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왔다. 나에게도. 브런치 시작한 지 100일의 날이. 몇 년간 꾸준히 글을 쓰신 분들이 보면 콧방귀를 뀌실지도 모르지만, 변덕 대마왕, 꾸준함이라곤 1도 없는 리셋 증후군 최여사에게는 100일 동안 무언가를 꾸준히 했다는 것은 우리 엄마 놀라 자빠지실 대단한 일이다. 자고로 연애를 해도 100일은 해야 '아, 이것들이 썸은 아니었구나.' 하는 거고, 곰 새끼도 사람이 돼서 연애를 시작하는 신비로운 시간이 바로 100일 아니던가. 다행히 일일이 달력에서 100일 세다 틀리고, 또 세고 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엔 날짜만 넣으면 100일 디데이를 알려주는 친절한 세상이어서 나는 3초 만에 나의 브런치 100일을 알아낼 수 있었다. 다이어리에 혼자 동그라미 쳐놓고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후, '브런치 100일'이라고 쓰고는 혼자 뿌듯해했다. 날짜도 어쩐지 딱이었다. 7월 7일. 견우직녀 눈깔 빠지게 기다리는 그 칠석날이 아니던가. 나도 직녀 신발에 머리 밟히는 까마귀쯤 된 심정으로 이 날만을 기다렸다. (아, 걔네는 이 날을 안 기다리려나?) 아무도 100일이라고 백 원짜리 하나 챙겨주지도 않건만(2000년생들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저희 때는 연애 100일 되면 친구들이 100원씩 챙겨주고 그러는 아주 훈훈한 미풍양속이 있었답니다.) 나는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근데 또 100일이 다가올수록 쫄리기도 했다. 아니 왜 또 구독자 수가 99명이고 난리야. 허, 참, 나 진짜 조회수, 구독자 수 이런 거 신경 안 쓰는, 진정한 글쟁이가 되려고 했는데. 하필 99일 날 구독자 99명인 건지. 똥마려운 강아지는 그만 되려고 했는데 또 그 강아지가 되어 집 안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근데 또 100일 날, 딱 구독자 수가 100명이 되는 것도 참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옷은 자고로 위아래 깔맞춤 해줘야 하고, 브런치 100일에 구독자 100명, 100 맞춤, 얼마나 좋아. 이건 운명이라며 혼자 설레발을 쳤더랬다. 그렇게 큰 그림 그리며 올린 7월 7일의 글, 그것도 연재 마지막 글 '슬기로운 스마트폰 생활이 종료되었습니다.'(그렇다고 100명 채우려고 연재를 종료하는 큰 그림까지 그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를 호기롭게 올렸지만 끝내 마지막 1명의 구독자를 모으지 못하고 브런치 100일은 구독자 99명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쉬운 마음이야 왜 없겠냐마는, 그래도 모든 것이 새삼 감사했다. 100일의 시간과 99명의 구독자라.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마는구나 싶어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감사하게도 다음 날 1명의 구독자님이 더 생기면서 결국 101일 100명의 구독자가 생겼습니다. 구독자 여러분 모두 모두 사랑합니다.)
