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독립기념일

드디어 그 날이 왔다.

by 또랭

드디어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 어린이집도 안 보내고 다섯 살에 유치원 보낼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머리털 나고 처음 겪어보는 세계적 바이러스 재난에 나의 독립기념일은 기약 없이 멀어졌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 하지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보내도 걱정, 안 보내도 걱정이다. 발열 체크, 마스크, 손 소독까지 철저히 했지만 씩씩하게 손 흔들며 유치원 가는 아이를 보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첫날은 적응도 할 겸 점심 먹기 전에 데리러 오란다.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은 3시간, 왠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유치원 바로 앞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글을 쓰려고 노트북까지 챙겨 왔건만 이런저런 생각에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몇 번이고 쓰고 지우다가 오랜만에 '아줌마 탐구생활' 매거진 글을 채워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같은 날은 아이를 처음으로 유치원 보낸 평범한 아줌마의 일기를 쓰고 싶어서.


카페에 앉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왔다. 나처럼 아이 유치원 첫 등교를 마친 엄마들의 전화다. 모두들 첫마디가 이거다.


드디어 갔어.


하지만 이내 붙는 말도 똑같다.


근데 좀 찝찝하긴 해.


축하받아 마땅한 내 아이의 새로운 사회생활 시작이, 그렇게 바라던 아줌마의 독립기념일이 모두들 찝찝하다. 적응은 잘할까, 울진 않을까, 친구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미 고민이 많은데 이제는 건강 문제까지 염려해야 하니 모두들 싱숭생숭하다. 그러나 또 이어 나오는 말은 언제까지 안 보낼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언제까지 아이를 집에만 가둬 놓을 수도 없다. 아이의 사회생활도 문제지만 그렇게 했다간 엄마들이 먼저 미쳐 날뛸지 모른다.


코로나 집콕 생활 동안 아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나가지도 못해, 친구들도 못 만나 좁은 집에서만 생활하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혼났다. 매일 아파트 방송으로 층간 소음에 신경 써 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가지도 못 하고 집안에서 뛰지도 못 하게 하니 아이들도 힘들었을 것이다. 미세 먼지 많은 날에도 답답하다고 마스크를 벗어버리던 어린아이들이 이제는 얌전히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하다. 자기들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겠지. 심각한 얼굴로 매일 뉴스를 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에서 눈치 빠른 우리 아이들도 뭔가를 느꼈을 것이다. 나갔다 오면 아이가 먼저 "손 씻어야지! 코로나 바이러스 걸려!"하고 외치는 아이를 보며 알게 모르게 아이의 작은 가슴에 공포를 심어준 건 아닌가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그 집에만 있는 아이를 먹이고, 챙기고, 놀아 주고, 치우느라 엄마들도 정말 힘들었다. 전업맘은 전업맘대로 기약 없는 이 하루들이 대체 언제까지 계속될까 힘들어하며 엉망이 된 집안을 몇 번이고 쓸고 닦았다. 일하는 엄마들은 회사와 아이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며 피눈물을 쏟았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돌봄 교실에 보낼 때는 철철 울면서 보냈을 테지. 물론 남편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다. 확진자가 몇 백 명씩 나오던 시기, '바로 옆 건물에 확진자가 나왔대.', '옆 팀에서 확진자가 나왔대.'라는 생사의 공포를 이겨가며 그저 와이프와 자식을 위해 지하철 손잡이도 제대로 못 잡고 출근하던 남편들의 노고야 말해 무엇할 것인가.


모두 애썼다. 정말 애썼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며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교 때 갔던 '수련회'였다. 수련회를 가면 빨간 모자에 선글라스 쓴 교관들이 꼭 시키는 게 있다. 공포의 '팔 벌려 뛰기'이다. 팔 벌려 뛰기가 무서운 게 아니고 진짜 무서운 건 '마지막 구호는 붙이지 않습니다.'이다. 30개를 해도, 20개를 해도, 10개를 해도 마지막에 꼭 한 명이 "하나!"를 외친다. 그럼 또다시 처음부터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째려보고 입 모양으로 욕을 해도 꼭 마지막에 누군가 "하나!"를 외친다. 아무리 욕해도 소용없다. 그 "하나!"를 내가 외치지 않기 위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옆 친구와 눈빛을 교환해야 하고, 서로를 믿어야 한다. 확진자가 0명이 나오는 날들이 올까? 아무도 '하나'를 외치지 않는 날이 올까? 글쎄, 모르겠다. 우리는 영원히 팔 벌려 뛰기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은 내가 '하나'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길 바라며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계속 뛰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우리가 할 일이다.


그래도 오늘은 축하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을 잘 마치고 온 아이에게 잔뜩 칭찬해 주며 엉덩이 두들겨 주고 맛있는 것도 사줄 생각이다. 그리고 그동안 우울증 안 걸리고 잘 버틴 엄마들도 스스로에게 한 마디 꼭 해줬으면 좋겠다.


"수고했어. 잘 버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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