카드 한 번으로 잘도 긁었는데, 손에서 손으로 돈을 주려니까 그게 그렇게 손 떨리고 아까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금으로 싹 다 뽑아버려 인터넷으로 결제를 못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인터넷 쇼핑과도 멀어졌다. 그동안 나는 엄청나게 절제력 있고 돈을 계획 있게 쓰고 있다고 믿었는데 생각보다 인터넷 쇼핑을 많이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귀 잡고 반성해 본다. 확실히 돈은 쓰기 불편해야 덜 쓴다. 불멸의 진리인데, 이렇게 또 몸으로 겪어야 깨닫는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현금 전도사가 되었다. 돈 아낄 때 최고라고, 쓸데없는 지출 막는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지만 전자화폐 쓴다고 카드도 안 쓰는 이 마당에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처럼 나는 그냥 촌스러운 사람일 뿐이다. 뭐, 인정.
다시 현금을 쓰게 되니 그 시절의 나의 소중했던 노란 봉투가 생각났다. 아직도 그 봉투를 파나 찾아보니 옛날의 그 씨쓰루 하며 노란색도 아니고, 누리끼리에 가까운 그 봉투는 없는 듯하다. 대신 '코 묻은 돈', '옛다, 용돈', '뇌물' 같은 내 스타일의 골 때리는 문구가 적힌 봉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달 용돈은 다 썼으니 다음 달에 용돈 받으면 봉투 쇼핑을 한 번 해 봐야겠다. (결국 돈 쓰겠단 이야기.) 그리고 봉투도 산 김에 옛날 통닭도 사 먹어야겠다.(이게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