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진짜로
오늘은 EBS와 협업한 <나도 작가다>공모전 1차 발표날이다. 기대 저어어언혀 안 하지만 나는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자 마자 스마트폰을 켰다. (아, 참고로 나는 아무도 안 시켰지만 스마트폰 안 쓰기 운동을 하는 중이다.) 켜자마자 몇 개의 쓸데없는 알림이 나왔다 사라졌다. 기대했던(?)브런치에서도 알림이 몇 개 와있었지만 그 소식은 아니었다.
에이, 그럼 그렇지. 아니지? 내 글이 그 정돈 아니지?
시간을 보니 9시가 조금 넘었다. 물론 EBS 관계자분들은 매우 성실할 것을 잘 아나, 혹시, 아주 호오오옥시라도 어제 야근을 했거나, 회식이 있었다거나, 아니면 1차로 뽑기로 한 작품 중 마지막 한 작품을 놔두고 엄청나게 고민을 하느라 조금 늦게 발표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조금 기다려주는게 인지상정이다. 사람이 좀 너그럽고, 여유를 갖고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전혀 진짜 정말 절대로 기대는 안 하지만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집에서 이런 저런 정리를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한 번씩 쳐다봤다. 와, 불과 며칠 전에 스마트폰 헛 진동소리 안 들린다고 땅바닥에 발을 딛니 마니, 이너피스를 찾았니 어쩌고 글을 썼는데 어쩜 또 그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전혀 기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소파 구석에 스마트폰을 던져 놓았다. 물론 아이 장난감과 쿠션들 사이에 묻히지 않게, 아주 잘 보이게.
혼자 스마트폰과 싸우는 동안 12시가 되었다. 밥을 대충 떼우고 나자, 이쯤되면 발표가 나고도 남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또 나의 이 망할놈의 긍정 마인드가 고개를 쳐든다.
아니, 이왕 오전에 안 낸거 점심 먹고 나서 올리자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사람 일이란게 그렇지 않은가. 밥도 먹어야 생각도 잘 나고, 일을 효율적으로 하려면 오전 업무, 오후 업무가 나눠져 있을 것인데, 결과 발표는 오후 업무 일지도 모르지 않은가. 일단 애 데려오고 나서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맛있는 초콜렛을 애랑 남편 몰래 냉장고 구석에 꽁쳐두는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놔두고 집을 나섰다. 유치원에서 애를 데리고 집으로 오는 길, 빨리 가고 싶기도 하면서 천천히 가고 싶기도 했다. 다행히 애가 자기 안 울고 잘 다녀왔으니 초콜렛을 사 달랬고, 가는 길에 벤치에 앉아서 먹겠다고 했고, 오는 길에 있는 동그랗게 생긴 건 죄다 밟고 와야 하다보니 집에 오는 데 꽤 걸렸다. 자, 이제 스마트폰에 반가운 하늘 색 점이 찍혀 있는지 살펴볼까?(브런치 작가에게는 구독자 수가 늘거나, 조회수가 일정 수 이상 되거나, 댓글이 달리거나, 글에 라이킷을 받으면 메뉴란에 하늘색 점이 떠 있다. 브런치 작가 누구도 이 하늘색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 있다! 반갑고도 얄궂은 저 하늘색 점!!
침 꼴깍 삼키고 조심스럽게 눌러본다. 그러나 어느 소중한 분이 나의 글에 라이킷을 눌러줬다는 알림이었다. 진짜 완전 너무 감사한데 이 간사한 마음새끼가 제 멋대로 살짝 실망을 한다. 나 진짜 진짜 절대로 욕심이 없는데, 와 진짜 억울하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간사한 마음 덕에 나의 눈치없는 긍정 마인드는 풀이 죽었다. 이제는 인정을 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나 구질구질하게 브런치 검색 창에 '공모전', '결과', '나도 작가다'를 쳐 보고, 브런치 메인에 혹시라도 누군가 '난 붙었다!'라는 부러운 글이 있을까봐 끊임없이 새로고침을 누르는 이 머리 따로, 손 따로인 시츄에이션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브런치 공지사항에 떠 있는 공모전 페이지를 수십번 누르며 댓글까지 살펴봤지만 겸손한 분들만 공모전에 붙으신 건지 누구 하나 자랑을 하는 분이 없으셨다.
그렇게 구 남친 페북 뒤지던 실력으로 정보도 없는 브런치에서 혼자 애를 쓰던 중, 드디어 처음 공모전을 주최하셨던 EBS PD님의 공식 글이 떴다. 이미 발표는 났고, 2차 공모전에도 많이 참여해달라는 글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새로고침을 멈췄다. 그런데, 진짜 다시 말하지만 죽어도 나는 안 붙을 걸 알고 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암튼 이렇게 또 실패로 돌아갔지만 오랜만에 가슴 떨리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사실 많은 댓글에서도 봤지만 브런치에서 공모전은 작가들에게 그 자체로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지칠 때쯤 한 번씩 오는 이런 기회가 또다시 브런치를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특히 나같이 설렐 일 하나 없는 아줌마에겐 쓰는 것도, 도전을 하는 것도, 기다리는 것도 모두 다 재밌다. 그래서 나는 2차, 3차뿐 아니라 앞으로의 공모전에 계속 참여할 생각이다. 나같이 이렇게 설렘으로 기다렸다가 좋은 소식까지 듣게 되셨을 스무 분의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브런치에서 이런 공모전을 많이 많이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났는데, 내가 브런치 연동된 메일함을 아직 한 번도 안 살펴봤네?
아니, 진짜 절대로 뭐 혹시 왔나 보려는 게 아니다. 에이, 나 진짜 그런 구질구질한 애 아니다. 별명이 쿨녀다. 진짜다. 딱 그냥, 메일이 잘 오나 어쩌나만 확인하고 나올 거다.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