브런치 작가 심사를 받을 때 써낸 글의 주제는 아줌마로서의 삶에 대해 적어보겠다는 것이었다. '아줌마 탐구생활'이란 판에 박힌 제목의 매거진을 발행하고 아줌마의 삶에 대해 하나씩 글을 올렸다. 브런치 초반 버프를 받아 조회 수도 잘 나왔고 다음 메인에도 여러 번 오르면서 그야말로 매일 흥분 상태의 하루하루가 이어졌다. 남편은 너무 아줌마를 불쌍하게 그리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충분히 현실을 담은 이야기라며 아줌마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다고 핏대 세워 반박했다. 남편은 본전도 못 찾고 깨갱 물러섰다. 아닌 게 아니고 많은 아줌마들이 나의 글에 많이 공감해주셨다. 정성 어린 댓글을 보면서 어찌나 감사하던지.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열등감이 생겼다. 브런치에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촉촉한 감성 에세이부터, 돈 주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전문성 넘치는 글들까지. 어찌나 재밌고 이해하기 쉽게들 잘 쓰시는지. 비속어에 멋대로 지껄이는 내 글은 이곳에 있기엔 너무 가볍고 저렴하지 않나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악플 하나가 달렸다. 아줌마와 커피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짧은 두 줄이었지만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뒷 내용은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여서 상관이 없었는데 첫 줄이 '이런 것도 글이라고 쓰는데 다음에서 메인에 실어주네.'같은 뉘앙스였다. 품고 있던 비밀을 들킨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댓글이 나의 글쓰기에 도움이 전혀 될 것 같지 않았기에 바로 삭제하긴 했으나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언제까지 '아줌마는 이렇게 힘들어요.', ' 아줌마는 이렇게 불쌍하게 산답니다.'로 글을 쓸 수 있을까.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이왕이면 조금 더 희망적이고, 도움이 되는 글을 쓸 순 없을까? 자기 계발서 같은 글까진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메시지라도 던질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쓰기 시작한 게 '슬기로운 폴더폰 생활'이었다.(역시 매거진 제목은 구렸다.) 스마트폰 대신 폴더폰 생활을 하며 느낀 점들을 다루며, 슬로 라이프라든지, 아이의 스마트폰 교육, 뭐 그런 것들에 대해 좀 있어 보이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결과는 엉망진창, 산으로 가는 구성이 되었다. 자기 계발서를 한참 읽던 때라 나도 진지하게, 있어 보이게, 막 전문가처럼 쓰고 싶었는데. 나의 저렴한 단어가, 진지함을 못 참고 수시로 나오는 가벼운 말투가 도저히 그런 글을 쓰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중엔 포기했다. 진지고 개뿔이고 그냥 또 손가는대로 썼다. 뇌를 거치지 않고 그냥 나오는 대로, 에라이 모르겠다 썼다. 창대하게 시작한 그 매거진은 두 달만에 폴더폰을 잃어버리면서 어이없게 종료되었다. 물론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사실 좀 잘 쓴 글들을 뽑아 브런치 북으로 엮어 볼까 했지만 저딴 구성을 도대체 어떻게 엮어야 할지 아직도 고민 중이다. 그러나 뭐 쓰다보면 독자들의 마음에 종지만한 파장을 일으킬 코딱지만한 돌멩이같은 글을 언젠가는 쓰게 되지 않을까. 저렴한 문체여도 나의 진심만큼은 알아봐주시리라 믿는다. 개떡같이 써도 찰떡같이 알아봐주시는 똑똑한 독자분들이 브런치에 많으시니 말이다.
100일 동안 30개의 글을 올렸다. 반올림 좀 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면 나는 3일에 한 번 글을 올린 꼴이다. 그러나 사실은 조회수의 미끼에 걸려 눈만 뜨면 글을 써재끼던 초반에 쓴 글이 대부분이고, 요즘엔 게을러져서 일주일에 한 편 올리는 것도 겨우 하는 것 같다. 매일매일 글을 쓰시는 작가님들을 보면 정말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다. 그러나 또 생각해 보면, 놓지 않는 것이 어디인가 싶다. 자고로 인생은 '존버'가 답이라고 하지 않던가. ('존x 버티다'의 준말입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쓰는 단어들이 이렇습니다.) 사진 한 장 찍고, 짧게 글 쓰고, 태그 몇 개 다는 SNS도 꾸준히 못하던 내가 이렇게 장문으로 쓰는 글을 100일간 이어왔다는 것만으로 나는 매우 뿌듯하다. 목표는 짧게 잡아야 이룰 수 있다. 나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나의 다음 목표는 '100일만 더 써보자!'이다. 글의 개수로 정해 놓지 않는 이유는 그러면 분명히 하기 싫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냥 100일만 더 버텨보련다. 100일 동안 글을 한 개만 쓰더라도 이 곳을 떠나지만 않는다면 나는 계속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200일, 300일, 1년, 2년, 쭉 내가 이곳에 머물 수 있다면 나는 참 좋을 것 같다. 서른다섯, 서른여섯, 앞으로 나이 먹어갈 나의 이야기와 생각들을 이곳에 보따리 풀듯이 하나씩 풀어놓고 싶다. 그러면 언젠가 이 글들이 나의 인생의 발자취가 되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그날을 기다려 본다. 그런 의미로 쑥쓰럽지만 오늘은 나의 브런치 100일을 좀 유난스럽게 축하해 보련다. 앞으로도 좋은 글, 대박 글, 재밌는 글 써보자! 퐈이팅!!!!! 아자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