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좋은 이름

딱 좋아! 지금이 딱이야!

by 또랭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중 '고백 부부'라는 드라마가 있다. 극 중에서 장나라가 맡은 '마진주'는 독박 육아에 지칠 대로 지친 30대 아줌마이다. 늘 회식과 접대로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남편과 점점 갈등의 골이 깊어지다 마침내 이혼을 결심한 그날, 자고 일어나니 마법처럼 스무 살로 돌아오게 된다. 웬수같은 남편도 함께 스무 살로 돌아온 것이 걸리긴 하지만 진주는 다시 찾은 젊음을 맘껏 누린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않은가. 내가 다시 스무 살이라니. '아주 스무 살만 돼 봐. 다 죽었어. 어차피 죽고 나면 썩어 문드러질 이 몸, 아주 불살라 망나니처럼, 아니 암튼 아주 그냥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살거야!!"라고 생각하며 씩씩거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또 모를 일이다. 다시 돌아간대도 과제 마감 바로 전날 과제 파는 사이트에서 500원 주고 산 자료들 짜깁기를 하고 있거나, 시험 전 날 밤새러 간 도서관에서 연애 상담만 하거나, 새로운 공부가 아닌 새로운 술집들을 찾기 바쁜 일상을 또다시 보낼지. 그렇다. 만약은 없다. 그냥 지금 하면 된다. 생각보다 아줌마는 새로운 것을 시작 하기 딱 좋은 사람들이다. 진짜냐고? 믿을 수 없다고? 한번 따져 보자.




첫 번째, 육아만 아니면 밤도 새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 딴짓의 역사는 생각보다 깊다. 대청소하다가 걸레 들고 옛날 앨범 2시간 보기, 시험기간에 책상 정리 하기, 심지어는 책상을 정리하다가 옛날 친구들과 나눈 편지들 하나씩 다 펴보느라 그것도 제대로 못 하지 않았던가. 같은 이유로 아줌마는 육아만 아니면 모두 재밌다. 이상하게 애만 보려고 하면 그렇게 공부가 하고 싶다. 나는 애 보다가 심각하게 3년 하다 접은 임용 공부를 다시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내 안에 이렇게 충만한 학습욕이 있는지 난 정말 몰랐다. 자, 그렇다면 이 의욕, 열정 그대로 무엇이든 시작해 보자. 아줌마들이 괜히 문화센터를 열심히 다니는 게 아니다. 집에서 애나 키우는 아줌마로 전락했다는 헛헛한 마음이 있다면 이를 학습욕으로 바꿔 보자. 잘만 불 붙이면 내가 십 대에 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를 갔을 텐데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만큼 내 안의 무시무시한 열정을 마주할 기회도 생긴다.




두 번째, 이토록 내 시간이 간절한 시기는 없다

분명 애 볼 때는 30분이 그렇게도 안 가더니 육퇴 후에는 인터넷 기사 몇 개만 봤을 뿐인데 시계를 보면 새벽 2시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이런 거였구나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다. 아줌마들은 늘 자기만의 시간이 절실하다. 그래서 이 소중한 시간들을 작게 쪼개서 관리하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다. 원래 학교에서 집 가까운 애들이 지각하는 거다. 널널한 시간에는 오히려 게을러지기 쉽다. 아이보다 30분 먼저 일어나 누리는 고요한 아침 시간, 아이가 낮잠 자는 꿀 같은 2시간, 육퇴 후 취침 전까진 남겨진 설레는 그 몇 시간을 나를 위해 써야 한다. 애한테 빨리 자라고 윽박질러 겨우 재워 놓고는 아이 사진과 동영상을 2시간씩 보며 애틋한 눈길로 자는 아이를 쓰다듬지 말자. 그럴 거면 낮에 소리라도 지르지 말든지. 독서가 됐든,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걸 배우든, 한 문장이라도 글을 쓰든 아까운 나의 시간을 오로지 나를 위해 써 보자. 살면서 이렇게 시간이 절실하고 아까운 시기는 많지 않다. 남편 몰래 숨겨 놓고 먹고 있는 비싼 초콜릿 마냥 아끼고 또 아껴 나의 발전에 힘써보자. 써먹을 데는 언젠가 온다.




세 번째, 지금이 책 읽기 딱 좋은 시기이다.

뭐가 좋은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암튼 모든 훌륭한 사람들은 책을 꼭 읽으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아이에게 읽어주면 더 좋단다. 그런데 애만 읽으라고 하면 안 된단다. 엄마 아빠가 모범을 보여야 한단다. 애 어렸을 땐 책 사이에 핸드폰 끼워 놓고 보는 척이라도 하면 됐는데 애가 점점 클수록 이제 그것도 안 통한다. 어느 날 애가 말한다. "엄마도 맨날 핸드폰만 보면서 왜 나한테 책 읽으래?" 자, 이제 물러설 데가 없다. 못 이긴 척 책을 한 번 펼쳐보자.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를 땐 육아서를 읽어 보자. 다른 어느 책보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내용들이 많아 훨씬 집중하기 좋을 것이다. 나 역시 결혼 전에는 1년에 손가락 열개에 발가락 몇 개만 보태면 셀 수 있을 만큼의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유도 모른 채 2시간씩 울어재끼거나, 나의 명을 단축시키기 위해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건 아닌지 의심될 만큼 드럽게 말을 안 듣는 시기들을 버티기 위해 육아서들을 읽는 날이 많아졌다. 이처럼 바로바로 써먹을 수 있는 육아서를 시작으로 책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다 보면 이전보다 훨씬 책을 많이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나 혼자 있을 땐 절대 못 읽는다. CCTV처럼 내가 뭐 하는지만 하루 종일 보고 있는 아이가 있을 때 못 이기는 척 책을 읽어보자. 나중에 무엇을 하든, 책은 당신의 인생을 도와줄 가장 강력한 조력자가 될 것이다.


어떠한가. 아줌마야 말로 그 누구보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 딱 좋은 사람들 아닌가?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해 보자. 당신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20대까지의 일이라고만 생각한다면 100세 인생 중 우리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시기는 고작 3분의 1뿐이다. 정말 나머지 3분의 2는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고 20대까지 이뤄 놓은 것들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내 앞의 이야기를 모두 무시해도 좋다.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작은 취미라도 시작해보자. 나를 옭아매던 부모님의 잔소리도 없고 아이의 본보기로서 모범이 되어야 하는 이 시기야말로 나를 발전시킬 최고의 시기가 될 수 있다. 아줌마들이여 당신의 절실함과 열정, 책임감을 보여줄 때이다. 지금, 당장, 무엇이든 시작해 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신입 아줌마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